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3. 31. 04:44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내가 책을 사는 경로는 대강 세가지 이다. 많이 읽고 나와 취향이 비슷한 지인의 추천, 신문기사나 SNS 통해 서평을 읽고 마음이 움직여 구입하는 경우, 독서광으로 알려진 유명인들이 추천하는 책들중 구입.


쓰시기로 유명한 인문학자 이자 신학자 이신 강남순 선생님께서 삶의 궤적과 경험치가 다른 유명인들의 독서 리스트를 무조건 답습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쓴소리를 남기셨다.

타인이 만든 지식에 중심화, 종속화 되지 말고

나의 , 가치관, 성향, 갈망, 호기심, 욕구 등에 맞추어 책을 고르고, 읽고, 내면화 하여

지식의 주체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감시 스스로 읽으라.


 http://hankookilbo.com/v/9818043b2e98434fa0a181e7b6ee7274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기전에 이런 사설을 늘어 놓는고 하니 제버릇 못주고, 도둑이 제발 저려서 이다.  <청춘의 독서> 끊임없이 읽고 쓰는 사람, 소위 지식소매상으로 알려진 유시민이 청춘시절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으면서 독자들에게 소개한 서평 모음집이다.


어렵지만 책의 내용을 무조건 요약 것이 아니고강남순 선생님의 조언대로 감히 스스로 읽어서책의 내용을 주체적으로 내면화하여 얻은 나름대로의 질문들을 써보려고 한다.

 

죄와 , 그리고 구원의 본질은 무엇일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나폴레옹 같은 비범한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죄를 짓고도 형벌을 피해 갈수는 있다. 하지만 양심의 성찰이라는 진짜 벌은 어떠한 인간도 피해갈 수는 없다. 비범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모두 이러한 죄와 벌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수용소에 갖힌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구원은 어떠한 의미인가?


질문들에 대한 책의 해답은 다른듯 하면서도 일맥상통 하다. 도스토엡스키는 죄와벌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도 죄를 지은 평범한 죄인들이 나누어 주는 사랑의 힘으로 이루어 질수 있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짓게 되는 죄와 양심의 성찰로 인한 고난()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은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반면,  솔제니친은 인간의 존엄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절망의 골짜기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의외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나 노동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난과 절망의 순간에서 발견한 인간의 사랑과 노동의 힘이 구원의 원천이라는 것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두편의 서평은 나에게 세월호에 죄없이 희생된 아이들, 그리고 아직까지 벌을 받지 않은 가해자들, 그리고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악마의 탈을 인간들도 양심 성찰 이라는 내면의 벌을 받고 있을까?  그런 자들도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들일까? 생사를 가르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세월호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도 하느님 구원의 손길이 닿았다고 확신할 있을까? 하는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대 지식인의 삶은? 역할은? (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지식인이 말하는 것은 전부 진실인가? 신문 헤드라인을 전부 믿어도 되는가?

권력과 지식을 동시에 가진 지식인(언론인) 우리 사회에 위험한 존재인가?

위험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지식인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대한 해답

 

우리 사회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혁명, 멜서스의 인구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맹자의 맹자)


멜서스는 말한다. “사회적 불평등과 하층민의 빈곤은 인구법칙이라는 자연법칙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이를 개선하려는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도 하층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사회악이라고. 멜서스의 이러한 이론을 동식물계로 확대시킨 개념이 바로  찰스다윈의 적자생존 개념이다. 하지만 적자생존에 의한 인간의 진화로는 완전히 설명이 안되는 인간 고유의 특성, 이타주의와 도덕관념에 대해서도 다윈은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이 집단 간에도 일어 난다고 하는 집단선택론으로 설명했다.

 

그러면 현대 인간을 우월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으로 나누는 가장 두드러진 잣대인 부와 빈곤에 대한 상이한 견해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류의 역사를 가진자(자본가) 가지지 못한 (임금노동자) 간의 끊임없는 계급투쟁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계급투쟁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가 인간 존엄성과 자유 회복의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이상향 건설을 위해서는 자본가계급을 타도해야만 한다고 마르크스가 끊임없이 세상사에 개입하고 선동했다면, 소스타인 베블런은 가치평가를 자제한 채로 돈이 많은 부자들의 행태를 조용히 관찰하면서 부에 대한 객관적인 이론을 세워나갔다. 베블런은 부자들(유한계급) 부를 추구하는 이유는 상대적인 부의 경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소비와 여가 때문이라고 보았다. 돈은 쓰기 위해서 버는 것이 아니고 돈을 버는 , 자체가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서로 경쟁적으로 명품을 사서 휘감고 다니고, 경쟁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유한계급론은 설득력을 갖는다. 정작 생존의 수단으로 필요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소유 자체가 목적인 사람에게는 화수분처럼 샘솓는 .   


그럼 사회는 어떻게 진화하게 되는가? 유한계급론을 정립한 베블런은 다윈의 추종자로서 진화론을 이용하여 사회변화를 설명했다. , 사회구조의 진화는 제도의 자연선택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성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제도가 변화한 환경을 더이상 수용할 없는 경지에 이를 사회의 진화(진보) 이루어 지고 부를 가진 자들(유한계급) 가진자들에 비해서 변화한 환경의 압력을 버텨낼 있는 힘을 가지므로, 그들은 혁신의 요구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뿐이다. , 유한계급이 보수적인 것은 물질적 이익이나 기득권 때문이 아니라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보편성과 더불어 변화하지 않고 버텨낼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부유층의 특성이 합쳐진 자연적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인간의 보수성에 대해서 맹자는 베블런과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흔히 보수주의자 라고 하면 물질적 이익과 출세를 탐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맹자는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존중하고,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인과 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수 있는 사람,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속에서도 스스로 빛날수 있는 항성과도 같은 사람 이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는 거리가 사람들이고,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악덕 자본가나 부로 자신을 과시하는 유한계급 과도 거리가 사람들이다. 진짜 보수주의자가 매우 드문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만나고픈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인간의 근본적 보수성에 대해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인간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존재일까? 인간에게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을 , 모든 인간이 그것에 저항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이 가진 부라는 것이 진보적 개혁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발걸음을 늦추도록 만드는 보호장치이자 안전장치인 걸까?  나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호기심을 가진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특히 진보성향이 강한 인간일수록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 호기심을 가진 인간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사고하고, 가치체계로 내면화 하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고, 결과를 성찰해서 다시 가치체계를 수정함으로써 끊임없이 진화하는 속성이 있다. 인간이 가진 부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인간의 본성마저 부정하지는 못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떠한 새로운 정보의 학습도 거부하면서 기득권 내에 안주하려는 주변의 보수적인 인물들을 관찰해 보면 베블런의 말이 맞는거 같기도 하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대구의 시장 아주머니는 유한계급도 아닌데 보수적인 걸까? 사회를 바꾸는 쪽으로 투표권을 행사해야 무한계급이 계속 보수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대대로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회의 진보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헨리 조지는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하는데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기술진보의 경제적 혜택을 토지 소유자가 지대 형식으로 독점하기 때문에 근로 대중은 영원히 빈곤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지주의 불로소득을 조세로 징수하고 그대신 다른 모든 세금을 폐지하자는토지 단일세 운동 제안했다. 이런 헨리 조지의 사상을토지 공개념또는지공주의라고도 일컫는데, 하느님이 주신 토지를 특정한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사회적 범죄라고 간주하는 개념이었다. 이런 토지 공개념은 하느님이 토지는 백성들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라고 하셨다는 성경 말씀에 입각한 것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토지를 분배해 주실 , 제비를 뽑아 지파별·가족별로 균등하게 분배해 주셨고, 토지의 영구 매매를 금지하시고, 다만 토지 사용권을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허용하셨다. 그리고 토지 사용권을 팔았을 경우, 희년 전이라도 가까운 친척의 도움으로 또는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토지를 언제라도 되살수 있게 하셨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최후에는 도래하는 희년에 토지권을 회복할 있게 하셨다. 헨리 조지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품등 생존물자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1인당 생존물자, 생존물자/인구수 감소할 수밖에 없어 빈곤은 불가피하다 멜서스의 이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인구 증가로 생겨나는 새로운 입은 과거에 있던 입보다 더 많은 식품을 소비하지 않지만, 새로운 손은 더 많은 물자를 생산해낸다고 주장했다. 특히 토지 공개념과 토지 단일세 제도 등을 통하여 부의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인구가 많을수록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은 더 많아지므로, 평등이 보장되는 상태에서 인구의 자연증가는 개인을 가난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유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역설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책의 저자 E. H. Carr 역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이며, 사실은  스스로 없는 자루와도 같아서 속에 역사가가 무엇인가를 채워주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한다. 또한 진보란 인간이 세대를 걸쳐서 경험을 축적하고 그것을 자기의 경험과 결부시킴으로써 역사의 흐름속에서 계속적으로 발전시켜 인간 능력이다. 이는 현존하는 제도를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선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성의 이름으로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인간의 대담한 결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렇다. 진보란 점진적 개선과 혁신, 상반되는 두가지 모두에서 이루어 지는 인간능력의 개발이므로, 때로는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어떠한 시기에는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담한 혁명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내가 현재 꿈꾸는 사회의 변혁이 설사 허망한 한낮의 꿈과도 같이 멀게만 느껴진다 할지라도 인간의 잠재력을 믿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동시에 항시 깨어서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고, 어떠한 가설도 무조건 받아들이 말고 의심해 보는 도전정신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 교훈을 서평에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