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6일 오리손 --> 론세바예스 (19.1Km)

출발: 8:30AM 도착: 1:10PM

날씨: 맑음

 

 

피레네산을 넘어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건너야 하는 결전의 날.

오리손 알베르게에 하룻밤 묵기로 결정했던데에는 물론 체력의 한계도 있지만

카미노 관련 카페에서 이곳에서 보는 해뜨는 광경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리손에서의 출몰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구름바다가 분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해가 두웅실 떠오르는 광경은

37.5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하루 묵으면서 구경할 만했다.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보는 해뜨는 광경>

 

알베르게에서 빵과 커피 등으로 간단하게 제공한 아침식사를 든든히 했다.

오늘 루트엔 점심식사를 사먹을 곳이 없기 때문에 알베르게에서 미리 샌드위치를 주문받아서 제공한다 (4.5유로)

프랑스길내에선 목적지 알베르게로 배낭을 배달해주는 서비스 (7유로 정도)가 있는데

알베르게에 출발 전날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첫날 오띠언니와 내가 걷는 속도에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오늘은 따로 걷고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발목이 좋지 않은 오띠언니는 목적지로 배낭을 부치고

나는 그냥 배낭을 지고 가기로 결정.

 

출발지 오리손은 피레네 산중턱에 있고 산정상을 넘어 19.1킬로를 걸어서 스페인 국경을 넘으면

오늘 목적지 론세바예스에 도착하게 된다.

프랑스길 최대의 난코스

ㅠㅠ

 

카미노에 대해 리서치할 때 오늘 넘을 루트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을 했는데

워낙 사고도 많이 나고 위험한 구간이라

 날씨가 조금만 안 좋아도 클로스될 때가 많아서

운이 좋은 순례자들만이 루트를 걸어서 넘을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오기 불과 수개월 전에도 순례자 한명이 루트가 클로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여기를 넘어가다가 기상이 악화된 상황에서

잠시 쉬어간다고 앉았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스페인 햇볕에 화상을 입기 쉽다고들 해서 선크림을 처덕처덕 바르고

매낭 허리끈과 등산화끈을 단단히 조이고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

 

<저 구름바다가 그립다>

 

어제처럼 심한 급경사는 아니었지만 끝없이 돌고돌아가는 아스팔트 길 옆으로

아름다운 피레네산 정경이 펼쳐진다.

누가 여기까지 와서 돌보는건지... 들판에 소떼와 양떼도 보이고

 

<목동은 어디가고... 혼자서 풀뜯어 먹고있는 소떼들>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광경에 감탄하면서...

이런 대자연 속에 언덕길을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점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오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은 날씨라 눈이 부셨다.

 

<오르막길 정말 싫다 ㅠㅠ>

 

이런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종착지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하양 빨강 띠 두줄은 프랑스길 표시

 

<프랑스길의 카미노 이정표>

 

햇볕이 뜨거워서 땀이 나길래 등산잠바를 벗고 반팔 차림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언덕 건너편 쪽에서 순례자 한명이 손을 흔든다.

부엔까미노(Buen Camino)!!! (카미노에서 순례자들끼리 나누는 인삿말)

나도 반갑다고 손을 흔들었는데

계속 헤이~ 헤이~ 하면서 자기가 입은 잠바를 가리키는 폼새가...

고도가 높아져서 기온이 낮아지니 나보고 잠바를 입으라고 하는 말이다.

햇볕이 뜨거워서 몰랐는데 맨살에 느껴지는 기온이 차긴 차다.

그라시아스!!!!

친절한 순례자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허리에 걸쳤던 잠바를 도로 입고

발걸음도 가볍게 영차 영차~

 

<굽이 굽이 피레네 정상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헉헉~ 정말 입에 단내가 나도록 힘들다.

끝도 없는 이 길은 언제쯤이나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줄까?

물론 주위에 같이 걷는 순례자들도 보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듯한 원초적인 대자연 속에서 혼자 걸어가려니

순간 순간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외로움이 갑자기 밀려오기도 한다.

 

오띠언니랑 같이 걸을걸 그랬나? ㅠㅠ

하지만 걷는 페이스가 다른 두 사람이 함께 걷는다는건 서로를 더 힘들게 할수 있다는걸 어제 경험으로 알았으니

따로 걷기로 한건 잘 한 일인듯...

 

삼십분 걷다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쉬고

또 삼십분 걷다가 또 쉬고...

평소에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는 나의 저질체력이 원망스러운 순간이다.

 

지금껏 올라온 길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걸터앉아 물 마시며 경치구경.

내가 걸어 올라온 길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나는 이 곳에선 창조주가 이 세상에서 찍어 놓으신 점 하나에 불과하구나.

점 하나인 주제에 이 세상이 내 주위로 돌아가는 양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정녕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 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

(시편 90,3-6)

 

정확하게 글귀가 생각나진 않지만 좋아하는 시편구절을 읖조리면서 터덜터덜 걷는다.

 

<굽이굽이 오솔길>

 

한참을 그렇게 걸으니 배도 고프고 갈증도 나고 정말 더는 못 가겠다 싶어진다

바로 그때 구세주와 같이 내 앞에 나타난 푸드트럭 한대.

이 트럭에서 간단한 스낵과 음료를 파는 노점상 아저씨를 만나서 콜라 한캔을 사먹기로 함. (1.5유로)

으아~~~ 목구멍으로 싸하게 넘어가는 시원한 콜라의 맛을 평생 잊을수 없을 것 같다.

이 아저씨야 말로 하느님이 이순간 나를 위해서 이곳에 보내주신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저씨는 어떻게 저렇게 낡은 트럭을 몰고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 오셨을까?

게다가, 사실 5유로 정도 받아도 여긴 독점이라 순례자들이 선뜻 사먹을거 같은데

바가지 안 씌우고 제 가격만 받으시는 정직한 트럭 노점상 아저씨께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잠시 화살기도 바치고

다시 출발~

 

<길 양옆으로 펼쳐진 눈밭>

 

조금 더 올라오니 눈덮힌 산정상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기온이 많이 떨어진듯 쌀쌀한 기운이 맴돈다.

아까 그 순례자가 옷을 입으라고 소리 친 이유가 다 있었군

 

 .

<눈 덮힌 피레네 정상을 향하여>

 

한참을 걸어 올라가는데 한 순례자가 부엔까미노~ 하면서 다가온다.

스페인에서 온 남자인데 자기는 몇년 전에 프랑스길 후반부 반을 걸었고

이번에 나머지 반을 걷기위해서 여기 왔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이렇게 15일씩 끊어서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누구랑 왔냐고 묻길래 아는 언니랑 왔는데 따로 걷는다고 했더니

이 길은 원래 혼자 걸어야 많은 걸 얻을수 있다고 하면서

"나도 이제 혼자 걷고싶어. 길에서 만날수 있으면 우리 다시 만나자."

는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앞으로 먼저 걸어나간다.

 

앞으로 저 순례자를 다시 길에서 만나게 될지 아닐지

앞으로 또 어느 누구를 이 길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지

오늘 어디에서 머무르게 되고

또 거기에선 누구를 만나게 될지

무작정 길을 떠나고 계획없이 하느님이 내 발을 이끄시는대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카미노의 매력이 아닐까?

 

(비록 사전에 아이패드에 정보를 엄청 담아오긴 했지만...
극도의 ISTJ 성향의 내 기준에 비추어보면 어디를 예약이나 itenerary 없이 간다는 것 자체가 있을수 없기 때문에...)

 

<진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개울물에 씻다>

 

산정상이 가까워 오면서 발밑은 온통 눈이 녹아서 생긴 진흙탕이다.

어제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만난 프랑스 할머니들이 새로 사 신고 온 내 등산화를 보더니

"등산화 새로 사 신고 왔네. 하지만 그 예쁜 등산화가 내일만 지나면 더이상 그모습이 아닐걸~"

하면서 의미심장하게 웃더니만... 

ㅠㅠ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걷는건 체력소모도 크고 아뭏든 죽을 맛이었다.

카미노 카페에서 어떤 분이 강추한대로 스패츠(빗물이나 조그만 돌멩이가 신발 안으로 못들어 가게 막는 보호대)를 하고 왔기에

진흙이 바지가 다 젖는걸 방지할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카미노 가실 분들, 다른건 몰라도 스패츠는 필수입니다.)

 

<초여름에 피레네 정상은 온통 눈밭>

 

순례자들이 초여름의 눈밭이 신기한지 눈밭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난리인데

붙임성 제로인 나는 찍어달라고 말도 못하고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데

고맙게도 어느 순례자가 내가 찍어줄테니 너도 찍으라고 한다.

 

<히말라야 등반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듯...>

 

내가 카미노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아끼는 사진으로

지금 봐도 내 모습이 정말 멋지다!!!

 

<피레네산 정상에서 야~호~>

 

자, 이쯤되니 산봉우리들이 대부분 내 밑으로 보이는 것이 산정상에 다 올라온거 같다.

설악산 흔들바위에 올라갔던 때 처럼 촌스럽게 야~호~ 한번 외쳐주고

 

<자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

 

하산하는 길은 가파른데다 녹은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서

올라오는 것 보다 더 위험하고 힘들었다.

어제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저녁식사 하면서 프랑스 할머니들이

여기서 어떤 순례자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져서

응급패트롤에 실려갔다고 들었다면서

조심하라고 일러주었었다.

 

조심조심 스틱으로 지탱하면서 살살 걸어내려가 보려고 시도했는데

자꾸 미끄러져서 몇번 시도 끝에 포기하고

아예 엉덩이를 땅에 대고 미끄럼타고 내려가기로 결정.

바지가 진흙탕에 엉망이 되었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끝도없이 내려가는 내리막길>

 

눈언덕을 벗어나니 저런 숲길이 끝도없이 펼쳐지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순례자들도 없고 나 혼자인듯 하다.

그러고보니 노란 화살표도 못 본지 한참 된거 같고...

방향감각도 잃은 듯 하다.

혹시 길을 잃은건가?

등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너무 무섭고 두려운 나머지

하느님 저 좀 살려주세요~

하고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멈출수도 없고

아마존 밀림 다큐멘터리에서나 본듯한 나무숲길을 뛰듯이 털털털~ 내려가기 한 이십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노란 화살표가 보이기 시작함.

이번엔 감사와 찬미의 기도가 절로 터져 나온다.

 

당신께서 제 목숨을 죽음에서 건지시어

제 발이 넘어지지 않게 해주셨으니

하느님 앞에서,

생명의 빛 속에서 걸어가도록 하심입니다.

(시편 56,14) 

 

<카미노 도중 뜻하지 않게 사망한 순례자를 기리는 추모비>

 

카미노 길에는 저런 추모비나 십자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카미노 도중 사고를 당하거나 뜻하지 않게 길에서 죽음을 맞게 된 순례자들을 기리기 위해서

동료 순례자들이나 가족들이 마련해 준 것이라고 한다.

 

흙에서 나와 흙위를 걷다가 흙으로 돌아간 이름 모를 순례자의 추모비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코헬렛 1,2)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창세 3, 19)

 

먼지로 창조되어

하느님이 마련하신 노란화살표 따라 인생의 길을 걷다가

예고없이 그분이 부르시면 홀연히 다시 먼지로 돌아갈 나의 삶도 잠시 묵상해 보면서...

 

한참을 걸어내려가니 저 멀리 오늘 목적지인 론세바예스의 수도원이 보인다

1:10pm 목적지 도착.

이 마을부터 스페인 영토이다.

 

<오늘 목적지 론세바예스의 수도원>

 

<수도원 앞 개울에 등산화 세척>

 

<론세바예스 공립 알베르게 들어가는 입구>

 

 

<론세바예스 공립 알베르게>

 

오늘은 론세바예스 마을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게 된다.

 

 

<오늘도 수고한 기특한 내 발>

 

알베르게가 3시 넘어서 문을 연다고 해서 수도원 마당에 주저앉아 등산화 부터 벗고 샌들로 갈아신는다.

47년간 뚱뗑한 몸 이끌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수고했는데

머나먼 스페인까지 끌려와 또 고생한 내 발~

다친데는 없는지 요리조리 살펴본다.

다행히 물집도 안 나고 까진데도 없다. 휴우~

 

3시경 오띠언니도 도착.

내리막길 무서워서 혼났단다.

 

3시반 경 알베르게 문 열어서 입장~

알베르게 사용료는 5유로

알베르게는 현대식 건물로 깨끗하고 시설이 아주 좋아 보였다.

남녀 공용 큰 도미토리에 이층침대가 복도 양 옆으로 위치해 있는 구조.

샤워실은 다행히도 남녀 구분되어 있었다.

 

<론세바예스 공립 알베르게 접수 데스크>

 

침대에 짐을 풀고 샤워부터 했다.

여자샤워장에 뜨거운 물도 한정없이 나와서 오랜만에 마음놓고 샤워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걱정할 남편에게 안부 카톡하려고 와이파이를 찾으니 일층 안내데스트 옆에서만 겨우 잡힌다고 해서

거기 놓인 의자에 앉아서 겨우 겨우 나 잘있슴~ 이라고 짧은 카톡 보내고

오띠언니랑 빨래방 찾아 고고~

빨래는 집에서 준비해온 빨래비누로 손빨래 하고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짤순이에 넣어 탈수 (짤순이 사용료 1유로 도네이션)해서

빨래줄에 널고

 

이번엔 저녁식사 준비하러 부엌으로 고고~

부엌이 무척 크고 시설도 현대적이다.

카미노 루트의 많은 알베르게에 부엌이 있다고 해서 뉴저지에서 간편음식을 조금 준비해 왔다.

특히 오늘 묵을 론세바예스 근처에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바 나 식당 말고

음식 재료를 살만한 수퍼가 없다고 들어서

뉴저지에서 쌀 조금, 마른김치, 일회용미역, 다시국물용 티백등을 준비해 왔기에

주먹밥, 불린 김치, 미역국 만들어서 저녁도 먹고

내일 싸가지고 갈 주먹밥도 따로 준비해 두었다.

(오띠언니가 나보고 준비의 화신이라고 혀를 내두름. 그래도 주먹밥은 나보다 더 많이 먹었슴)

 

저녁 먹고 나니 8시경.

카미노에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는게 예사이다.

오늘도 다사다난했던 긴 하루~

내 두발로 걸어서 피레네산 정상을 지나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기특한 생각이 든다.

뉴저지 아짐 아직 죽지 않았어~ ㅋ

 

침낭에 들어가 누우니

갑자기 온 몸이 두드려 맞은거 같이 아프고 피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알베르게도, 침대도 깨끗하니 오늘은 정말 잠이 잘 올 듯 하다. 

 

P.S. 오늘이 주일이라는걸 깜빡하고 미사참례 못했다.

어쩐지 수도원 성당 종을 뎅뎅 치더라니...

이 일로 스페인 신부님에게 손짓발짓 고해성사 본 이야기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