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5일: 생장 --> 오리손 (8킬로미터)

 출발: 12:00  도착: 3:30 pm

날씨: 아침에 비오다 개임 

 

 

 

새벽까지 뒤척이다 순례자들이 짐싸는 소리에 잠이 깼다. 

세수하고 배낭을 싸서 나오려는데 어제 아이패드 충전하려고 꽂아놓았던 기억이 나서 찾았는데

 

콘센트에 없는거다.

이 일을 어쩌지?

내가 자던 침대 근처에 자리가 없어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꽂아 놓았고

분명 이 자리 맞는데???

 

Have you seen an ipad? My ipad is missing!!!

 

정신이 아득해져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순례자들에게 묻고 다니는데

순례자들은 각자 짐 싸기 바빠서 내 말을 듣는건지 마는건지...

아이패드로 사진 찍으려고 사진기도 안가지고 왔는데...

 

한참을 그렇게 왔다갂다 하는데

어떤 순례자 한명이 혹시 니 아이패드 하얀색 커버냐고...

누가 잃어버리고 간 줄 알고 자기가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로 (알베르게를 지키는 종업원)에게 맡겨 놨단다.

 

땡큐 땡큐... (입으로는 그러면서 속으로는 오지랍도 풍년일세 라고 눈 흘김)

 

호스피탈레로한테 가서 보니 내 아이패드 맞네.

휴우... 첫날 아침부터 난리브루스 한바탕 추고 나니 배가 고프다.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식으로 크로와상에 커피로 아침식사를 해야...

식당에 와이파이 공짜로 되서 남편에게 카톡으로 잘 도착했다고 안부도 전하고

오띠언니랑 앞으로 40일간 어떻게 걸을 것인가 원대한 계획도 구상해 보면서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했다.

 

프랑스길 루트 시작하면서 피레네산(Mountain Pyrenees: 해발 3,404m)을 넘게 되는데

카미노 여정 중 가장 힘들다고 악명이 높은 구간이 바로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거쳐 넘게 되는 피레네산 이다.

 

<저 사악한 경사를 보라 ㅠㅠ>

 

젊은 사람들은 이 27.1킬로 구간을 하루에도 넘는다고들 하는데

오띠언니와 나 같은 아줌마들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일듯...

그래서 경험자들이 추천하는대로 생장에서 8킬로 지점에 위치한 오리손(Orisson)에서 하루 머물고 가려고

뉴저지에서 미리 그곳의 사립 알베르게를 예약하고 왔다.

 

우리 재단 동료들이 모자이크 하지 말라고 해서 용기를 내서 커밍아웃.

(함걷아 일 아니면 절대 공개 안할텐데...)

<출발 전 브이질 하며 기념사진>

 

<오띠언니와 결의를 다지며 손을 맞잡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사악한 경사가 시작되는 출발지점에 서서 표지판 숙지

(온통 불어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름)

 

<프랑스 길 시작 지점에 있는 표지판들>

 

<오늘의 목적지 오리손>

 

자, 오리손을 향하여 출바~ㄹ

 

 

발걸음도 가볍게 출발

....

 

하려고 했으나

 

뜨아... 막상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하니 배낭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데 9킬로그램의 배낭은 천근만근

 

ㅠㅠ

 

 

<헉헉~ 소들아... 반갑다>

 

어떤 사람들은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반대다.

평소 운동을 안해서 그런가 오르막길은 정말 싫다.

 

8킬로미터라고 해서 우습게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침.

깎아지른 듯한 오르막길을 8킬로미터 걷는다는건 평지에서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9킬로그램의 배낭을 지고 걸어야 하니...

 

 

<웃고 있어도 웃는게 아님>

 

중간에 앉을 데가 나오기만 하면 쉬어 간다.

앉을 데가 없으면 그냥 아스팔트에 주저앉아서 쉬기도 하고...

 

비오다 날씨가 개었다고 좋아했었는데

햇볕까지 쨍쨍 내려 쬐니 정말 죽을 맛.

 

<끝도없이 펼쳐지는 오르막길>

 

헉헉 거리면서 올라가면 발밑으로 이런 광경이 펼쳐짐

 

 

 

중간에 쉬면서 경치 감상

 

<세상은 다 내것이다>

 

 <무념무상>

 

 

사진만 봐도 지친 표정이 역력함.

머리는 미친X 처럼 산발을 해가지고...

이런 사진까지 공개하다니...

난 함걷아를 정말 사랑하나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오늘 오른 가파른 오르막길은 사진으론 잘 표현이 안되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가파르고 많이 힘들었다.

더 이상 가라고 하면 정말로 죽을거 같다고 느끼는 순간

드디어 목적지 도착

 

 

 

겨우 8킬로 걸었을 뿐인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물론 오르막길이고 첫날이라 그랬을거라고 위안을 해보지만

앞으로의 일이 막막해진다. ㅠㅠ

 

<오리손 알베르게>

 

오늘 묵게 될 오리손 알베르게는 마치 알프스 산장 같은 분위기다.

프랑스길 전 구간을 통틀어 제일 가격이 비싼 알베르게이기도 함 (저녁식사 포함 37.50유로)

 

 방을 배정 받고 일단 짐부터 풀었다.

방은 작지만 깨끗했고

이층침대 아래층은 오띠언니 위층은 내가 쓰기로 했다.

 

 <알베르게에 짐을 푸는 순례자들>

 

땀으로 목욕을 했기 때문에 일단 샤워부터...

호스피탈레로가 샤워물이 5분간만 나오니 재빨리 씻어야 한다고 경고를 함.

더운물이 5분간 나오는게 아니라

5분후엔 물이 아예 끊긴단다.

 

샤워장에 들어가서 일단 심호흡 부터 하고

물사용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동전넣고

요이땅~ 샤워시작.

샴푸고 린스 다 필요없고

비누 하나로 머리 어깨 무릎 발을 마구 문댄 후

샤워로 미친듯이 헹구고 나니

정말 물이 딱 끊기네.

 

 

 샤워를 마치고 저녁식사 하러 식당으로 고고~

오리손 알베르게는 여기 묵는 순례자들이 다 같이 저녁식사 하면서 사교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카미노 루트 내의 식당에서는 순례자메 라고 하는 코스정식을 제공하는데

이곳 오리손 알베르게에서도 저녁식사는 순례자 메뉴를 서빙한다.

 이곳 순례자메뉴는

야채숲, 콩을 곁들인 삼겹살 요리, 샐러드, 디저트와 커피

 

<순례자메뉴 즐기고 있는 오띠언니>

 

아래 사진에 열심히 드시고 있는 할머니는 프랑스 사람인데

친구 네명이랑 작년에 프랑스길 후반부 반을 걸었고

올해 전반부 나머지 반을 걷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영어를 떠듬떠듬 손짓발짓으로 소통했기 때문에 내가 해석한게 맞는다면 그렇다)

 

<삼겹살 못 먹는 나는 야채수프만 두사발 흡입한 후 배부른척 하기>

 

저녁식사 후에는 함께 노래 부르기와

자기소개와 카미노에 오게된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띠언니가 머라고 그랬나는 생각 안나고

나는 하느님과 독대하러 왔다고 말했던거 같다.

불어가 대다수이고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알아들은 말은 별로 없고

그냥 알아듣는 척 배시시 웃기만 했다.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 밖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 구경하기.

사진에는 자세히 안 보이는데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게 구름바다이다.

얼마 안 올라온거 같은데 꽤 높은 곳인가보다.

 

 

 <구름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알베르게 전경>

 

 <오리손 알베르게 앞>

 

 

<우리 내일도 잘 해보자. 화이팅!>

 

 

내일은 정말 결전의 날이다.

피레네 산정상을 넘어 19킬로미터를 걸어서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넘어가야 하는 강행군.

오늘 8킬로만 걸어왔어도 벌써 삭신이 쑤시고 결려 죽겠구만...

 

그래,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알람시계를 새벽5시에 맞춰놓고 침낭속으로 들어가 정신없이 잠에 빠져든다.

 

  • 홍기원 2014.05.10 16:16 ADDR EDIT/DEL REPLY

    함걷아 정말 사랑하심. 일반인의 민낯도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 일인.ㅋㅋㅋ

    • 올키즈맘 2014.05.12 09:41 EDIT/DEL

      ㅋㅋㅋ 앞으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거 더 많이 보여줄께

  • big sunny 2014.05.10 18:03 ADDR EDIT/DEL REPLY

    아, 사진에 완전 빵터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