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한알 속의 우주: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저자 : 장일순 / 출판사 : 녹색평론사


 

이 책은 70년대 반독재 운동을 하다가 그 한계를 깨닫고 새 삶의 방식을 통한 생명운동이라는 새로운 혁명 방식을 주창하신 장일순 선생의 강의와 대담의 녹취록 모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갖 일을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선생님 답게 저서 한권 남기지 않으셨다고 한다. 논리적이고 거창한 이론, 거대담론, 극렬하고 강한 주장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선생은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강한 주장을 하지 않으신다. 세상에 자기 주장을 하기 전에 다른 존재들의 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여 보라는 말씀은,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자기주장이 넘치는 이 세상에 큰 가르침을 준다 (김종철)


이 책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내가 그동안 느꼈던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를 이 책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다른 피조물을 지배하라는 창세기의 말씀은 마치 인간이 다른 피조물 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해월의 동학사상을 접목해서 성경을 재해석한 선생의 말씀은 인간의 집이 아니라 굳이 짐승의 먹이 그릇인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인간만의 구원이 아니고 모든 피조물, 즉 우주 만물 속에 존재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하늘의 새, 들판에 핀 나리꽃들, 들풀들 까지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섬기시는 하느님 (마태 6, 25-34)... 들에 나가 풀 한포기와 대화하고 벌레, 들새들과 대화하면서 그 만나는 자리마다 하느님이 계심을 느끼셨다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깨달음 이다. 따라서 나락 한알 속에 우주 만상, 즉 하느님의 존재,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가 깃들였다는 이러한 믿음은 나락 한알, 하찮은 미물, 가난하고 약한 인간 한명도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운동의 근간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 볼때, 지구 전체에 생명이 살아 남느냐 아니냐, 하느님의 섭리가 오롯이 담긴 우주의 기틀이 제대로 돌아가느냐 아니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는 지금, 내가 너보다 돈이 더 많고, 더 잘났고 하는 경쟁의 문화는 어리석고 무의미한 문화, 죽은 문화, 즉 반생명의 문화라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며, 다 같이 살자는 공생의 문화가 바로 생명운동의 실체라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한 15, 5). 가지 하나가 썩어 들어가면 포도나무의 나머지 부분도 살아남지 못하듯, 포도나무의 작은 가지 하나 하나에 깃든 하느님의 실체, 즉 생명을 모두 살려보자는 삶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나는 선생의 생명 운동을 이해했다.


포도나무의 작은 가지로 태어난 우리는 현재 
공멸적 무한경쟁으로 전체 포도나무를 죽일 것이냐, 
아니면 하느님 존재가 깃들어 있는 다른 가지들 (즉 인간과 피조물들) 의 생명을 존중하고 공생하는 길로 함께 나아갈 것인가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 갈림길에서 우리는 두가지 셈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건강한 먹거리를 재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독성 물질로 병든 땅에서 토지의 소유권을 다투는 것이 무의미하듯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인간의 존엄성이 메마른 사회에서 경쟁을 통해서 일등과 꼴찌를 가르는 것 또한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여기서 토지의 소유권 다툼이나 인간의 경쟁 같은 인간의 셈법과는 그 차원이 완전히 다른 절대세계에서의 하느님의 셈법이 존재한다.


일등이 꼴찌 되고 꼴찌가 일등 되는 셈법, 포도밭에 아침에 온 일꾼도 저녁이 다되서 온 일꾼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셈법, 성실하게 일 해온 큰아들에게는 "하늘나라가 줄곧 너의 것이었다" 라는 립서비스만 하는 반면 아버지를 배반하고 도망가서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위해서는 비싼 상을 내리고 잔치를 벌여주는 아버지의 셈법... 인간의 셈법에 따르면 매우 불공평하고 불합리해 보이는 셈법이 하느님, 곧 생명의 셈법이 아닐까?


장일순 선생의 이러한 비협조 비폭력 (악의 세력에는 협조하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생명사상을 실천하면서 상대방을 서서히 설득해 나가는) 혁명의 방법은 자칫하면 허무주의, 낭만주의로 오해 받을 소지가 다분히 있을 듯하다.


또 이런 삶의 방식의 전환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요원한 일이고, 무한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일지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속도나 효율 깨나 좋아하는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때 절대 쉬운 길은 아니지만만상이 고요한 한밤에 풀섶에서 들려오는 벌레의 거짓없는 소리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부끄러워 하셨다는 선생님의 가르침 대로


효율과 경쟁으로 점철된 내 삶도 돌아보면서 허영과 교만을 끊임없이 벗겨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풀벌레 소리 하나 들을 수 없는 서울 생활이 벌써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