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1일 로르카 ---> 로스 아르코스 (31Km)

출발:5:30AM  도착:3:30PM

날씨: 비가 부슬부슬 옴

 

아침에 일어나서 발목부터 살펴본다.

어제 버스타고 쉬어서 그런지 어제보다 훨씬 나아진듯 하다.

오늘은 좀 많이 걸을 생각을 하고 배낭을 목적지의 알베르게로 부치고 가볍게 걷기로 함.

깜깜한 새벽에 헤드랜턴을 밝히고 출발. 

 

배낭없이 걷는 것이 항상 좋은건 아니다.

배낭없이 홀가분하게 걷는 오늘

내리막길에서 먼가 불안하고 자꾸 앞으로 넘어질 거 같은 기분이 드는건 뭥미?

 

오르막에선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걷는게 힘들지만

내리막길에선 뒤로 받혀주는 역할을 해서 자칫 앞으로 넘어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는 사실.

 

인생에도 오르막 내리막길이 다 있는 법

힘든 일이 계속되는 인생의 오르막길에서 삶의 십자가는 엄청 힘들게 느껴지고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늘어 놓는다.

 

하지만 일이 비교적 술술 풀리고 성과를 내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일의 속도를 좀 늦추고 인생에서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한번 더 점검하고

자칫 범하기 쉬운 과오를 줄여주는 순기능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주신 십자가에 감사해 본적은 별로 없는거 같다.

 

사소한 배낭 하나에 이렇게 하느님께서 주신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것

이것이 카미노의 매력이다.

 

표지판 나올때마다 얼마나 더 가야하나 확인

23.8킬로나 더 가야 한다고라?

죽음이다 ㅠㅠ

 

어느 이름모를 마을의 성당

기도하고 쉬고 가려는데 문이 닫혀 있다.

 

이런 작은 마을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지금까진 비교적 업다운이 심하지 않은 평탄한 지형

다행히 다쳤던 발목도 아프지 않고

비는 부슬부슬 오지만 판초우의 안을 파고들 정도로 심하게 오지는 않는다.

이래저래 감사한 일 투성이다.

 

출발지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에스테야 (Estella)에 도착한건 아침 8시 15분경

bar로 들어가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면서 잠시 쉬기로 한다. 

스페인 커피 참 맛없다.

우유 잔뜩 넣은 찐한 카페콘레체를 즐겨 마시는데

아메리카노 블랙만 마시는 나에게는 비위에 잘 안 맞았다. 

 

11세기 초 별빛을 따라가던 양치기들이 성모상을 발견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마을이름이 을 의미하는 에스테야가 되었다고 한다.

밤에는 이름처럼 별이 쏟아지는 곳일까? 궁금했지만

이 마을은 그냥 이정도 인연으로 지나쳐 가기로 했다. 

 

에스테야 성당에 들어가서 성체조배하고 성당 구경 

금으로 도배를 해놓은 스페인의 보통 성당과는 달리

비교적 소박하게 꾸며놓은 성당 내부  

 

그래도 성당에서 스테인그라스가 빠지면 서운하지

 

 

 

더 머물고 싶지만 갈 길이 멀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출발

 

담장에 예쁜 꽃이 피어있는 집

 

오늘 걷는길에는 카미노 안내책자에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게 되어있다.

여기에는 근처의 와이너리 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고

출발할때부터 와인애호가 오띠언니와 희와현 꼬마들이 흥분한 바 있다.

이 수도꼭지 근처에는 포도밭이 있다.

 

<물병에 와인을 따르고 있는 오띠언니>

이 수도꼭지 왼쪽에는 레드와인, 오른쪽에는 물이 나온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이 와인으로 목을 채우고 물병도 가득 채워간다.

나는 술을 안 마셔서 모르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순례자에게 큰 위로가 되어줄 듯.

 

오늘은 하루에 걷기엔 참 먼 길.

반나절 꼬박 걸은거 같은데 목적지 로스 아르코스까진 아직도 17.1킬로나 남았구나.

이젠 거의 다 왔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이런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 볼때마다 맥이 탁 풀리고 주저앉고 싶다. 

 

한나절이 되니 먹구름이 개이고 해가 나기 시작한다.

 

 

참으로 변덕스러운 스페인 날씨 

 

<내 사진은 소심한 사이즈로>

프랑스길에서 흔히 볼수 있는 길 

사진 보니 그립네

 

마을을 만날때 마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목적지가 아니고 지나치는 마을인 경우가 태반... 맥 빠진다. 정말.

 

 

이 마을도 목적지 아님.

해도 쨍쨍 내리 쬐고 아스팔트에 걍 주저 앉고 말았다. 헥헥~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목적지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

 

사립 알베르게 Casa Alberdi 에 묵기로 했다.

오는 길에 꼬마들이랑 카톡해서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알베르게가.... 완전 더럽다.

이제까지 묵던 곳 중 최악

 

조금 있으니 꼬마들 도착해서

오띠언니랑 넷이 장보러 나감

 

스페인은 오후에 씨에스타 라고 하는 낮잠시간이 있는데

이때 상점들이 문을 다 닫는다.

마침 씨에스타여서 수퍼 문 열때까지

수퍼 옆 피짜리아에서 피짜 시켜 먹으면서 수다 떨면서 기다렸다.

 

저녁나절이 되니 이상저온에 비까지 오니 정말 춥다.

따뜻한 내 집 소파에 앉아 먹는 피짜라면 얼마나 좋을까?

로스 아르코스... 알베르게도 마을도 분위기 넘 구리고 모든 것이 우울모드

오늘은 정말 뉴저지집에 가고 싶다.

 

퀴퀴한 냄새나는 알베르게 방에 들어가 보니

베드버그 출몰하기 딱인 모양새다.

꼬마들도 베드버그 옮으면 어쩌냐고 난리 난리

침대에 베드버그 스프레이 잔뜩 뿌리고

샤워하러 감

 

샤워실도 넘 더러운데다 더운물도 샤워 중간에 끊겨버려서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ㅠㅠ

 

부엌에 가서 저녁밥 만들고 있는데

불량끼가 좍좍 흐르는 쥔장 딸하고 그 친구가 계속해서 알수없는 스페인어로

우리를 놀리듯이 구찮게 하네...

아 진짜... 안그래도 짜증나는데 얘네는 또 머니?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오띠언니가 방실방실 웃으며 이런 욕을 해주었다. ㅋㅋㅋ

 

오늘 저녁 메뉴는 미역국과 계란부침, 튜브고추장에 비빈 밥

남은 밥으론 내일 가져갈 주먹밥 도시락도 쌌다.

 

마을 성당에서 8시 순례자미사를 봤다.

노래 잘 하시는 젊은 신부님이 미사 집전

순례자미사 끝엔 순례자들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머리에 안수도 해주신다.

 

미사후 알베르게로 방에 들어가서

더러운 침대에 행여 내 몸이 닿을세라 침낭 펴고 베개커버도 단디 하고

얌전히 침낭 안으로 들어가서 눕는다.

 

앞침대의 꼬마들 이라체에서 받아온 와인을 거나하게 드셨는지

말수가 겁나 많아지고 헤롱헤롱 난리도 아니다. ㅋㅋㅋ

귀여운 것들

 

그.런.데.

 

낮은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건 도대체 먼가?

거미? 벌레?

ㅠㅠ

 

하느님 베드버그에만 안 옮고 오늘 하룻밤 잘 자게 해주세요

기도하면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