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2. 11. 14:04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이상헌 저

 

자 : 이상헌 / 출판사 : 생각의 힘 


"기억은 어버지의 월급봉투이고 어이없게 죽어간 친구의 월급명세서다거기에는 건조한 숫자만 담겨 있지만  숫자 안에 담긴 삶들은 고단하고 짠하다노동과 경제학은 번번히 여기서 어긋난다."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로 일하는 이상헌 박사의 수필


1부에서는 우리나라 일터의 풍경을 그렸다. 노동하며 먹고사는 사람들과 그들을 고용한 기업주들간 관계의 이상과 현실. 효율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경영이론상 노동자는 기업에게 최소의 노동을 제공하고 최대의 임금을 받아가야 하고 기업은 노동자로부터 최대의 노동을 착취하고 최소의 임금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 효율이론에서 간과한 것은 노동자와 기업가 모두 공평, 정의, 신뢰를 중시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콧노래를 부를수 있고, 계산대에서 의자에 앉아서 일할수 있는 상생의 일터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생의 일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소비자로서 우리는 그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대한 해답으로 불량 기업에 대해서만 불매 운동을 아니라 정형화된 과잉 친절을 직원에게 강요하는 기업을 거부하고따라서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말한다.


2부는 세계 경제 위기에서 기존 경제학이 실패한 내막과 특히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진 경제학에 대한 성찰 이야기이다.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가정하는 주류경제학은 과연 현 세계 자본주의 경제 위기를 잘 예측하고 설명해 왔던가? 신문 지상에 거의 매일 소개되는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 (부상이나 사고 등등)을 분석하는데 과연 경제학은 최소한의 역할이나마 해왔던 것인가? 이 장에서는 애덤스미스, 쿠츠네츠, 케인즈, 그리고 조안로빈슨 같은 여성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이 아주 쉽게 소개되어 있고 특히 피케티 책의 해설은 내가 그동안 읽어보았던 어떤 글들 보다도 적확한 비유와 쉬운 설명이 압권이다. 이외에도 최저임금과 최고소득 규제의 배경이 되는 각종 철학과 논리도 소개되어 있으며, 노동자와 소비자 로서의 나의 권리가 서로 상충할 수 밖에 없는 서비스 산업에서의 영업시간 규제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3부는 저자의 독서량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데 저자가 책으로 만난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판 종북빨갱이 라고 할수있는 매카시즘으로 찍혀서 박해를 받았던 헬렌켈러, 아인슈타인, 찰리채플린, 헤밍웨이를 비롯해서 폭력과 낭만 사이를 줄타기했던 스탈린, 핸리포드-히틀러-비트겐슈타인에 얽힌 비화, 대통령인 남편을 배후조종한 엘리노 루즈벨트, 사회개혁가, 반전 평화주의자, 수학자, 철학자, 논리학자이며, 노벨문학상까지 휩쓴, 그야말로 '신은 불공평하다'라는 불평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천재 버트런드 러셀의 깃털보다도 가볍고 번잡했던 사생활 이야기 등등...


4부는 저자가 특별히 기억하고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작년에 작고하신 김수행교수님, 저자가 밀양할매들을 볼때마다 떠올린다는 저자의 외할머니, 굴뚝위를 오르는 활동가들, 그리고 세월호 아버지들을 비롯해서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의 문체는 간결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서정적이다.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서정적이기는 여간해서는 참 어려운 컴비네이션인데 경제학자인 저자가 평소에 시를 많이 읽은 탓에 가능할 일이었다. 장자의 빈배에는 당당한 노동자와 시민을 태우고 다니며,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에 파국을 가져오게 만든 냉동칠면조는 경제학자들이 이론으로 세운 이상향과 노동자의 현실간의 괴리를 상징하는 등, 이 책에는 문학작품을 이용해서 노동의 현실을 빗댄 재미난 비유들이 참 많이 나온다. 또한 수많은 경제학자의 딱딱한 이론들과 드라이한 경제현상들을 쉬운 사례, 재미난 비유, 그리고 탁월한 유머감각을 사용해서 설명한다. 밖에도 서태지, 브루스스프링스틴, 에릭크렙튼 등의 대중가요 가사 또는 시의 문외한인 내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시인들의 싯귀들로 서정적으로, 그러나 절대로 손발 오글거리게 하지는 않도록 적당한 감수성의 한도내에서 풀어내는 저자의 맛깔스러운 글솜씨는 그저 탄복과 부러움의 경지일 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오르는 경지가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받은 것에 집중하고 남이 가진 것은 공짜로(물론 책값이나 공연 관람료 같은건 지불해야 하지만...) 맘껏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