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음악은 나의 힘

by 함께걷는아이들 2014.05.29 11:32

나는 소위 음악 덕후이다.

 

5살때 피아노를 시작한 이후로 48살이 된 지금까지

내 인생에 가장 오래 끈기있게 지속해 온 유일한 일이 음악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음악을 전공하진 못했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은 어느 음악 전공자 못지 않을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 피아노

 

내 인생 처음 접한 악기이다.

피아노 이외에 색서폰과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머니머니 피아노의 청아한 소리인듯 싶다.

어릴적 음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따라 유명 연주인들의 콘서트를 따라 다녔는데

내가 짝사랑에 빠졌던 음악가는 바로 번스타인.

 

 

내가 아주 어렸을 적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와 함께 내한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피아노를 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의 멋진 모습에 나는 마음을 홀딱 빼앗겼었다.

2001년인가 번스타인의 타계소식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사십 평생 클래식 피아노곡만 쳐왔던 나는 45세가 되어서 처음 재즈피아노를 잠시 배우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다양한 스케일의 종류와 클래식과 완전히 다른 재즈의 세계에 멘붕이 왔었다.

음악을 하면서 나는 정말 타고난 재능이 없구나 하고 좌절해 보긴 평생 처음.

 

누가 재즈뮤지션들 보고 무식한 마약쟁이들이라고 했던가?

그들은 클래식뮤지션과 또 다른 차원의 천재들이다.

<요즘 연습중인 재즈곡.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했으면...>

 

 

 

2. 색서폰

 

학교 밴드에서 색서폰을 불던 우리 아들이 악기를 그만두면서 집에서 놀고 있는 악기가 아까워서 배우게 된 테너색서폰.

 

<뒷배경에 우리집 강쥐 레이디 찬조출연>

 

중후하고 낮은 저음이 매력적이고 재즈밴드에서 솔로연주를 담당하는 악기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색서폰 동우회가 활성화되어 있는듯 한데

내가 색서폰을 시작한 7년전만 해도 사십대 아줌마가 취미로 테너색서폰을 하는게 흔한 일은 아니었던거 같다.

아무래도 여자가 폐활량이 딸려서 남자들에 비해서 좋은 톤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연습으로 보완하려고 노력 중이다.

 

3. 클라리넷

 

최근 레슨을 시작한 클라리넷.

 

 

함걷아재단에서 운영하는 관악단 (wind orchestra)에서 주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이다.

 

이것도 아들이 하다가 그만 둔 악기를 고쳐서 시작한 건데

클라리넷은 색서폰이랑은 또다른 매력을 가진 음색을 가졌다.

근데 핑거링은 색서폰보다 어려운 편이고

색서폰과 비슷한 핑거링도 있는 반면 어떤 부분은 또 완전히 달라서

처음 시작한 지금 완전 헷갈려서 머리가 뽀개지려고 한다.

ㅠㅠ

 

삑사리가 심하게 나는 현재 제일 괴로운건 우리집 강쥐들.

 

<엄마~ 삑사리는 괴로워요 ㅠㅠ>

 

내가 클라리넷 불 때마다 와서 멍멍 짖고 난리다.

클라선생님 말이 강쥐들이 원래 클라리넷 피치를 싫어한다는데

삑사리가 날때만 짖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 클라리넷 소리 듣기가 괴로워서 그런듯. ㅠㅠ

 

<미안해 강쥐들. 엄마가 요렇게 불수 있을 때까지 좀 참아줘>

 

나는 아마추어 지역밴드에서 테너색서폰 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엔 현악중심의 오케스트라는 많은 반면 관악단(밴드)는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데

미국엔 학교마다 밴드가 있고 지역밴드도 많은 편이다.

 

우리 밴드는 아마추어로 목/금관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일주일에 한번 만나 두시간씩 연습을 하고

일년에 세번 정도 정기공연을 가지며

여름 독립기념일엔 지역의 공원에서 폭죽 터뜨리면서 야외공연도 한다.

 

<정기공연하는 우리 밴드>

 

우리 밴드의 단원들은 사회의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내 옆에서 색서폰 부는 아저씨는 목수이고

그 옆의 색서폰 주자는 올해 90세인 전직 소방수 출신 할아버지이며

그 외에도 변호사, 수의사, 교사, 배관공,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아마추어가 모인 밴드가 프로들 처럼 높은 수준의 음악을 연주할 수는 없지만

우리 나름대로 레파토리를 고민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연주하는 만큼

관객들에게 꽤 좋은 평을 듣고 있다.

 

<뉴욕필하모니의 공연>

<뉴욕필 공연이 열리는 링컨센터>

 

물론 가끔 뉴욕필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보고 온 날

내가 연주하는 소리가 음악이 아닌 소음으로 느껴져서 좌절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내가 하는건 음악이 아니야... 소음이야 ㅠㅠ>

 

내가 한달에 한번 자원봉사 연주 가는 양로원의 할머니들이 내 색서폰 연주에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시고

그 가족분들이 내 손을 잡고 자기 어머니가 내 연주를 무지 좋아하신다고 고맙다고 인사할 때마다

서툴지만 음악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음악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해 보면

음악이 전문음악가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되고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그 사람들 인생의 한부분이 되었으면 하고 느낀다.

 

<의외로 음악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 사진은 최근 플룻 전공생으로 밝혀진 푸른거탑의 최병장>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주위의 사람들과 나누는 순간 그 힘이 배가 될수 있음을 내 음악 인생 반평생을 통해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2013년 올키즈스트라 상위관악단 정기연주회에

나는 테너색서폰 대리주자로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나는 느낄수 있었다.

상위 관악단 아이들도 음악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에 점점 중독되어 가고 있고

이제 음악은 그들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2013년 올키즈스트라 상위관악단 정기연주회>

 

함께걷는아이들 재단을 설립하면서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반응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음악이냐?"

는 것이었고

한국에서 음악, 그것도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악기구입과 레슨비의 압박으로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의 아이들만이 할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음악사업 하는데 여러가지로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우리같은 민간단체가 아이들 미래의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 해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러한 문제는 차라리 정부가 해결하는 편이 빠를 것이다.

 

앞으로 십년 후 이십년 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먹고 사는 문제에 빠져 허덕거릴 때

음악은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고

힘든 현실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해방구가 될 것이며

또한 그들이 음악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주위 사람들과 나눌 때

우리 사회에 음악이라는 해피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오늘도 함께걷는아이들의 올키즈스트라 사업을 담당하는 우리 직원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이 사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올키즈스트라 사업을 확산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올키즈스트라가 확산되려면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플리즈!!!!>

 

 

우리 올키즈스트라 상위관악단이 제주 국제관악제에 초청받았는데

현재 비행기표 모금 중이에요.

http://www.artistree.or.kr/portal/crowd/crowdProjectDetail.do?menu_id=60500&fund_seq=178&menuGbn=02

(모바일로도 참여 가능합니다. 구글플레이어나 앱스토어에서 '예술나무' 앱을 다운받은 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