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071620591&code=940100&nv=stand

 

 

지휘자이자 리더쉽 강사 서희태씨 인터뷰

 

저마다 목소리 내는 시대, 지휘자 리더십 필요”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절묘한 민심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민심은 여당과 야당 어느쪽에도 승리를 주지 않고 준엄한 경고를 보냈다. 국민들은 이렇게 지혜로운데 정작 지도자들은 어떤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미래 기업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은 조직을 닮아갈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나 정부에서도 오케스트라 리더십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와 연주자를 조율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진보와 보수,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영남과 호남 등으로 분열돼 저마다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 하모니를 잃어버리고 제멋대로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와 같다.

각기 다른 소리가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울려퍼지는 오케스트라처럼 분열되고 갈등하는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 조화의 리더십, 곧 지휘자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CEO들이 가장 선호하는 리더십 강사이자 <오케스트라처럼 경영하라>란 책의 저자인 서희태 지휘자를 만나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과 팔로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 수많은 리더십 가운데 요즘 지휘자 리더십이 인기인가요.

“지휘자는 리더십의 가장 최고봉입니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은 저마다 재료, 소리의 질감과 크기, 연주법 등이 다릅니다. 또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들도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단원들이 함께 모여 연주하죠. 이처럼 다양하고 개성이 강한 연주자들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하기 위해선 조화와 협력이 필수입니다. 우리 사회는 유독 평등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혼자 잘 나도 안 되고 못난 꼴도 못 봅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경우 모든 악기가 평등해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불가능합니다. 첼로는 트럼펫의 소리를 대신 내지 못합니다. 트럼펫이 자기 부분을 연주할 때는 다른 악기들은 소리를 죽여 트럼펫을 돋보이게 합니다. 그걸 조율하는 것이 지휘자죠. 각각 개성이 너무 다르고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대다 보니 지휘자의 리더십에 경영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서희태 지휘자 / 이상훈 선임기자

성악가이자 지휘자인데 리더십 강의는 언제부터 했나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예술감독을 맡아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2009년 한국표준협회에서 그 뒷이야기를 경영자들에게 들려달라기에 처음엔 망설였죠. 내성적 성격에 말은 잘 못하지만 책임감은 뛰어나서 일단 맡으면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강의했더니 이번엔 한국능률협회에서 지휘자와 리더십을 접목한 과정을 만들자더군요. 또 8개월 동안 공부해서 국내 최초로 ‘클래식 아트 경영 최고위 과정’이 탄생했죠. 리더십만이 아니라 고전과 현대음악, 음악과 정신건강, 음악마케팅 등을 주제로 지금까지 4기 과정을 성공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그럼 훌륭한 리더, 즉 지휘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지휘자의 악기는 소리를 못 내는 지휘봉이 아니라 바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입니다. 지휘자는 내 악기들을 잘 다뤄 최고의 소리를 내게 해야 합니다. 거장 카라얀이나 번스타인이라 해도 동네 오케스트라를 단번에 근사하게 연주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즉 지휘자만큼 단원들의 역량이 중요하죠. 리더만큼 사회구성원의 역량과 팔로십도 매우 중요합니다. 번스타인이 만년에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서 연주자들과 눈만 마주칩니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호홉이 얼마나 잘 맞으면 눈빛만 봐도 그들의 마음을 서로 읽어 그토록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경이롭더군요.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은 <리더가 알아야 할 7가지 키워드>에서 ‘당신의 힘을 나누라’를 7번째 키워드로 강조했습니다. 리더십의 모순 중 하나는 자신이 가진 힘을 축적함으로써가 아니라 나눔으로써 좋은 리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리더는 물을 채우는 저수지가 아니라 물이 절로 흐르게 하는 강물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지도자나 기업 경영자들이 너무 혼자 힘을 가지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휘자의 능력만큼 성품도 중요하겠군요.

“그렇죠. 전 개인적으로 주빈 메타를 좋아합니다. 지휘자는 음악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책임감도 큽니다. 연주자를 선택하고 좋은 연주자로 육성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연주자들을 믿어주는 신뢰와 배려심이 필요하죠. 주빈 메타는 배려의 아이콘입니다. 그는 오케스트라만이 아니라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세계 3대 테너가 참여한 스리테너 콘서트도 지휘했죠. 세계적 성악가도 무대에 올라가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지휘자는 악보나 단원들만 보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성악가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언제 숨을 쉬는지도 관찰해서 그의 호흡에 맞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끊어줘서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주빈 메타는 정말 탁월했죠. 반면 리카르도 무티는 카리스마가 강한 지휘자이지만 19년 동안 이끈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단원들의 투서로 쫓겨났습니다. 단원들은 ‘그는 능력은 있지만 우리가 음악하는 기쁨을 빼앗아갔다’고 주장했죠. 자신이 왕이고 항상 자신만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선적 성격의 결과입니다.”

지휘자에게 그만큼 단원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소통의 의미는 뭔지요.

“중용입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은 평등이지만 오케스트라는 절대 평등할 수가 없어요. 각자의 소리를 내며 강약을 조절합니다. 오보에에 멜로디가 가면 트펌펫이 소리를 줄여줍니다. 개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설 때와 안 나설 때를 알아 서로를 빛내고 살리는 연주를 하는 겁니다. 소통은 내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들어주고, 조화를 이루는 중용의 미학이 기본입니다. 사실 소통만 강조한다고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요. 빠른 곡을 연주할 때 연주자들이 봐야 하는 악보는 매우 복잡하고 음표도 많아서 악보와 지휘자를 동시에 보고 연주하기가 어려워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전 가끔 지휘봉을 멈추고 연주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럼 연주자들이 지휘자와 악보를 동시에 봐야 하는 부담감에서 해방됩니다. 악보에 집중하고 다른 동료들과 서로 호흡하며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지휘자가 없어도 연주가 가능하다면 리더가 없어도 조직이 움직이겠군요.

“연주는 가능하지만, 점점 느려지죠. 단원들이 리더를 잃으면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고 더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피로도 더 빨리 느끼게 됩니다. 즉 성과가 더디거나 조직원들의 피로도가 커집니다. 지휘자는 공동의 목표, 즉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자는 것을 단원들에게 일깨워 모두 최선의 목표를 이루게 하는 사람입니다. 기업의 리더도 마찬가지 역할일 겁니다.”

서희태 지휘자 / 이상훈 선임기자

하지만 사회에서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기가 쉬운가요. 진보나 보수, 경영진과 노조 등 다들 목표가 다른데요.

“요즘 저는 애국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엔 영화 한 편 보려고 해도 애국가를 들어야 했고 어지간한 행사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가 필수였죠. 그게 좀 힘들기는 해도 생활 속에서 애국심을 기르는 것 같아 당분간 제 음악회에서는 애국가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이든에게 영국 정부에서 적극 후원해줄 테니 귀화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의 영화를 누렸지만 음악은 불모지여서 헨델도 귀화시켰죠. 하이든은 ‘영국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지만 단 한 가지 없는 것이 나의 조국 오스트리아’라며 귀화를 거부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힘을 합하는 긍정적 사고가 바로 애국심이 아닐까요. 이번 세월호 사건 후, 너무 많은 이들이 자기 생각을 피력하더군요. 그런데 정부를 비판하면 호응을 얻지만, 사회 안정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면 욕을 먹습니다. 비판이나 지적은 쉽지만 대책도 제안해야죠. 사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에서 단원들은 서로 다 친하거나 사이가 좋은 건 아닙니다. 워낙 개성이 강한 악기를 연주하고 예민한 성격의 예술가들이어서 그렇죠. 각자 사이가 나빠도 아름다운 음악을 위해 연주하는 순간, 개인적 감정은 사라집니다.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면 시기심, 질투 대신에 조화와 상생이 탄생합니다.”

아름다운 음악, 국가를 위한 애국심도 중요하지만 연주자도 인간인지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텐데요. 영화 <사중주>를 보면 제2 바이얼리니스트가 제1 바이얼리니스트와 비교해 엄청난 열등감을 느끼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외도도 하던데요. 보통 사람들도 우월한 유전자나 조건을 가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우리가 음악, 특히 오케스트라 연주를 자주 들어야 하는 것은 그 연주 속에 삶의 진리나 치유책이 있어서입니다. 바이올린이나 트럼본 등은 태생부터가 다릅니다. 나무로 만든 악기, 금속으로 만든 악기 등 소재도 다르고 소리도 다릅니다. 하지만 교향곡을 보면 멜로디가 한 악기에만 집중되어 있지 않고 고루 분배되어 있습니다. 튜바란 금관악기가 있는데요, 그 악기도 아주 잠깐 등장하지만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주목받는 시기가 오니 튜바는 튜바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듯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튜바 없이 바이올린만으로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부에서도 다양한 부처가 있는데 그 어느 곳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곳이 없고 기업에서도 홍보, 영업, 총무 등 분야와 업무량은 달라도 각각 다 필요합니다. 각자에게 ‘당신은 우리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란 자긍심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또 전 세계 모든 오케스트라는 똑같은 악보를 봅니다. 그러나 연주는 다 느낌이 다르죠. 지휘자의 악보 해석, 연주자의 기량과 숙련도, 서로의 호흡에 따라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들도 때론 엉터리 연주가 되고 때론 천상의 소리를 만듭니다. 세상과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고, 반드시 누구나 주목받는 순간, 자신의 재능이 꽃피우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오케스트라가 알려주는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클래식 음악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에 곡명까지 다 외워야 해 골치가 아프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건 우리가 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기 때문입니다. 시험만 안 봤어도 그저 클래식 음악을 즐겁게 즐길 수 있을 텐데 다 암기해야 하니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죠. 또 지식으로만 음악을 접하니 모르면 답답하고 지겹죠. 저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곡명을 외우려 하지 말고 그저 음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 음악에 감동하면 저절로 작곡가, 연주자를 찾아보게 되죠. 즐거움을 참지 말고 표현하는 훈련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놀라온 콘서트’를 기획했습니다.”

어떤 콘서트인지요.

“‘놀라온’은 순수 우리말인 ‘놀자’와 ‘라온’(즐거운)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클래식과 함께 즐겁게 노는 오케스트라와 콘서트’죠. 음악 소비자들과 어떻게 접점을 넓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너무 어렵기만 한 음악을 감상하면 재미를 얻기도 전에 지쳐버리죠. ‘클래식을 들어줘야 지식인’이라는 인식에서 의무감으로 들으면 졸리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는 관객을 ‘감상하는 위치’에만 두지 않고 함께 호흡합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연주자들의 드라마틱한 입장, 뮤지컬 같은 오페라 무대 연출, 관객들과의 대합창 등을 골고루 준비합니다. 베네수엘라의 기적을 만든 청소년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연주자들도 검정 정장이 아닌 드레스나 밝은색 옷을 입고 큰 콘트라베이스를 장난감처럼 빙그르르 돌리기도 하고 춤도 춥니다. 처음엔 연주자들이 ‘절대 그런 연주회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100만개쯤 대더군요.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좋은 연주로 칭찬받는 것과 연주를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공감했어요. 관객과 함께 샤우팅도 하고 함께 일어나 춤도 췄죠. 다들 연주가 끝나면 악기 들고 후다닥 집에 가던 연주자들이 ‘놀라온’ 콘서트 후엔 ‘예쁜 드레스 입은 기념으로 사진 찍어요’라며 다가오고 즐거워하더군요. 리더들이 지휘하듯 즐겁게 경영하고 정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희태씨는 “관객들의 열렬한 칭찬과 박수가 최상의 연주를 만든다”면서 “정치인이나 경영자가 잘못한 일에는 따끔한 지적도 필요하지만, 잘했을 때 칭찬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그러고 싶다. 그것도 예의상 치는 박수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치고 싶다. 정치인이나 경영자가 정말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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