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리영희, 대담 임헌영)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이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대담형식으로 쓰여진 선생님의 회고록이다.

 

1. 우리가 현재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실과 진실의 괴리

 

친미, 반공 이데올로기를 독재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사용해 온 우리 사회 지배 세력의 영향으로 우리 세대는 그렇게 교육과 세뇌를 받으며 살아왔다. 나는 자라면서 한번도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의심을 해본적이 없을 정도로 그 세뇌의 강도는 컸다. 선생은 6.26 전쟁 때 입대, 통역장교로 최전방에서 근무하면서 군대라는 지극히 폐쇄적인 집단이 자기성찰의 과정이 없으면 얼마나 부패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 경험하면서 반전평화주의자가 되셨다고 했다. 해방후 동남아 패권을 잡으려는 미국이 친일 반민족 세력을 권력의 대리자로 세우면서 서북청년단 등이 저지른 온갖 테러와 불법 행위, 폭력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친미, 반공 이데올로기의 무조건적인 숭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느끼게 된 선생은 외신기자로 활동하면서 여러 기사와 평론을 발표하게 된다. 이러한 기사와 평론의 근거 자료로 미국에서 나온 극비문서들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친미, 우익 진영에서 비판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친미, 반공주의를 반대함으로써 자연히 민족주의,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에 심취하게 된 선생이었지만 민족적 결점과 약점을 미화, 은폐, 합리화, 정당화하는 과잉 민족지상주의나 모든 인간적, 사회적 현상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이분법적으로 단정하려는 절대적 교조주의는 반대한다고 하셨다.

 

2. 루쉰과 장일순

 

선생께서 학문과 사상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루쉰과 장일순 이다. 루쉰은 중화사상과 한민족 우월주의로 자기만족의 덫에 빠져 있던 중국민족이 자신의 내면적 결점을 직시하도록 하는 글을 쓴 중국의 지식인이다. 노신의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고 한다. “4천년의 억압적인 봉건억압제도에 의해서, 중국 인민이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무쇠로 된 단단한 방 속에 같힌 채 질식 상태로 죽어가고 있다. 감각이 마비됐기 때문에 죽어간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편안하게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로 죽기를 거부하는 몇 사람이 그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그 무쇠의 방 벽에 바늘만한 구멍이라도 뚫어서 죽는 줄도 모르고 편안하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깥을 볼 수 있는 가는 빛과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를 넣어준다면, 그것은 오히려 편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고통만을 주는 일이 아닐까? (중략_ 정신과 감각이 마비되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서 생각하고 볼 수 있는 빛과 공기를 줄 수 있다면, 몇 사람이라도 죽음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여 힘을 합쳐 무쇠방을 부수고 모두를 살려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도 할 수는 없지 않을가?” 선생은 이 글에서 독재권력에 항거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루쉰이 선생에게 사상과 학문의 스승이었다면, 장일순은 인생의 진정한 벗이었다. 두 분다 평생을 독재 권력에 맞써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크게 두가지 면에서 상반된 면을 보인다. 첫째, 날카로운 논리에 기반한 글로 자신의 사상을 펼치신 리영희 선생과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행한다) 라는 노자의 기본 원리를 실천함으로써 버젓한 저서나 설교 하나 없이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생명운동을 해오신 장일순 선생의 일생은 같은 목적을 완전히 상반된 다른 방법으로 행한 사례이다. 둘째, 기독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로 살아가신 리영희 선생에 비해서 장일순 선생은 천주교 신자로서 동학이나 노자사상을 기독교에 접목하여 교회쇄신 운동에 헌신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반대 성향의 사람에게 끌린다고 하지 않던가?

 

3. 종교관

 

선생은 평생 무신론자로 사셨다


요컨대 나에게 신이란 것은, 원시시대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공포심과 시간을 초월해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생존의 공포심, ‘인간적 한계를 충족해줄어떤 존재로서 신을 창조했고 또 신을 필요로 했디고 생각하는 거요. ‘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의 필요 때문에 신을 창조했다고 나는 믿고 있어.” (508


크리스찬으로서 무신론자의 견해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한가지는 인간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비해서 신의 존재 여부는 모른다는 것이다. 존재 여부가 불분명할 때 무엇이 기초선이 되어야 하는걸까? 나는 존재의 부정도, 긍정도 그 기초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말씀처럼 유한한 생명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로서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기초선이 아닐까? 종교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머리로 이해하거나 과학적인 근거로 검증하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마르크스 유물론에 영향을 받으셨고, 평생 논리와 과학적 근거로 학문에 열중하신 선생께서 신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신 것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주류 세력들이 보여온 행태들을 목격하신 연유로 선생의 기독교에 대하 회의는 더욱더 굳어졌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4. 사회에 대한 낙관론

 

4.19, 5.16, 5.18 등 독재와 거듭되는 민족적 시련, 과 선생 개인으로서도 잦은 투옥생활을 겪으심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민족과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론을 유지하셨다.

 

나는 언제나 개인은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일 수 있지만, 무리(집단)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체로서 사고하는 인간과 무리속에서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큰 차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민족의 역사에서도 임형(대담자)이 원하는 것처럼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자기결제의 현명함으로 움직여진 실례를 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중략) 이런 실증적인 역사적 근거와 나 개인의 철학적 고찰로 볼 때, 결국 인간집단은 실패를 거듭하는 괴로움 속에서 다음에 올 실패의 괴로움을 다소나마 감소하는 정도의 지혜를 획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집단이 이렇게 많은 목숨과 고통과 설움을 겪고서야 다음에 올 운명에 대해서 조금씩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피할수 없는 인간적 한계가 아닌가 싶어.” (267-268)

조국의 미래에 대해 이러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긴 세월동안 정권의 갖은 탄압을 이겨내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5. 베트남에 대한 애정과 관심

 

미국이 베트남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1960년부터 미국이 패망하고 베트남에서 도망치다시피 철수한 1975년까지의 긴 세월 동안, 정말이지 나의 온 관심은 베트남전쟁에 쏠려 있었어요. 그동안 미국 군대의 포탄과 고엽제와 기총소사로 수없이 죽어간 베트남인들의 죽음과 고통과 눈물을 어느 하룻밤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나는 신문사 일에 몰두하고 술도 많이 마시는 생활을 할 때에도 아무리 바빠도, 그리고 아무리 취했어도, 고통받는 베트남인들을 생각하면서 분노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잠자리에 든 날이 단 하루도 없었어요. 그와 같은 신념은 바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군대와 통치집단의 용서할 수 없는 폭력성과 잔인하고 사악한 본성에 대한 반감으로 굳어져갔지요.” (339-349)

 

베트남전쟁의 많은 불가사이는 세계의 누구나가 한결같이 생각하는 것이에요. 한국 국민들에게는 그런 막강한 미국에 대해서 짚신 신고 화승총 같은 것을 메고 대항한 베트남 인민이 승리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사실이었지. 그런데 방금 내가 열거한 것과 같은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때늦은 자기비판을 듣고 보면, 하나도 불가사의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들을 거예요. 한국인들은 미국의 물질적 힘만을 이해할 줄 알고 그것에 의존하려고만 하지, 그 물질적 힘을 제외한 나머지의 그 많은 요소와 덕성을 지닌 약소민족 인민대중이 지니는 힘을 불행하게도 이해하지 못해요.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을 오로지 미국의 사고방식에 길들여져버린 한국인들은 진정으로 강력한 인간의 사상과 힘을 모르고 있어! 이것이 한국인들 머릿속에 긴 세월에 걸쳐서 주입된 미국식 사고방식의 해독이라고!” (355)

 

나는 베트남전쟁 끝에 하나의 확고한 의견을 갖게 됩니다. 미국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 밖에 없다.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 정치, 군사, 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이에요. 베트남전쟁이 그 노골적인 본보기이지만, 이미 그때애는 라틴아메리카의 10여개 약소국을 잇달아 군사적으로 침법, 점령했고, 약소후진국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정의를 추구하려고 하면 그러 정권들은 미국이 뒷받침하는 반동적이며 미국에 예속된 군부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켜서 전복시켜 왔어요.” (361)

 

나도 어려서부터 베트남 전쟁은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전쟁이고 미국이라는 선한 세력에 대한 베트남의 악의 세력의 대립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미국측의 이러한 선전이 허위와 날조라는 사실이 여러 공식 문서를 통해 알려졌고,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남한의 청년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미국의 용병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어 수많은 베트남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일본군 만행을 기억하고자 하는 소녀상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 만행을 기억하고자 하는 증오비가 있다. 더욱더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역사가 현재에도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되풀이 되고 있으며, 아직도 미국에게서 전시 작전권을 찾아오지 못한채,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미군이 탄저균을 실험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운명도 민족의 자주, 자립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빈보아 학살 한국군 증오비>


 

6.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회주의에 대한 선생의 이상적 비전과는 달리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권들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선생은 자신이 그동안 품어왔던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를 다음과 같이 받아들인다.

 

인류가 장구한 역사과정에서 거쳐온 한 단계에 실재했던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동체로서의 게마인샤프트가 상호간 이해관계의 이기주의적 계산관계로 존재하고 운영되는 게젤샤프트로 변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아마도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영원히 잃어버린이상적 생존형식이지요. (중략) 자유와 평등은 동등하고 동격의 가치를 지닌 요소이지만, 집단적 인간의 행복 추구의 실천적 순서로서는 자유평등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자유는 인간생명체의 원초적 본성이고, 평등은 개개인의 집단적 생존이 형성된 뒤에 생명이 요구하는 추후적, 사회적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현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정한 평등으로만 가능하지만, 현실적, 사회적 생존차원에서는 개개인에게 가치 있는 것은 자유가 먼저이고 다음에 평등을 욕망하게 되니까요.” (523)

 

나의 결론은, 인간의 이기심은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적 속성 그 자체이며, 그런 속성을 제도나 교양교육을 통해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영구한 속성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 (중략) 자기만이 소유해야 한다는 욕심, 배타적 소유욕, 그리고 이기심이 원초적 인간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인 이기심에 호소하는 방법과 제도로, ‘물질적생산을 극대화시켰고 그것으로 승리했다고 본 거예요. 그러나 인간과 인류의 진정한 승리는 그것돠 다른 의미의 절반의 승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지요. (중략) 나는 우리가 그렇게 믿어온 철학과 정책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절반은 졌고 절반은 이겼다고 생각해요. 사회주의에 이겼다는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로 절반은 이기고 절반은 졌다고 봐. 자본주의가 앓는 사회적 암을 치유하는 데 사회주의라는 항생제가 필수적입니다. 철저한 자본주의적 계급통치자인 비스마르크가 이미 1870년대에 사회주의적 시책을 처음으로 채용한 까닭이 바로 그거에요. 사회주의가 없는 자본주의는 부패, 불법, 부정, 타락, 빈부격차, 폭력, 범죄, 잔인, 인간소외 들을 낳게 마련이에요. 그것들은 자본주의의 본태성 질병이에요. 어쩔수 없어요. 사회주의의 인간중시적 가치관만이 그러한 자본주의의 반인간적 측면을 방지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683-685)

 

우리는 아무리 희구해도 이미 먼 옛날에 인류의 사회적 형태로 지나온 게마인샤프트’ (물질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간적 유대가 기본원리인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게젤샤프트’ (서로의 이해관계의 계산을 매개로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와 적절히 배합한 인간 생활형태를 미래의 상으로 그려볼 수 밖에 없겠지요.” (687)

인간의 이기심과 절제, 물질과 정신, 게젤샤프트와 게마인샤프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극단적인 물신중심 자본주의 현 시대에 나타나는 물질만능, 인간소외, 생태파괴 현상등 자본주의의 암을 치유하는 유일한 대안이 사회주의적 공동체 연대라는 선생께서 자본주의 끝판왕을 달리는 미국에서 자칭 사회주의자로 대통령 후보에 까지 오른 버니 샌더스의 모습을 보셨다면 어떤 소회를 가지셨을까 상상해 보았다.

 

7. 학문하는 자세

 

내 글에는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이 없어. 정치이론도 사회비평도 다각도로 교차검증한 다음에 일단 소화하고, 내 머릿속에서 내 것으로 만들고, 충분히 반죽해서 자신의 누룩을 가미해서 발효시켜서, 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서양 어느 박사의 어느 논문, 미국의 어느 교수의 이론이 어떻고 하는 것은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요. 그것을 일부러 명시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현학적인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런 현학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인용한 누구의 이름에 자기를 동일시하려는 허영에서 출발해요. 자기의 지식이 되버린 것은 굳이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어요. 대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한 철저한 자기화가 필요하지. 나의 수많은 논문과 평론, 심지어 신문, 잡지에 발표한 평범한 주제의 글도 다 이 정신과 방법으로 쓴 것입니다.” (549)

 

“(논문의 인용에 대해서) 그것은 100가지의 인용을 명시해야 할 만큼 아직도 자기 머릿속에서 자기 것이 안 됐다는 증거밖에 안 되니까요. 완전히 자기 것이 되기 전 단계라는 것은 밝혀야겠지. 아직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니까, 또는 이 논문에서 이 관점이나 생각은 이 사람의 것이라고 밝혀야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다 죽처럼 만들어서 다시 이겨가지고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을 만들어야지요.” (550)

 

“(오랜 수감생활을 회상하며) 그런 의미에서 난 참 외롭게 살아왔어요. 그런 것이 나로 하여금 누구의 호의나 힘에 의지하지 않고 그저 나 혼자 하는 것이라는 정신 자세를 은연중에 내 내면에 구축하지 않았나 그렇게도 생각합니다.” (563)

 

“(취미로 목공을 했다고 하시며) 머리를 써서 사는 소위 인텔리는 육체적 생산기술을 취미로라도 가져야만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균형 있게 발달시킬 수 있거니와, 그에 못지않게 두뇌로 사는 인텔리사 육체노동에 대한 우월감을 갖거나 육체노동자를 멸시하는 나쁜 심리와 사상을 바로잡아주기 때문이지요.” (725)

 

유명 학자들의 논문과 이론들이 충분히 소화되고, 반죽되고, 그 형체가 없어진 후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으로 내 자신의 누룩으로 발효시켜서 새로운 형태의 지식으로 재창조 시키는 과정에서는 그 어떠한 현학적 허세도 들어갈 틈이 없을 것이다. 내가 써온 논문과 글들이 한없이 부끄러워 진다.

 

 

8. 조국의 미래에 대한 제언

 

식민제국에 의해 노예화했던 민족이 독립된 존재로 자기를 회복하려면 우선 노비문서가 찢겨져야 해. 노비문서는 미국이 찢어줬지만 그 민족의 부정적 요소들을 스스로 다시 부정해야만,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만 자기긍정을 할 수 있는데, 일제가 자기를 부정한 모든 것을 마치 무슨 자산인 것처럼 군대와 경찰과 행정과 정치와 학계와 법률 모든 것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니 일본인들이 어떻게 우리를 존중할 수 있겠는가. 일본인으로 하여금 우리를 멸시하기 만드는 이 국가 내부의 내적 근거가 우리 속에 있지 않은가. 그런 내적 근거를 제공한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는 일본만을 탓할 수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늦었지만 이지라도 자기혁명을 해야한다.” (579-580)

 

나는 통일된 국가가 반드시 강대한 국가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군사적으로 막강한 국가보다는, 평화지향적이고 주변국가들과 협조하면서 전쟁 위험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면서,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래야 해요.” (699)

 

리영희 선생이 남기신 유명한 말씀을 소개하면서 이 독후감을 마치고자 한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을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나는 손에서 펜을 놓는 날까지 이 정신으로 탐구하고 쓰고, 세상에 알릴 결심이에요.” (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