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9 - 문제의 해결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06.02 23:06


전편에서 살펴보았듯이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이 경작의 한계를 그 정상적인 위치 밖으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 노동과 자본은 더 적은 댓가로 만족하거나 생산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생긴 불황기는 다음과 같은 시기까지 계속된다. (1) 지대의 투기적 상승이 가라앉는 시기 (2) 인구가 증가하고 각종 개선이 이루어져서 노동의 능률이 높아짐으로써 정상적인 지대선이 투기적 지대선을 따라잡는 시기 (3) 노동과 자본이 불리한 댓가 (즉 이자와 임금의 하락) 를 받고도 생산에 참여하기로 타협하는 시기. 아마도 이 세가지가 같이 작용하여 새로운 균형을 이루면 모든 생산 요소가 다시 생산에 참여하여 경제 활동이 한동안 이루어지다가 지대의 상승이 다시 발생하고 불황이 다시 찾아오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모든 거래는 상품과 상품의 교환이므로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 중단 (이것이 상품 불황의 특성임)은 실제로 이와 교환되는 다른 상품의 공급 중단이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제한은 산업과 교환의 전체 구조 (산업 피라미드)를 통해 확산되는데 산업 피라미드는 토지를 저변으로 해서 형성된다. 다른 업종에 대한 수요를 창조하는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업종은 자연으로부터 부를 뽑아내는 업종이다. 상품의 교환 단계 내지 업종을 하나씩 추적해 나가다 보면 이러한 생산 내지 구매력 감소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토지에 노동이 투입되는 것을 제약하는 어떤 장애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장애는 지대 또는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임이 분명하다.

 

무인도에 사람을 데려다 놓으면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데 생산력이 최고도로 발달한 곳 (대도시)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무인도에서는 자연의 원료와 힘을 이용할 수 있는 반면, 대도시에서는 그 이용을 거부당하기 (즉 노동이 자연으로부터 배척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이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토지다. 노동이 부를 창조한다는 말은 비유일 뿐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 전 인류가 끝없이 노동한다고 해도 햇살속에 떠다니는 작은 티끌 하나도 창조할 수 없다. 인간은 우주 속에 항해하는 이 지구를 한 푼도 더 무겁게나 가볍게 할 수 없다. 부의 생산이란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노동을 통해 필요한 형태로 바꾸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에 부를 생산하려면 반드시 이 물질, 즉 토지를 사용해야 한다. 토지는 인간의 삶터이고 인간이 필요한 물자를 꺼내 쓰는 창고이며 욕구를 충족시킬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노동을 투입하는 대상이 되는 원료이다. 그러므로 토지는 모든 부의 원천이다.

 

노동에 필요한 토지가 사유재산으로 전락하여 노동생산성의 향상에 따른 부의 증가가 모두 지대로 흡수해 버리게 되면 진보에 의해 생기는 모든 이익이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고 임금은 노동자가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노예 수준으로까지 하락하게 된다.

 

더구나 기술 개선으로 인하여 노동의 분업이 가속화 되면 개별 노동자는 전체 산업 과정 (체인)의 아주 작은 연결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다른 사람이 동시에 일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욕구를 직접 충족할 수도 없고 자신을 이러한 산업 과정으로부터 분리할 수도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인간성의 본질적인 요소, 즉 신처럼 자연 환경을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능력을 잃고 말게 되며 노예나 기계나 상품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진리에 도달하였다. 노동을 투입해서 부를 생산하려면 토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에 필요한 토지를 장악하면 노동의 열매 중에서 노동자의 생존에 소요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장악하게 된다. 따라서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큰 원인은 토지 소유의 불평등에 있다.


다음편에서는 현재 주창되는 해결책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이고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