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0일 푸엔타 레 레이나 ---> 로르카 (13Km)

출발: 7:30AM  도착: 12:30PM

날씨: 부슬부슬 비가 옴

 

카미노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오늘 또 얼마나 고단한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ㅠㅠ"

 이런 생각을 하는걸 남편이 알면

"그러게 누가 사서 고생하러 거기까지 가래?"

하면서 버럭할 듯.

 

어젯밤 편한 침대에서 모처럼 잘 자고 일어났더니

몸 컨디션은 그닥 나쁘지 않은거 같다.

발목 시큰거리는 것도 많이 나은것 같기도 하고...

 

<프랑스길 지도. 갈길이 아직 멀구나 ㅠㅠ>

그럼 최종목적지 산티아고를 향해 다시 출발~

 

그.런.데.

 

알베르게를 떠나서 한 십분 정도 걸었을까

발목에 다시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큰일이다 ㅠㅠ

 

오띠언니가 약국에 가서 근육통약이라도 사먹고 가자고 한다.

아이패드에 담아온 번역기 돌려서 일단 약국을 스페인어로 찾으니 farmacia 라고 하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물어 물어서 겨우 찾아간 약국.

다행히 약사는 영어를 할줄 알아서

근육통에 먹는 약을 사서 먹었다.

 

하지만 발목상태가 걷기에는 무리인 듯 하다.

오늘 걷고 마는 거면 어찌 어찌 갈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30일 정도 매일 걸어야 하는 상황에선

몸을 아껴야 한다.

 

오띠언니랑 미리 리서치 해온 다음 마을의 한 알베르게에서 만나자고 하고 약속하고 헤어져서
언니는 걸어가고,
나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젠 버스 일정을 알아보고 버스정류장을 찾아가는 일이 남음.

스페인은 인터넷에서 버스일정 같은거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중교통 시스템이 썩 잘 되어 있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전 마을에 만났던 한국 순례자들이

버스 타고 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카미노 루트에 있는 마을들은 스페인 깡시골 마을들이 대부분이라

주민들이 영어를 잘 못해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길 가는 사람들 몇명 한테

Lorca Bus

Lorca Bus

하고 물어봤지만 내 발음이 후져서 그런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그냥 지나감.

 

우여곡절 끝에 영어를 할줄 아는 식료품 가게의 점원 아가씨가 가르쳐 준 버스번호를 적어서

또 물어 물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려고 한 30분 앉아있는데

버스가 한 대도 안오네?

 

건너편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내가 타려는 버스는 오늘 두번 밖에 이 정류장을 안 지나가는데

그 중 첫차가 11:30AM 에 온다고 알려준다.

앞으로 한시간 반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할수 없이 근처 bar에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함. 

스페인어 메뉴판에서 유일하게 무언지 알수있는 깔라마리와 콜라 시켜놓고

인터넷 하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 버스 놓치면 다음 차는 네시간 뒤에 온다고 하길래

정신 바짝 차리고 연신 창을 내다보면서...

 

드디어 버스 한대가 도착.

얼른 뛰어가서 버스 운전사 아저씨한테

Lorca?

Lorca?

하고 몇번씩 목적지 확인 후 버스 탑승. (버스비 1.3유로)

 

<올만에 버스로 씽씽 달리니 좋구나>

드디어 Lorca의 알베르게 도착.

여기는 호세 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사설 Albergue Ramon (7유로)

시설은 더럽고 낡았는데 주인장 호세씨가 무척 친절했다.

 

침대 배정받고 씻고 누워서 한잠 자고 있는데 오띠언니 도착.

알베르게에 작은 부엌이 있어서 볶음밥해서

팜플로나에서 사온 피같은 라면 하나 끓여서

오띠언니랑 나눠 먹으려고 하는데

부엌으로 한국 남자 두명이 들어온다.

그 중 한명은 푸렌타 레 레이나 가는 길에 나를 도와준 바로 그 청년.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볶음밥 조금 나눠줬더니 허겁지겁 잘 먹는다.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짠해서

큰맘먹고 뉴저지에서 공수해온 라면스프와 건조김치 조금 나눠 줬더니

이런걸 어찌 다 가지고 다니냐고 혀를 내두르며 고마워 함.

 

카미노에선 라면스프가 갑이다.

꼭 가지고 가라는 말을 네이버 카페에서 하길래

뉴저지에서 덕용 두봉지를 사가지고 왔는데

굿 초이스.

피곤해서 뜨거운 국물 먹고 싶을때 이거보다 더 좋은 양식은 없는 듯.

거기다 건조김치 추가하면

그 맛은 헤븐.

 

이곳 침실은 6인용, 이층침대 3개가 들어가 있는 작은 방.

오띠언니랑 수다 떨면서 누워있는데

우리 뒤에 들어온 독일남자 하나가

우리 보고 혹시 귀마개 가져왔냐고 묻는다.

(카미노에선 도미토리에서 자는 경우가 많아서 귀마개도 필수)

여분이 있다고 하나 줄까?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자기가 코를 심하게 골아서 너희 귀마개 없이는 오늘 잠을 잘 못잘거라고 하면서

미리 자수를 하는 것

ㅠㅠ

 

나야 어디 머리만 박으면 금방 잠드는 체질이지만

신경이 예민한 오띠언니는

천둥이 치는듯한 코골이 소리에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한다.

하느님 이렇게 무디게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이 알베르게는 청결상태도 안 좋아서 퀴퀴한 냄새도 나는데다

같은 방에 묵는 사람들도 샤워를 했는지 말았는지

방안에 온통 땀냄새랑 발꼬랑냄새가 진동을 하네 ㅠㅠ

 

그래도 지붕있는 집에서 비 피할수 있고

이렇게 내 한 몸뚱이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침낭지퍼를 머리끝까지 올리고

독일아저씨의 코골이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