82년생 김지영

by 함께걷는아이들 2018.05.16 11:38

82년생 김지영. 

나보다 9년 늦게 태어난 김지영. 나의 성장기와 거의 차이를 못느끼겠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여성학과가 있어 여성학 강의가 많이 열리던 우리 학교에서, 나는 거의 모든 여성학 강의를 섭렵했다. 여성의 불리한 사회적 위치에 한국사회의 가부장제도에 분노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젠더적 감수성이나 분노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왜그런가, 생각해보니 첫 번째 이유는 남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직장인거 같다. 둘을 합치면 거의 나의 모든 생활 반경을 포괄하게 되니 그 두 곳에서 여성의 불리한 위치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있는 것이다. 최근의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을 보면서 아직도 정말 저런 인간들이 저렇게 사회의 리더입네. 하고 존경받고 살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 책의 여러 파트에서 나에게 가장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은 출산과 육아와 일을 저울질 하는 부분이다. 치열한 내안의 고민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으나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었었고, 전업주부를 1년 가까이 하고 나서 도저히 이렇게 살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수많은 이력서를 냈고 떨어졌고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무조건 냈던 곳에 재취업을 성공했고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런 육아와 일을 치열하게 병행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린이집으로 할머니네 집으로 아줌마 손이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자랐지만 크게 아프거나 크게 모나지 않아 나는 사회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둘째를 키울 때는 남편이 잠시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며 전업주부를 한 시기가 있어 정말 내조 받으며 일한다는 건 이런거구나. 행복했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이제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니 시간적으로 매이는 육아의 거의 끄트머리에 와있다. 정말 그런 시기를 어떻게 다 보냈나 꿈만 같다. 문제는 우리 사무실은 10여명의 여성 중 줄줄이 출산과 육아를 앞두고 있으니, 올해 한명이 출산을, 두명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는 육아휴직을 쓰고 되돌아오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책에서 육아휴직을 쓴 첫 번째 직원이 생겼을 때 너무 기뻤으나, 그 직원은 누구에요? 그만뒀어요. 했듯이.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일한다는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그 워킹맘 팀장도 결국 친정집에 들어가 사는 것 아닌가. 내 주위에서 일하는 사람 중 친정과 시댁의 도움 없이 애를 키우는 집을 딱 두 명 봤는데, 한명은 공공기관 연구원이라 칼퇴였고 직장 바로 옆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또 한명은 여러 아주머니 도움으로 애를 키우며 일하는 사람을 보았다. 가뭄에 콩나듯 드문일이다. 우리 사무실에도 나는 가까이 친정엄마의 도움을, 같이 일하는 또 한명의 워킹맘은 가까이 사는 시댁의 도움으로 지낸다. 

여성이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일을 그만두지 않고 지속하는데는 두가지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일하는 여성의 강력한, 매우 강력한 일에 대한 의지이다. 그냥 강력해서는 안되고 “매우 강력”해야 한다. 주위의 모든 환경은 나에게 일을 그만두라 한다. 나는 늘 사무실에서도 양해를 받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집에서도 뭔가 죄지은 기분이 된다. 아이는 나를 너무나 필요로 하고, 예상치 못한 사무실 업무가 튀어 나올때는, 일이 몰려드는 시기에는 육아 스케줄이 꼬이면서 난감해진다. 아이가 아프면 또 어떤가? 당장 아침에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밤에 아이라도 아플라 치면 아픈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무거운 발걸음을 사무실로 이끌기 일수다. 여기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수십번 들 때, “그래 나는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해야 돼.” 라는 답이 스스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장환경이다. 직장 환경이 얼마나 개인의 사정을 봐줄 수 있을까마는 우선 내가 일하던 직장에서는 최소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직장에 깔려있었다. 책임자를 비롯한 대부분이 여성이어서도 그랬고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다녀올 수 있거나 일찍 퇴근하는 배려를 받으며 일했다. 
하지만 좀 더 그때 그때의 배려가 아닌 권리로서의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근무시간의 단축, 탄력근무, 다양한 근무형태 등일 것이다. 우리 사무실은 탄력근무, 다양한 근무형태는 가능한데 근무시간 단축은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근데 그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방안인 것 같다. 작은 조직에서 1인이 담당하는 역할은 적지 않고 그 사람이 일을 줄일 때의 대안은 새로운 인력을 뽑거나, 다른 사람이 나눠맡거나, 일을 줄이거나이다. 그런 방법들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우리 직장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무곳에서도 실현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는 어렵게 했지만, 우리 직원들은 좀 더 수월하게 덜 강한 의지를 가지더라도 그 고개를 넘어갈 수 있도록.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