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9일 팜플로나 ---> 푸엔타 레 레이나 (25Km)

출발: 7:40AM  도착: 2:15PM

날씨: 오전중에 비오다 개임

 

산정상에서 신나게 사진찍고 이제는 나름 자신있는 내리막길이다.

속도를 내려고 등산스틱을 한손에 몰아쥐고

타 타 타...

경쾌하게 뛰어내려 간다.

 

아까 오르막길에서는 진흙탕이더니

내리막길에서는 미끌어지기 쉬운 자갈밭이다.

ㅠㅠ

 

한참을 그렇게 내려가는데

응?

갑자기 발목이 왜 이렇게 아파오는거지?

 

아까 진흙탕 오르막길을 올라오다가 미끌어져서 넘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발목을 삐끗한 듯...

ㅠㅠ

다친 직후에는 몰랐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면서

발목에 무리가 간듯 하다. 

 

점점 더 발목이 시큰거려 오는게 장난이 아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은걸까?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는 산길.

 

바위에 걸터앉아서 등산화 양말 벗고

배낭에서 맨소래담을 꺼내서 다친 발목에 바르고 마사지해 본다.

 

 

이제까지 잘 걸어 왔는데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듯... ㅠㅠ

내리막길은 또 왜캐 가파르고 미끄러운건지...

아침에 오던 비도 그치고 스페인의 살인적인 햇볓이 쨍쨍 내려쪼이고

정말 죽을 맛이다.

 

급기야 큰 바위 밑으로 펄쩍 뛰어서 내려가야 하는 곳을 만났는데

도저히 발목이 아파서 내려갈 엄두가 안난다.

어떻게 저 밑으로 내려간다지?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야하나?

돌이라 바지가 찢어질거 같은데?

그냥 눈 딱 감고 펄쩍 뛰어?

그러다 발목이 완전히 나가버리면 난 여기에서 꼼짝없이 오도가도 못하게 될지도 몰라...

 

한참을 이 생각 저 궁리 하면서 그 곳에 망설이고 서 있는데

뒤에서 구세주와 같이 들리는 한마디,

"괜찮으세요?"

처음 보는 한국 청년이었다.

엉망이 된 내 바지를 보더니 넘어진거냐고 묻는다.

"저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발목이 아파서요..."

했더니 내 배낭을 대신 메주고 손을 잡아서 바위 밑으로 내려갈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기 한 몸도 건사하기가 쉽지 않은 카미노에서는

누구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가는 서로간에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될수도 있기 때문...

그래서 자기 몸의 컨디션과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까 오르막길에서 발을 헛디뎠을 때 혹시 다친건 아닌지

잘 살폈어야 하는데...

내리막길 자신있다고 방방 뜨다가 요모양 요꼴이 된것.

ㅠㅠ

 

같이 걸으면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년간 잘 살아왔다고 믿었던 결혼생활

부인의 일방적인 이혼요구로 갑자기 파경을 맞고

 그 충격으로 다니던 직장(삼성)을 그만두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걷고 있다고 했다.

 

카미노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길을 떠난 순례자들을 만나게 될거라고 하더니만

그런 사연 하나 없는 건 나 하나인듯 하다.

 

다친 발목 때문에 속도가 느린 나 때문에 청년한테 괜히 부담주기 싫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건넨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좀 천천히 내려갈테니 먼저 가세요"

"진짜 혼자서 내려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내가 못 믿어웠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청년이 떠나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괜찮다고 오버해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제발 저 좀 데리고 내려가 주세요.'

하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카미노 5일째 찾아온 첫 위기...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마음이 불안할땐 묵주기도가 최고.

배낭에서 묵주를 꺼낼 여유도 없어서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고통의 신비를 바치면서

발목의 고통을 잊어보려고 애써본다.

 

그렇게 절뚝거리면서 내려오다가 만난 성모상.

이렇게 힘든 순간에 성모님이 항상 내 옆에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중간에 이정표가 없어서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모르니까

더 답답해 미치겠다.

도중에 만난 순례자한테 오늘 목적지 푸엔타 레 레이나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더니

3킬로 라고 하네...

 그 말에 희망을 가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목적지는 커녕 엉뚱한 마을 이정표만 나오고...

(나중에 알고보니 3킬로가 아니고 7킬로 남은 거였다. ㅠㅠ)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난 마을이라 반갑다.

 

이 조가비 표시를 따라가면 종착지 산티아고에 도달하게 된다.

아직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곳.

그곳에 도착할 날이 있기나 한걸까?

 

 

마을 입구 벤치에 앉아 신발 벗고 발검사.

보기엔 멀쩡한데...

발목이 시큰거림.

카미노에서는 쉴때마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공기를 통하게 하라고 권고한다.

그래야 물집이 덜 잡힌다고...

그런데 막상 실천하려면 여간 구찮은게 아니다.

 

 

카미노길에서 흔히 볼수 있는 양귀비꽃.

 

이정표를 만나면 괜히 반가워서 사진이 찍고 싶다. 

 

길 보도블럭에 박아놓은 조가비문양 

 

스페인은 이런 시골마을에도 성당이 하나씩 다 있다.

문을 닫은 성당들도 가끔 있지만

문이 열린 성당을 지나게 되면 들어가서

성체조배한 후 성당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페인 시골마을엔 예쁜 집들이 많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목적지에 도착하면 알베르게 사무실에서 순례자여권에 스탬프 부터 받고

침대를 배정받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알베르게(Albergue Jakue)는 이미 꽉 차서 자리가 없다고 한다.

ㅠㅠ

그대신 같이 운영하고 있는 호텔에 2인실은 비어있는 룸이 있다고 하는데

가격이 무려 20유로 (1인당)

다친 발목으로 알베르게 이층침대 오르는 것도 엄두가 나질 않고

몸 컨디션도 좋질 않아서 그냥 2인실에 묵기로 했다. 

 

이 알베르게는 등산화 빨수 있는 빨래터가 아예 밖에 따로 되어 있어서

진흙탕에 더러워진 등산화랑 스패츠를 솔로 박박 문대서 빨아 빨래줄에 널어 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말이 호텔이지 한국이나 뉴저지로 치면 장급여관(?) 수준의 방이다.

그래도 이층침대 아닌 트윈침대에다

목욕실도 다른 순례자들과 공유하지 않아도 되니

이게 무슨 호사인가 싶다.

 

짐풀고 샤워하고 나니

전 마을에서 만나서 친해진 여대생들 (희와현)한테서 자기네도 이 마을에 있다고 카톡이 와있네...

우리 호텔로 오라고 해서

같이 마을로 장보러 나갔다.

 

이 마을은 그렇게 큰 마을은 아니지만 수퍼도 여러개 있고

제법 큰 성당도 마을에 있다.

 

 

오늘 저녁은 오띠언니 담당. 꼬마들이 보조역할을 했다. 

메뉴는 밥, 김치찌개, 깡통조개와 파를 넣은 계란말이.

카미노에서 이 정도면 진수성찬.

이 꼬마들 그동안 배를 주렸는지

진짜 폭풍흡입을 한다.

희는 엄마가 해준 밥 생각이 난다고 감격의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

 

우리 옆에서 혼자 스파게티를 해먹던 네덜란드에서 온 Maxim 이라고 하는 순례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포루투칼길 순례를 마치고 막바로 프랑스길 순례하러 왔단다.

자랑쟁이에 살짝 허세도 좀 있는듯 해서

이러다간 밤새도록 자기자랑을 들어줘야 할 테세...

 

이야기 좀 들어주다가

내일 일찍 길 떠나야 한다고 자리를 뜸.

 

저녁먹고 오띠언니는 미사보러 가고

나는 발도 시큰거리고 급기야 열도 좀 나는 거 같아서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갔다. 

 

다친 발목에 맨소래담 다시 바르고

오띠언니가 준 파스도 붙이고

보일러 온도계를 최고로 해놓고

침대 안으로 파고 들었다.

(깨끗한 시트가 제공되는 오늘은 침낭에서 잘 필요가 없음)

 

그러고 보니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게 오한이 나는거 같다.

발목을 삐끗했는데 왜 열까지 나는거지?

내일 또 갈길이 먼데...

내일도 이렇게 아프면 못 걸을거 같은데 어쩌지?

...

하는 걱정을 한 1-2분 정도 하다가

바로 곯아 떨어졌던거 같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몸을 고단하게 만드는 것...

그것도 카미노에선 하느님이 순례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라면 축복인 것이다.

  • Big+sunny 2014.06.16 09:09 ADDR EDIT/DEL REPLY

    마지막이 다음회를 기다리게 하는 드라마처럼 그 다음 어찌 됐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