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4일 (뉴저지 --> 생장)

 

일년전 기억을 더듬어 여행기를 쓴다는게 쉽지는 않지만

가는 곳 마다 작은 수첩에 일기처럼

요래 요래 메모를 해 놓았던 기록의 도움으로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서 소심하게 시작해 본다.

 

 

스페인 카미노 순례길은 여러 루트가 있지만

이번에 선택한 루트는 프랑스길 (Frances Route) 라고 불리우는 초보자가 걷기 제일 쉬운 루트이다.

프랑스길은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 라고 하는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해서

스페인을 가로질러서 야고보 사도 (Saint James) 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 (Santiago de Compostella 라는 도시) 까지 가는

820킬로미터 대장정이다.

 

 

대망의 2013년 5월 24일.

걱정이 되서 안절부절 못하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뉴욕 JFK 공항으로 출발.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그냥 돌아와"

 (남편은 내가 정말 완주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일주일만에 포기하고 돌아올줄 알았다고....)

 

동행하는 언니는 서부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랑데뷰하기로 했기에 오늘 비행기는 혼자타고 간다.

프랑스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셀카.

 

 

배낭을 짐에 부칠까 하다가 그냥 캐리온 하기로 결정. 등산스틱만 부쳤다.

화장실에 갔는데 벌써 첫번째 어려움에 봉착.

 

배낭을 누구한테 맡길수도 없어서 가지고 들어갔는데 배낭이 무거워서 화장실 문고리에 걸수가 없어서

 바닥에 놓고 볼일을 봐야 사태가 발생한거다.

(미국에 와서 제일 신기했던 광경이 미국 여자들 핸드백을 걍 화장실 바닥에 놓고 볼일 보는 거였다.)

 

화장실 바닥에 우글거릴 세균을 생각하면 바닥에 절대 놓기 싫은데...

어떡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쩔수 없이 바닥에 놓고... 흑.

 

원더우먼이 한바퀴 돌면 옷을 바꿔입듯

주부에서 순례자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카미노 40일 시골길을 걷게되면 JFK 공항 화장실 바닥보다 더 더러운 걸 참아내야 할텐데...

그동안 의기양양하던 자신감이 갑자기 급저하... ㅠㅠ 우짜등동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서 구름을 보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8시간 가량 비행후 카미노에 동행할 오띠언니를 만나기로 한 프랑스 드골공항에 내리니 새벽 6시.

언니가 타고올 비행기는 터미널이 달라서 배낭 메고 늦을까봐서 달려 달려...

 

 

아... 비행기 연착이네.

배가 고파서 도너스와 커피 흡입하면서 프랑스 사람들 구경.

한참을 기다리니 오띠언니가 나온다.

프랑스에서 만나니 더 반갑네...

 

이제 떼제베 타고 카미노 출발지인 생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떼제베를 탈수있는 기차역은 드골공항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걸어서 이동.

떼제베 표는 뉴저지에서 미리 구입했기 때문에 기차 번호 확인후 떼제베 탑승.

떼제베 타고 신이 난 두 여자.

(이렇게 모자이크 하려면 인물사진은 머하러 올리는지 이해불가 ㅋ)

 

 

원래는 바욘(Bayonne)역에서 내려서 생장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타게 되어있는데

열차운행에 변경이 생겨서 오늘은 버스를 타야 한단다.

 

<생장행 버스 타려고 기다리는 순례자들>

생장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프랑스 시골의 풍경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버스로 한시간 동안 달렸을까... 오후 늦게 생장에 도착했다.

 

<생장시내 풍경>

생장에서 제일 처음해야 하는 일은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는 것.

순례자 사무실 부터 찾아야 한다.

오띠언니한테 배낭을 보고 있으라고 하고 한살이라도 어린 내가 사무실을 찾아 나섰다.

작은 강을 끼고 아담한 시골집들이 자리한 아기자기한 마을

 

한참을 헤메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손짓 발짓으로 순례자사무실 위치를 알아내서

오띠언니 데리고 갔다.

 

요렇게 생긴 작은 문을 들어서면

요런 작은 골목이 나오는데 이 비탈길을 올라가면 순례자 사무실이 나온다.

<패스포드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순례자들>

순례자 사무소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데 카미노에 대한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을 해주고 지도와 가이드북도 주고

알베르게 (Albergue) 라고 불리우는숙소도 배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모든 순례자들은 등록을 하고 요렇게 생긴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게 된다.

중간에 들리는 마을마다 이 여권에 스탬프를 받게 되고

종착지에서 이 인증도장이 찍힌 여권을 내밀면 완주증명서를 내주게 된다.

 

사무소에 2유로를 기부하면 요렇게 생긴 조가비를 주는데

이 조가비가 Camino de Santiago을 상징하는 공식 표징으로

카미노 루트 곳곳에서 이 조가비 표시를 볼수 있고

앞으로 이 하얀조가비 표시만 따라가면 종착지 산티아고에 도달하게 된다.

 

다른 순례자들이 하듯이 나도 이 조가비를 배낭에 메다니

드디어 공식적인 순례자로 거듭나게 됨.

순례자 사무실에서 대여섯명의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눈인사를 나눴는데

그중 카톨릭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다는 한 여학생과 함께 저녁식사를 먹기로 하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 벌써 느끼해서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안 넘어가네...

앞으로 40일동안 어찌 버틸꼬 ㅠㅠ

프랑스길에는 스페인 정부가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와 사립 알베르게 들이 적어도 5킬로에 하나씩은 있는데

공립은 5-6유로, 사립은 10-18유로 정도 한다.

 

생장에는 공립 알베르게에 침대가 모자르고 시설도 별로라고 해서

순례자사무소에서 소개한 사립 알베르게 (12유로) 에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철제계단으로 올라간 2층에는 지저분하고 어둠컴컴한 남녀혼성 도미토리가 있다.

옆 침대와 거리도 가까워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남자순례자가 누워있고...

화장실, 샤워장 모두 공용.

이 모든게 현실로 다가오니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온다.

 

오띠언니는 자긴 도저히 샤워장 못 가겠다면서 포기하고 그냥 잔다고 일찌감치 침낭으로 들어가버리고...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씻으러 샤워장으로...

샤워하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샤워장 문을 똑똑...

기겁을 하고 비눗물도 못 헹구고 옷 도로 입고 튀어나왔다.

 

지저분한 침대 위에 침낭을 피고 집에서 가져온 베갯잇으로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베게를 감싸고

침낭 안으로 들어가 침낭 지퍼를 머리 끝까지 올리고 누웠는데...

옆에서 코를 드르렁 골며 자고있는 아저씨도 무섭고

820킬로라는 먼거리를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나 막막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개고생이 눈에 훤한거이 벌써 집에 가고 싶어서 눈물이 났다.

앞 침대에 누운 오띠언니도 뒤척뒤척 밤새 잠을 못 이루는 눈치고...

 

내가 미쳤지... 무슨 깡으로 여길 왔을까?

 

남편 말 듣고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심사숙고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오면서

카미노의 첫날밤이 저문다.

 

 

  • 이경림 2014.05.09 13:26 ADDR EDIT/DEL REPLY

    우와. 샨티아고 연재 기대되네요.
    사진도 좋구요. 특히 몽타쥬사진이 ~
    맛난음식과 길순례길 소개해주세요

  • big sunny 2014.05.09 23:40 ADDR EDIT/DEL REPLY

    첫날 기행을 읽으니 완주가 기적같이 느껴지네요. 내가 산티아고 순례도 했는데 당신도 뭐든 할수 있다고 하셨던 얘기가 생각나며 숙연해지네요.

  • 홍기원 2014.05.10 13:33 ADDR EDIT/DEL REPLY

    아줌마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