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달한 결론이 옳다면 인간의 진보라는 더 큰 일반법칙에도 부합할 것이다.

그렇가면, 인간 진보의 법칙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지구상의 최저 수준의 미개인과 최고 수준의 짐승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에다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보태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힘과 상태의 개선 일체를 우리는 문명 (civilization) 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문명화를 통해서 개선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개선의 법칙은 무엇인가? 각 사회가 도달한 문명의 단계가 서로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각종의 사회제도 중에 어떤 것은 문명의 진보를 촉진하고 어떤 것은 그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같은 제도가 어떤 때에는 진보를, 어떤 때에는 퇴보를 촉진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진보에 대한 기존의 학설문명화된 종족은 우월한 종족이고 문명의 진보는 이런 우월성에 기인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그 오류를 증명한 바 있는 정치경제 관련 학설 (즉 임금이 자본가에 의해 지불되고 또 경쟁에 의해 하락한다고 보는) 이나 맬서스의 인구론과 그 맥락을 함께하는 견해다윈의 진화론에 의해서 더욱 확산되었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인간은 새로운 노력과 발명을 하게 되고 이러한 개선 및 개선능력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며, 또 가장 잘 적응했거나 가장 많이 개량된 사람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 남아 자손을 퍼뜨리는 경향과, 가장 잘 적응했거나 가장 많이 개량된 부족, 민족, 인종이 사회집단간 투쟁에서 살아 남는 경향에 의해 확대된다.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진보는 인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서서히, 꾸준히, 냉정하게 작용하는 힘의 결과이다. 현대문명을 괴롭히는 전쟁, 노예제도, 전제정치, 미신, 기근, 페스트, 궁핍과 비참 등의 강력한 원인에 의해 열등한 유형이 배제되고 우등한 유형이 확산됨으로써 인간이 전진한다. 이러한 전진한 결과를 정착시키고 지난 세대의 전진을 새로운 세대의 전진을 위한 바탕으로 삼는 힘은 유전이다. 이 이론의 현실적인 결과는 일종의 낙관적인 숙명론으로 우리가 무슨 행위를 하든지, 우리가 돕건 방해하건, 신의 멧돌은 돌아간다.” 문명은 어떤 힘이 정해진 방식대로 작용한 결과이며, 이 힘은 서서히 인간의 특징을 개조하고 인간의 힘을 개선하고 고양시키며,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는 장기간에 걸친 종족 교육의 결과이며, 이러한 개선을 통해 문명은 계속해서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진화론적 견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즉 인간의 진보가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어떤 원인의 결과라고 설명하는 이 이론은 문명이 고도로 진보한 후에 정지해 버리고 쇠퇴해 버리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서구인이 미개인이었을 때 인도인과 중국인은 문명인이었지만 19세기 서구가 문명으로 진보할 때, 그들은 정지했다. (즉 이렇게 정체되고 화석화된 문명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집트 문명이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있었던 모든 문명은 활기찬 성장기 이후에 정체기가 있었고 다음에는 쇠퇴기가 있었다. 진보가 인간을 개조하여 더 큰 진보를 낳은 것이 아니라 한 때는 현재의 서구문명처럼 활기차고 번성했던 모든 문명이 저절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가 장기간에 걸친 교육의 결과하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한 시대의 미개인인 다음 시대에 문명인이 되었다가 새로운 미개인의 등장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성원을 원자로 본다면 사회의 성장이란 물질의 통합과 그에 수반하는 운동의 소멸 현상이다. 그 과정에서 물질은 불확실하고 비체계적인 동질성에서부터 확실하고 체계적인 다양성으로 변화하며, 남아있는 운동도 이와 유사한 변환을 겪는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모습과 성운설에 입각한 태양계의 모습 간에 유추가 성립한다. 태양의 열과 빛은 운동하는 원자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고 원자가 균형상태 내지 휴식상태에 이르면 끝난다. 그 후에는 부동상태가 이어지다가 외부적 힘의 충격이 있을 때 이 상태가 깨어진다. 그러면 진화의 과정을 역으로 밟게 되어 운동은 통합되고 물질은 가스의 형태로 스러지다가 다시 농축되어 운동을 낳는다. 사회의 경우에도 개인의 통합에 의해 힘이 발생하고 이로써 문명이라는 빛과 열이 생긴다. 그러나 이 과정에 정지되고 개별 구성원이 균형상태에 이르면, 각자의 고정된 위치가 있다고 할 때 화석화 현상이 뒤따른다. 그러다가 야만족의 침입에 의해 사회가 붕괴되고 흩어짐으로써 그 과정이 다시 시작되고 새로운 문명이 성장한다. 이러한 유추를 통해 우리는 분명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사회의 진보를 중단시키는 장애는 진보의 과정 속에서 생기며 과거의 모든 문명을 파괴한 원인도 문명의 성장 그 자체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문명간의 차이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시간과 장소가 다른 여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 즉 문명의 차이는 개인에 내재하는 차이가 아니라 사회에 내재하는 차이다. 크고 작은 여러 사회는 각기 지식, 신념, 관습, 언어, 취향, 제도, 법률 등으로 하나의 그물을 짠다. 개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짠 그물에 출생에서부터 편입되어 죽을 때까지 머문다. 이 그물은 인간의 정신이 싹트고 발전하는 바탕이 된다. 관습, 종교, 편견, 취향, 언너 등이 이 그물에서 자라고 지속된다. 또 이러한 그물을 통해 기술과 지식이 전수되며, 한 세대의 발견이 다음 세대의 출발점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이 그물은 때에 따라서는 진보에 대한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이 그물이 있기 때문에 진보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 진보의 법칙 (문명의 진전을 지배하는 법칙)은 무엇인가?

 

진보를 자극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의욕이며 정신은 인간이 진보하는 수단이다. 정신력은 진보의 동력이며 인간은 진보에 투입하는 정신력 (, 지식의 확대, 방법의 개량, 사회 상태의 개선에 투입하는 정신력)에 비례하여 전진한다. 이러한 정신력은 사회 속에서 서로 어울림으로써 자유로워지고 분업과 협력이 가능하게 되어 진보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개선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가 주어질 때 그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되므로 (정신력이 쓸데없는 싸움에 소모되는 것을 막아주므로), 평등 속의 어울림이 바로 진보의 법칙이다. 어울림과 평등, 이 두 원리가 조화를 이루면 진보가 이룩되다가 토지 보유로 인한 자연적 독점에 의해서 불평등이 생기면 문명이 화석화되기 시작하고 개선은 중단되며, 현상 유지에 필요한 정신력마저 유출되면 퇴보가 시작하고 만다. 결론적으로 인간 진보의 법칙은 도덕 법칙이다. 정의를 촉진하고 권리의 평등성을 존중하며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동등한 자유에 의해서만 제약되도록 하는 사회제도는 문명을 발전시키고 그렇지 못한 사회제도는 문명의 발전을 중단시키거나 퇴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남에게 줄 수 없는 몇가지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받는다. 이 권리에는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가 포함된다.” 토지에 대한 평등권이 부정되면 이들 권리도 부정된다. 토지는 사람이 생활하는 유일한 터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하사물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부정하면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보상이 되지 못한다. 우리 문명에 존재하는 죄악과 비참에 대한 책임은 전능자 (Almighty)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창조주(Creator)는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고 이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토지가 사유재산으로 되어 있는 한, 현재 창조주의 하사물을 독점하고 있는 계층이 새로운 하사물마저 독점하게 되고 그 결과 지대는 상승하지만 임금은 기아선상으로 내려가고 말 것이다.

 

이 책에서 밝히려고 노력한 진리는 쉽사리 수용되지 않을 것이다. 수용이 쉬운 진리였다면 벌써 수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진리가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는 그렇다. 이 사회에서 진리와 정의는 되풀이해서 세워졌지만 또 되풀이해서 무너지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역사상 씨를 뿌린 사람 중에 그 씨가 자라나는 것을 본 사람은 드물며, 그 씨가 도대체 자라기나 할 것인지를 확실히 안 사람도 드물다.

 

지금까지의 탐구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여러 학설을 검토하고 이들이 오류임을 알았다. 인간의 힘이 낭비되고 인간이 커다란 고통을 겪는 원인은 자연법칙에 있지않고 오히려 자연법칙에 순응하지 않는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진보는 인간 본성의 개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은 일반적으로 불변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문명의 전진은 인간의 구성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이 변화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회발전의 결과는 영구적으로 고정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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