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2 - 임금과 자본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5. 25. 12:43


이 책에서 탐구해야 할 문제는 생산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왜 임금은 생존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가? 이다.

 

흔히 생산의 3요소토지, 자본, 노동이라고 한다.

토지: 모든 자연의 물질, , 기회를 포괄하여 일컫는 말. 사람이 자연과 접촉,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토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토지는 자연에 의해서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므로 자본으로 분류될 수 없다.

노동: 모든 인적 노력을 포함하는 것

자본: 부에서 토지와 노동을 제외한 모든 것

 

그렇다면 부와 자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생산적 노동 즉 원료에 가치를 부여하는 노동의 목적이자 결과

이러한 부 중에서 교환 과정에 있는 부 (즉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부)는 자본인 반면 소비자의 수중에 있는 부는 자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의류 생산자가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옷은 자본이고 자기가 입으려고 만든 옷은 자본이 아니다.

 

현 정치경제학의 임금학설의 오류:

 

현재 임금학설은 임금 = 자본의 양 / 노동자의 수 인데, 자본이 증가하는 속도 보다 더 빠르게 노동자의 수가 증가 하기 때문에 임금은 노동자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 임금은 자본으로부터 나온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여러 학설의 근거가 된다. 임금이 자본과 노동 간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는 학설. 산업은 자본의 제약을 받으며 따라서 자본의 축적이 노동의 고용에 선행되어야 하고 자본의 축적 없이는 노동의 고용이 있을 수 없다는 학설. 모든 자본 증가는 산업에 추가 고용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수 있다는 학설. 유동자본을 고정자본으로 전환하면 고용의 유지에 필요한 기금이 줄어든다는 학설. 고임금 보다 저임금 하에서 고용이 더 많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학설. 이윤의 크기는 임금의 크기에 반비례하므로 이윤은 노동자의 생존비용에 따라 달라진다는 학설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그럼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어떠할까?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실에서 고임금 (노동이 희소함) 은 저이자 (자본이 풍부함)와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임금과 고이자는 서로 동행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이 희소하면 자본도 희소하고, 노동이 풍부하면 자본도 풍부한 현상을 말해 주는데, 이러한 현상은 위에서 언급한 임금학설과 모순된다.

 

여기서 헨리 조지가 증명하려는 명제는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임금이 그 댓가로 지불되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온다 이다.

 

위의 명제는 분업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각자의 보수는 자신이 실제로 생산한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들어 내가 나물을 캐어 사슴 사냥꾼이 사냥한 사슴고기와 교환한다면 실제적 효과면에선 내가 사슴을 사냥하고 사슴 사냥꾼에게 나물을 캐게 한 결과와 같으며, 이 경제활동을 통해서 내가 얻은 임금 (사슴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아서 번 돈)은 실제로 내 노동의 생산물 (사슴고기) 로부터 나온 것이다.

 

임금이 자본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노동생산물로부터 나오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 노동 형태별로 구분하여 살펴보자.

 

(1) 자영 노동의 경우

 

새알이나 야생딸기를 채취하는 일, 또는 가죽으로 구두를 만드는 경우, , 딸기, 구두는 노동에 의해 생겨났고 따라서 여기서 얻은 임금은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부터 나온 것이 분명하다.

 

(2) 타인에게 고용되어 노동하거나 타인의 자본을 사용하여 노동하고 그 직접 생산물과 동일한 물자를 임금으로 받는 경우

 

알이나 딸기를 채취하기 위해 또는 구두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그 사람이 생산한 알, 딸기, 구두를 임금으로 지불한다고 가정했을 때 역시 임금의 원천이 노동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3) 보통의 노동고용 및 화폐로 임금을 지불받는 경우

 

인부들이 고용되어 알, 딸기를 채취하거나 구두를 만들고 노동의 댓가로 임금을 받는 경우, 고용주는 자기 자본에서 임금을 지불하기 전에 노동이 창출한 자본 (, 딸기, 구두에 해당하는 부)을 먼저 얻게 된다. 따라서 고용주의 입장에서 보면 임금이란 노동으로부터 받은 자본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이미 생산한 부의 일부를 되돌려 받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노동에서 나오는 것임이 확실하다.

 

(4) 노동의 목적물이 획득 내지 완성되기 전에 임금이 지불되는 경우

 

선박을 만드는데 1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조선소 부지를 정리할 때 이미 완성된 선박의 가치 창출이 시작되었고 선박이 완성될 때까지 매일 매시 선박의 가치 창출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불된 임금의 가치 대신에 부분적으로 완성된 선박이 있기 때문에 선박이 완성되기 전에 지불된 임금이라고 해도 사업주의 자본을 축낸 것이 아니다따라서 이 경우에도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노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로 네가지 노동형태의 경우 모두 노동이 항상 임금에 선행해서 이루어 지므로, 임금의 원천은 자본이 아니라 노동의 생산물임이 분명해 진다. 

 

위에서 보인 실제 현상과 논리로 인해서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임금이 그 댓가로 지불되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온다라는 명제는 이제 증명이 되었다.

 

임금이 자본에서가 아니라 노동 생산물에서 나온다면 자본과 노동과의 관계에 대한 현재의 임금 이론은 틀렸으며, 빈곤을 덜기 위해서 내놓은 각종의 처방, 즉 자본 증대, 노동자 수의 제한, 노동자 작업 능률 향사 등은 폐기 되어야만 한다. 즉, 개별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임금을 창출한다면 노동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임금이 줄어들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노동의 능률이 증가하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임금은 노동자의 수와 더불어 오히려 증가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필요 전제에 대해서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전제란 인구 증가에 의해 자연의 이용이 늘어나면 자연의 생산력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멜서스의 인구론을 살펴 보아야 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