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토지사유제를 정의와 역사적인 측면에서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도록 하자.


인간의 노력에 의해 생산된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보유향유할 수 있는 명백한 권원 (title) 이 발생한다. 내가 가진 펜은 정당한 내 것이고 어느 사람도 이 펜데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 땅에서 난 원료를 채취한 사람 --> 펜의 생산자 --> 수입상 --> 문방구점 주인 --> 나 의 생산, 교환(구매) 과정을 거쳐서 펜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이 나에게로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펜에 대한 나의 배타적 소유권은 각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연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소유에 대한 모든 정당한 권원은 모두 생산자의 권원과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연권에서 도출된다. 그 밖에는 정당한 권원의 근거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자연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데, 자연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 노력해서 얻은 결과만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며 노동의 결과라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인정한다. 따라서 노동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 배타적 보유의 유일한 권원이다.

둘째, 노동에 근거하는 소유권은 다른 종류의 소유권 가능성을 배제한다. 이는 만일 다른 권원이 존재한다면 두 권원은 상호 모순 된다는 뜻으로, 따라서 토지의 사적 소유는 옳지 않다.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이 토지에서 자연이 제공하는 기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배제하게 되므로 이는 그 사람의 노동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부인하게 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에 의한 배타적 소유권 인정은 부 (=노동 생산물) 의 사유를 인정하고 토지의 사유를 부인하며,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부와 토지의 사유를 동시에 인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땅이라는 창조주의 하사품을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는 자연적인 권리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취득하는 권리이며 생존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의 동일한 권리에 의해서만 제약될 수 있는 권리이다. 또한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합의하여 토지에 대한 자기들의 평등한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후세대의 권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지구에 잠시 세들어 살고 있는 우리 세대가, 자연이 인간의 모든 후손에게 베풀어준 토지에 대한 후세대의 권리까지 결정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지의 첫 경작자는 토지를 마음대로 취득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그 토지를 원하면 다른 사람의 동등한 권리에 의해 첫 경작자의 권리는 제한된다.

 

노예사유제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토지사유제 역시 정의롭지 못하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해야 하는 토지의 소유는 다른 사람을 자기 사유재산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노예제도의 핵심은 노동자로부터 동물적 생존에 필요한 것만 남겨 두고 모든 생산물을 가져가는데 있는데, 생산력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지대가 꾸준히 상승하여 그 향상분 이상을 삼켜 버리는 토지사유제 하에서의 노동자는 자유라는 형식하에서 누가 억지로 시키지는 않지만 생존을 위해서 억지로 일하는 실질적인 노예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토지사유제를 철폐하게 되면 기존의 토지소유자에게 완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틀린 생각이다. 어느 나라의 토지가 그 국민의 것이라면 토지소유자라는 개인이 지대에 관한 권리를 갖는 것은 정의롭지 않으며, 따라서 국민이 자기 물건의 시장가격을 남 (토지소유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아도, 인간 사회의 형성기에는 토지사용에 대한 공동의 권리가 인정되었으나 강탈에 의해서 토지사유제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특정 계층이 토지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취득하여 이익을 취했으며 사회내에 점차 불평등이 심화되어 갔다. 하지만 봉건제가 성립하면서 토지의 절대적 소유제도가 조건적 소유제도로 변모되었고 봉신은 지대수취권을 갖는 대신 일정한 의무도 부담하였다. 토지 경작자의 집단이 형성되어 이들은 일정한 봉납의 의무를 지는 한편, 토지를 공동재산으로서 경작하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봉건시대 이후 근대 문명 사회에서, 봉건적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생긴 새로운 토지소유제도에 의해 노동계층이 예속되는 경향이 발생하였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