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 정체부터 밝히자면...

 

나는 함께걷는아이들 재단의 이사이고

미국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주부이다.

카톨릭 신자이고, 음악을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하고 특히 악기 배우는거 좋아하는,

머 하나 특별히 잘하는 거 없이 다방면에 관심 많은 취미형 인간이다.

 

재단 사무국에서 재단블로그의 한 섹션을 담당해 달라고 요청해 왔을 때 마지못해 응하기는 했으나

솔직히 끝까지 해낼 자신을 없다.

 

예전 드림위즈에서 나름 강아지와 요리로 인기블로거의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으나

블로그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인가를 잘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 부터 할것인가를 고민하던차에 작년에 다녀왔던 스페인 카미노 여행기부터 연재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근데 이것도 끝까지 한다는 약속은 못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라고 알려져 있는 순례는 프랑스/스페인 접경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북서쪽에 자리잡은 Santiago de Compostella 라는 도시까지  820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순례하는 여정을 말하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 한분이신 야고보 사도가 순례하신 여정을 뒤따라 가본다는 의미가 있다. 이 순례길의 종착지는 Santiago de Compostella 시에 위치한 산티아고 대성당인데, 여기에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다.

 

사실 나는 이 여행을 가기 전에 순례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성당을 같이 다니는 언니의 전화 한통으로 이 모든게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으니 나보고 같이 가잔다.

앞으로 닥쳐올 개고생에 대해서 전혀 모른체 단지 집을 40일 동안 비울수 있다는 기쁨에 그러지 머~ 하고 캐주얼하게 대답하고 나서

이게 도대체 먼가...인터넷 서치를 해보았는데 제일 처음 뇌를 자극하는 단어는 820킬로... 차를 타고가도 힘든데 그것도 걸어서 간단다.

 

남편한테 "나 40일동안 걸어서 스페인 여행 하고 올께" 했더니 "이 아줌마가 정신이 나갔구나. 평소에 숨쉬기 운동하고 숫가락 들기 운동만 겨우 하는 주제에 어딜 걸어서 가겠다고???" 하고 방방 뜬다. 겨우 남편 설득해서 반허락을 받고 카미노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야고보 사도는 누구인가? 그의 발자취와 순례가 카톨릭 영성에서 의미하는 바................ 를 공부해야 겠지만

아줌마한테 중요한건 역시 쇼핑.

카미노 카페에서 숙지한 필요 물품들 사러 다니는 즐거움.

 

등산이라곤 결혼해서 설악산 흔들바위 까지 올라가 본게 다인 나.

평생 처음 등산화도 사고, 등산스틱도 필요하다고 해서 머에 쓰는지도 모르고 사고, 방수잠바도 사고....

뉴저지에서 제일 신난 아줌마다.

 

물건 사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이거저거 입어보고 패션쇼를 하니 남편이 "진짜 가려고 하는거야???" 하면서 기가 막혀 한다.

"응... 카페에서 보니까 나보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도 하고... 일단 가면 누구나 다 할수 있대."
(이런 말은 대체로 신빙성이 없는데, 왜냐면 완주한 사람이 하는 말들이고, 완주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말이 없기 때문. ㅠㅠ)

 

카페에서 사람들이 카미노 가기 전에 걷기 연습을 하라고 권하던데....

난 카페에 있는 온갖 정보들 아이패드에 정리하고 계획 세우느라 정작 걷기 연습은 하나도 못했다.

(참고로 나는 mbti 성격테스트의 istj형 인간이다.)

 

아이패드에 여행에 필요한 앱들 (환산, 날씨, 번역, 등등) 다운받아 놓고

가이드북이 무거울까봐 대신 카미노 카페에서 최신 정보 찾아서 중간에 들르게 될 마을별로 엑셀에 정리해서 아이패드에 저장했다.

도대체 공부를 하러 가는거냐 순례를 하러 가는거냐... 남편한테 쿠사리도 많이 맞고...

 

출발 일주일 전. 짐싸기 완료.


앞으로 40일간 내가 지고갈 물건들. (머 별로 안 궁금하겠지만 다른 사람들 카미노 여행기 보니까 이런거 써놓길래...)


 


배낭: 오스프리 36리터

보조크로스백 (지갑, 신분증 등 자주 쓰는 물건 넣어갈...)

등산스틱

의: 반소매 티 2벌, convertible hiking pants 1 (밑단을 지퍼로 벗겨내면 반바지로 되는 거), 여유분 등산긴바지 (여유분 바지를 따로 안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카미노 카페에서 지금 현지 날씨가 영상 5-10도 정도로 춥다는 말 듣고 가져가기로 함), 긴치마 1 (평상복 겸 잠옷으로 입을 것), 고어텍스 잠바 1, 보온용 fleece 웃도리 1, 등산양말 2켤레, 보통양말 1켤레, hiking sandal (알베르게에서 신고 평야지대에서는 등산화대신 이거 신고 걸으려고 함), 속옷 2벌씩, 등산모자, 버프 마스크, 쿨토시, 등산화, 스패츠 (비올때 무릎부터 발목까지 착용하는 보호대로 빗물이 등산화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한다고 함), 우비판초, 선글라스, 흰면장갑 (등산스틱을 쥐는데 손 아프지 말라고...)

식: 건조김치, 라면스프 대 사이즈 1, 미역, 인스턴트 미소숲, 고형카레, 고추장튜브, 국간장소금, 고추가루, 천연조미료스틱, 해물멸치티백, 둥글레차티백, 삼각김밥용 김, 숫가락, 젓가락, 스텐컵, 물통, 칼 (알베르게 라고 부르는 순례자 숙소 대부분에 부엌설비가 있어서 해먹을 예정이다. 아들낳고 바로 남편이랑 2주간 유럽여행 다녀왔는데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카미노 루트는 대부분 스페인 시골지역이라 음식이 더 형편없다는데 벌써부터 큰 걱정이다.)

주: 4계절용 침낭 (이불을 따로 안주는 알베르게들도 있다고 하고 무엇보다 베드버그에 물릴까봐 본인들 침낭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단다), 베개커버
의약품: 물집밴드, 무릎보호대, 발목보호대, 맨소래담로션, 파스, 두통약, 감기약, 여성용품, 베드버그 스프레이

전자제품: 소형디카, 디카충전기, 아이패드미니, 멀티플러그, 220볼트전환플러그, usb port, 이어폰

편의용품: 치약, 칫솔, 치실, 비누(세안+목욕 용, 들꽃 버스팀에서 협찬함. 친구들아 고마워!!!), 빨래비누, 비누곽, 일회용 샴푸/린스 (린스는 가지고 갈까말까 고민중...), 면타월 2, 때수건 1, 선블록크림, 로션, 끈달린 빨래집게 12개, 옷핀 4개 (혹시 빨래가 안마르면 배낭에 매달고 다니려고), 반짓고리, 손톱깍기, 물휴지 (이것도 무게가 많이 나가서 고민중), 일회용 변기커버(대학원 다닐때 유럽에서 온 교수가 어찌나 목욕을 안하고 더럽던지...프로젝트 같이하는 내내 고생했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의 청결상태에 대해서 트라우마가 있다.)

기타: 헤드렌턴+엑스트라 건전지 (새벽에 숙소에서 짐싸서 나오려면 필요하다고...), 펜2개, 메모용 수첩1, 스카치테이프, 다용도와이어, 자물쇠, 알람시계, 소형벨트백, 등산고리, 이어플러그 (도미토리형 공립알베르게에서 잘 경우 순례자 아저씨들이 코를 겁나 곤단다), 지퍼백 대3/소6, 선물용 기념품 (카미노에서 만나게될 외국친구들 나누어줄 조그만 선물들, 재단사무국 직원들이 협찬해 줌. 땡큐!!!)

영성: 묵주, 매일미사책 (이것도 아이패드에 다운해 가려고 함.)

서류: 여권/그린카드+사본1부씩, 여권사진2매, 비행기/TGV/ 알베르게 예약문서

(가지고 간 물건 1/3 정도 카미노 도중에 무거워서 버렸다. 사람들이 두번 생각하게 되는 물건은 절대 안 필요하다고 하더니만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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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생존에 필요한 것들만 싼다고 했는데 저울에 달아보니 9킬로그램 정도 된다. 흑, 무겁다...

공항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까 시시각각 고민하게 될 듯....

카미노 카페에서 추천한 품목들로 챙겼고 다들 이 정도 물품만 있으면 약 40일간 길에서 버틴다고들 한다.
평소에 우리가 불필요한 물건들 홍수속에 그런것들 관리하면서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위의 목록들 가만히 들여다 보면 평소에 내가 취약한 부분과 절대 포기 못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음식에 취약하고 인터넷을 포기 못하는 나... ㅜ.ㅜ


예수님께서 열두사도를 파견하실 때 여행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빵도 돈도 지팡이도 가져가지 말고 (마태 10,10; 마르6,8; 루카 1,3) 길과 성령이 이끄는데로 훌훌 털고 떠나라고 하셨는데....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막상 길에 나서면 사전 준비와 계획이 의미없고 그날 그날 하느님이 마련해 주시는대로 걷고 자고 먹고 낯선 사람들 만나서 사귀고 해야 한다는데, 미리 계획하는 것 좋아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하는 거 잘 못하고, 낯도 많이 가리는 나에게는 순례길에서 닥쳐올 그 어느것 하나 쉬운 일은 없는듯 하다.

하지만 앞으로 40일간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 속을 걸으며 내가 인간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 내 지력과 체력의 한계가 무엇인지 처절하게 깨닫고서야 비로소 하느님과 만나게 될 것이다.

 

(카미노 여행기 순례날짜별로 연재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