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는 토지에 대한 댓가인 지대와 지대법칙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자본에 대한 댓가인 이자가 존재해야 하는 정당성과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 목수 A10일에 대패 한 자루를 만들 수 있다. 연간 작업일은 300, 대패 한 자루로 하루에 판자 한 장을 생산한다. 대패의 수명은 290일 이다.


B 목수가 A 목수에게 1년 후에 못 쓰게 되는 대패 대신 같은 품질의 대패를 반환하는 조건으로 대패를 빌리자고 했다. A 목수는 그런 조건으로는 대패를 빌려 줄 수 없다고 하면서, 대패 하나만 돌려받는다면 1년간 자신이 대패를 사용할 경우 얻을 이익을 잃는데 대한 보상이 없다고 하였다. B 목수는 이 말에 승복하여 대패 이외에 판자 한 장 (대패를 사용하는 댓가로 받은 이자)도 얹어서 돌려주기로 합의 하였다. A 목수가 만일 대패를 빌려주지 않고 자신이 사용한다면 290일 후에 대패가 못 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연간 작업일 중 나머지 10일 동안 일해서 새 대패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B 목수가 대패를 빌리지 않는다면 10일 동안 스스로 대패를 만들어 나머지 290일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후에 보면 두 사람 다 대패에 관한 한 연초와 같은 상태가 된다. A 목수는 대패가 있고 B 목수는 대패가 없게 된다. 대패 한 자루로 하루 노동해서 판자 한 장 생산할 수 있으므로, 1년 후에 둘 다 판자 290장이라는 연간 노동의 결과를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이 대패를 반환하기만 하면 1년 후 두 사람은 대패를 빌리지 않았을 경우와 똑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나 대패 반환 이외에 판자 한 장을 더 준다면 1년 후 A 목수는 291장의 판자와 새 대패가 있는 반면, B 목수에게는 289장의 판자가 있지만 대패는 없게 된다. 이렇게 대패를 해마다 계속 빌린다면 B 목수의 소득은 해마다 판자 한 장씩 누진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A 목수의 소득은 해마다 판자 한 장씩 누진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이 계속된다면 결국에는 처음에 대패 하나를 빌려준 결과로서 A 목수가 B 목수의 모든 노동 결과를 취하게 되지 않는가? , B 목수가 A 목수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자가 자연스럽고 형평성이 있는 것인가?

 

자본에 대한 오해 1: 이자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서 온다.

 

이자의 근거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도구의 힘을 들지만 이는 정의와 사실 어느 쪽으로 보아도 근거가 되지 못한다. A 목수가 B 목수에게 대패를 빌려 줌으로써 대패를 사용함으로써 증가된 힘A 목수 --> B 목수 로 함께 이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 A 목수가 B 목수에게 빌려준 것은 노동을 능률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10일간 노동의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바늘 보다 능률적인) 재봉틀 50달러 짜리를 빌린다고 해서 바늘 50달러 어치를 빌릴 때 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은 부와 마찬가지로 교환가능성이 있다. 자본은 하나의 물건에 국한되지 않으며 교환의 범위 내에서 같은 가치를 가지는 무슨 물건이든 (재봉틀 이든 바늘 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A 목수가 1년 후에 받은 이자 (판자 한 장)는 어떤 요인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 원인은 대패로 인하여 증가된 힘이 아니고 시간이라는 요소, 즉 대패의 대여와 반환 사이의 1년이라는 시간차에 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포도주, 꿀벌, 양이나 돼지 같은 가축처럼 자연의 재생산력을 갖는 부의 경우 특별히 노동이 추가로 투입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자본이 증식하게 된다 (포도주는 숙성되고, 꿀벌은 꿀을 생산하고, 가축은 성장해서 새끼를 낳고 등등). 포도주가 필요한 목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패와 포도주를 시장에서 맞교환 하면 이러한 교환과정을 활용하면 이렇게 자체 증식력이 없는 자본 (대패)도 자연의 생명력에 의해 생산되는 것(포도주)과 비슷한 증가분을 얻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지역에서 일정한 노동을 투입하면 식물성 식품 200 또는 동물성 식품 100을 생산할 수 있고, 을이라는 지역에서는 같은 노동으로 식물성 식품 100 또는 동물성 식품 200을 생산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두 가지 식품이 동일한 양만큼 필요하다면 같은 노동을 투입할 때 각 지역마다 총 150이 생산된다. 그러나 갑 지역에서는 식물성 식품에만, 을 지역에서는 동물성 식품만 생산에만 노동을 투입하여 필요한 양만큼 서로 교환한다면 각 지역의 주민은 주어진 노동으로 총 200을 얻을 수 있고 단지 교환에 소요되는 비용이 여기서 빠질 뿐이다. 이렇게 해서 각 지역마다 생산물을 자체에서 생산해서 바로 소비하지 않고 교환에 부치면 증가분을 얻을 수 있다.

 

자본에 대한 오해 2: 이자는 자본이 노동을 착취한 결과이므로 정당한 것이 아니다.

 

위의 대패의 예로 돌아가서, 만일 A 목수가 B 목수에게 대패를 빌려주지 않고 1년간 대패를 시장에서 교환과정에 투입했다면 여러 경로로 유통되어 단계마다 A 목수에게 증가분을 주었을 것이고, A 목수가 대패를 직접 만드는 대신 노동의 일부를 다른 대상으로 이전하여 증가분이 생길 수 있었을 것이므로 A 목수는 1년 후에 대패 한 자루 그 이상의 이자를 돌려 받지 않는다면 B 목수에게 대패를 빌려 주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B 목수도 대패를 가짐으로써 시간 요소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1년 후에 대패 한 자루 이상을 반환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곳의 물질의 품질과 능력이 어디에서나 균일하고 인간의 생산력도 균일하다면 이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지만 (교환과정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여러 가지 형태의 생산이 동시적으로 필요한 사회에서는 이익의 pooling 현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1천 달러를 소유하고 있고 이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준다고 가정하자. 이 때 돈 1천 달러에 대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달리 돈을 구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이 내 돈을 쓰고 그 댓가를 지불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부가 생산되는 시장에서 내 돈 1천 달러를 교환, 유통함으로써 돈을 빌려간 사람에게 자본의 증가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자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이며 보편법칙의 결과물 이다.

 

이자를 철폐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는 임금이 자본에서 나온다고 하는 학설에서의 오류와 유사하다. 철폐론자들의 이자 관념은 자본의 사용자가 소유자에게 지불하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이것은 이자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을 포괄한다. 누구든 (자본의 소유자 뿐만 아니라) 자본을 사용하고 그로 인한 증가분을 취하는 사람은 이자를 받는 셈이다.

 

흔히, 거대한 자본 집중의 횡포와 탐욕에서 생기는 이윤을 생산요소로서의 자본에 대한 정당한 댓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자) 와 혼동하기 쉬운데 조금만 분석해 보면, 흔히 이자라고 착각하는 이윤의 대부분이 실은 자본의 힘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집중된 자본에 의해서 또는 집중된 자본이 나쁜 사회제도와 결합함으로써 생긴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이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자가 아니다.

 

이제 이자법칙을 도출하기 전에 앞에서 살펴보았던 다음의 두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

1.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자본을 고용한다.

2. 자본의 양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언제나 아래 원인에 의해 증감될 수 있다.

(1) 자본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의 증감에 의해

(2) 부와 자본 간의 전환에 의해

 

자유의 조건하에서 자본 사용 댓가의 최고한도는 어떤 특별한 형태 내지 용도로 노동에 적용할 때 나오는 효율성 증가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 일반이 가지는 평균적인 증가력에 의해 정해진다. , 이익이 생기도록 하는 것은 노동의 힘이며 자본은 이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지분도 없다. 예를 들어 모직공장의 생산이 같은 노동력으로 물레와 수직기를 사용하는 생산보다 많다고 해서 공장에 투자한 자본가가 그 생산력의 차이를 전부 차지할 수는 없다.

 

자본에 대한 오해 3: 자본과 노동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그러면 자본 (이자) 와 노동 (임금) 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일정량의 부는 일정량의 노동이 일정 기간 동안 일정량의 자본을 사용하여 생산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생산물이 노동과 자본의 댓가로 나누어지는 비율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만일 이 두 비율 사이에 어떤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이 자본 사용을 기피하거나 자본이 노동에 공급되지 않을 것이다. 노동과 자본은 인간의 노력이라는 동일한 요소의 상이한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동에 의해 생산되며, 생산에서 자본의 사용은 노동의 한 형태일 뿐이다. (부의 분배는 기본적으로 세 갈래 (지대 vs 이자 vs 임금) 가 아니고 두 갈래 (지대 vs 이자+임금) 이다.) 자본과 노동에 대해서 같은 정도의 노력 내지 희생에 대해서 동일한 가치가 보상되므로, 자유경쟁이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임금과 이자 간에 적정한 균형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즉 이 둘이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기 보다는 각자가 공동 소득에 기여한 몫만큼 가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임금과 이자가 동시에 상승,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 임금과 이자 간에는 어떤 관계 내지 비율이 존재하며, 이 관계 내지 비율은 매우 서서히 변화하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 관계 내지 비율에 따라 노동이 자본으로 전환되어 당시의 지식 정도, 기술 상태, 인구밀도, 직업의 특성, 교환의 다양성과 범위 및 신속성에 비추어 생산에 필요한 만큼의 자본을 공급한다. 이러한 관계 내지 비율은 노동과 자본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지되며 따라서 이자는 임금의 등락과 함께 등락하게 된다.

 

요약하면 이자법칙은 다음과 같다.

 

임금과 이자간의 관계는 자본이 재생산 형태로 사용될 때 그 자본이 가지는 평균적인 증가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대가 상승하면 이자는 임금의 하락과 더불어 하락한다. 즉 이자는 경작의 한계에 의해 결정된다.


(경작의 한계: 생산성이 가장 낮은 토지 (업종)에서 얻을 수 있는 생산력)


다음 편에서는 분배의 요소 중 마지막, 임금과 임금법칙에 대해서 알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