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 단상 1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6. 8. 00:18



개념들에 대한 단상

 

1. 노동

 

헨리 조지는 이 책에서 인간이 노동으로 얻은 결과물에 대한 권리만 인정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창세기의 문화명령과 일맥상통 하는데,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땅을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하신 문화명령을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토지에 노동을 투입하여 부를 생산하라는 의미이며, 노동을 통해 생산된 부에 대한 권리만 그 사람의 소유로 인정하신다는 뜻이다. 즉 부의 유일한 원천은 노동이고 토지는 이러한 노동이 행해지는 터전이다.

 

이러한 명제를 인정한다면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자본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얻은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노동자가 임금을 받는 것은 자본가에게 고용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본인이 생산한 생산물의 가치만큼 돌려받는 것이고, 따라서 이 원리에 의하면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 명료하고 단순한 명제에서 우리 사회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본인의 노동으로 생산된 부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권리를 인정받고 있으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40-50% 정도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재해 및 실업 급여 등의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고달프기만 하다.


2. 자본

 

마르크스는 노동 대 자본 이라는 대립 구조 (, 자본이 노동을 착취한다)로 경제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데 반하여 헨리 조지는 토지 대 노동, 자본, 즉 노동과 자본을 하나로 묶어서 이 묶음이 토지와 균형을 이루는 구조로 설명한다. 헨리 조지의 이러한 설명은 언뜻 보기에 자본주의 현실과 잘 안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자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부를 창출하기 위해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 즉 가까운 미래에 노동으로 전환될 자본을 의미하므로 큰 틀에서 보면 자본은 노동의 특수 형태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러한 자본은 좋은 자본이고 이렇게 자본을 사용하는 자본가는 착한 자본가이다. , 금융상품으로 페이퍼에만 존재하여 금융자본가의 배만 불리는 자본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을 촉진해서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나도록 하는 자본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본이며, 이러한 자본은 노동으로 전환되어 부를 생산하므로 그 방점은 역시 부의 유일한 원천인 노동에 있다. 우리가 자본을 노동과 대립 되는 개념 (마르크스) 으로 인식하는 것은 자본이 노동을 고용한다는 선입견 때문인데, 헨리 조지는 이와 반대로 노동이 자본을 고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에서의 자본은 어떠한 모습인가? 2014년 미국의 상위 500대 상장 기업들은 1조 달러의 이윤을 거둬 들였지만 그 대부분의 돈은 생산 재투자나 서민과 중산층 일자리 창출에 쓰여지지 않았다. 막대한 배당금, 자기 주식 사들이기 (감자) 그리고 경영관리자의 수십억대 연봉을 주는데 이윤의 대부분이 쓰였다. 이렇듯 경제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마이너스 이자율로 남아도는 돈은 그들이 주장하듯이 낙수효과에 의해 가난한 하층부로 넘쳐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이자율이 낮은 상황에서 기관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안겨주는 고위험 금융상품을 찾아다니게 되고, 이에 서민 중산층들은 부패하고 비윤리적인 월스트리트 투자회사들의 먹잇감이 되어 과도한 주택담보대출과 기형적 파생 금융 상품 대출을 어마어마한 고이자를 주고 빌릴 수 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옥스팜은 다보스포럼에서 2016년에 세계 인구 1%가 나머지 99% 보다 더 많은 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20151분기 한국 30대 대기업이 생산에 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사내유보금은 710조원 대에 이르렀고 이는 지난해 한국 GDP(1500조원)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천문학적인 규모이다. 기업에 이렇게 돈이 쌓이는데 비해 국민들은 날로 가난해진다. 우리나라 현재 가계부채는 1200조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미 위험한 수위에 도달하고 있는데 계속되는 불황과 경기 침체로 소득이 늘 여지는 거의 없는 반면 미국이 연방금리를 올리면서 국내 대출금리 마저 상승하고 있어 가계 이자 부담은 앞으로 더더욱 커지게 전망이다. 헨리 조지의 예측은 현실에서 정확히 들어맞았다. 생산에 투입하지 않고 자본가의 수중에 쌓아 놓은 자본의 폐해는 서민, 중산층, 노동자가 경제 생산과정에서 소외되고 생존권이 박탈되는 고통으로 돌아가고 만다.

 

3. 토지

 

토지는 인간의 삶의 터전이다. 모든 인간은 토지에서 나는 식물과 동물을 식량으로 취하고, 토지를 개량하여 생산물을 얻은 임금으로 살아간다. , 토지는 인간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물질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의 육체를 빚어 만드신 흙도 토지에서 나왔으니 인간 생명의 근원이 바로 토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느님은 태초에 인간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인간 각자가 소유할 수 있는 육체를 주셨고, 이 육체가 생존할 터전으로 토지를 내어 주셨는데 이 토지는 지구상에 한정된 양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전제하에 소유를 허락하신 것이다. 따라서 토지는, 그 토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노동으로 생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임시로 사용권을 부여하게 되고, 그 토지의 사용권은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제한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인간의 탐욕은 생산이 아닌 투기의 목적으로 토지에 대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배제시키게 되는데, 우리 사회에 부가 증가함에 따라 빈곤도 함께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이 바로 토지 수탈에 의한 인간 생존권의 박탈 때문이라고 헨리 조지는 주장한다. 어느 토지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긴다든지 상가가 생겨서 토지 가격이 오르는 현상은 그 토지 소유자가 토지에 들인 노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사회 공동체 전체가 창출한 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 상승을 토지소유자가 혼자 독차지하는 것은 정의에 맞지 않는다. 또한 인간 생존의 터전인 토지가 투기 목적의 상품으로 전락되어 생존을 위해서 삶의 터전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을 배제시킴으로써 생존권을 박탈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마지막 방세를 남기고 자살한 쪽방촌의 노인 등) 게다가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들이 힘을 합쳐서 노동하여 어떤 지역 토지의 가치를 높여 놓으면 대규모 토지 자본이 그 가치를 모조리 흡수해 버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 현실은 부조리함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 자산의 격차가 주택 자산이나 소득 격차보다 크다. (2006년 기준 주택 자산 지니계수와 소득 지니계수는 각각 0.5680.351이다.) 이처럼 토지 자산의 불평등이 심한 것은 토지 소유 편중 현상 때문이다. (2005년 기준 우리나라의 토지는 상위 1%가 땅값 기준으로 45.3%를 갖고 있으며 상위 10%는 전체 국토 토지가치의 72%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통계는 토지소유의 불평등이 부의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라는 헨리 조지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뒷받침 해준다.

 

헨리 조지가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지공주의는 국가가 토지를 국유화 하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이다. 즉 토지를 생산에 사용하거나 투기 목적으로 보유하거나 그 보유 의도에 관계없이, 토지를 보유하려는 사람은 지대 (토지 임대료)를 세금으로 내고, 이 지대를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며 그 대신 지대 이외의 다른 세금은 없애자는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대 이외의 다른 세금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생산 효율성을 낮추는 세금이므로 이렇게 했을 때 사회 전체 부의 생산성은 훨씬 높아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즉 임금이 자본으로부터 나오므로 노동자들이 자본에 대항하여 그들의 몫을 늘리자는 마르크스의 주장과는 달리, 임금은 노동으로부터 나오고 임금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에 노동과 자본을 더욱 효율적으로 투입해서 생산을 늘려야 하는데 토지의 사적 소유가 시장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므로 토지 가치에 과세하자는 것이 지공주의의 핵심이다.

 

투기성 토지 보유와 비윤리적이고 기형적인 금융 자본의 잘못된 결합은 오늘날 자본주의 실패의 결과로 돌아왔다. 일본의 장기침체도 과도한 부동산투기로 인한 버블로 발생하였으며, 한국도 부동산 침체와 전월세 가격 폭등으로 인해서 중산층이 붕괴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더구나, 미국 가계의 과도한 주택담보대출과 그에 따른 비윤리적 파생금융상품의 가격 폭락으로 촉발된 미국 경제의 위기상황은 세계 경제위기로 번져 나갔다.

 

창조주가 인간을 이 지구상에 내셨을 때 주신 것은 단지 두 가지, 노동해서 먹고 살라는 육체와 그 육체의 터전이 되는 토지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인간은 이 두 가지에서 모두 소외되고 그 결과 생존권과 존엄성이 훼손되고 있는 지경이다. 1879년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현상을 정확히 예측했고 그 대안을 제시했던 헨리 조지의 위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음편에 계속)


참고자료:

 appleberlin.tistory.com/entry/bodenrente-ware-pluenderung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243757.html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25109.html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