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다수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주민 주도성’이다.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이도, 공동체 속에서 지속적으로 삶을 영위할 이도 바로 주민이기 때문이다.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대명사로는 일본이 꼽힌다.

일본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1970년대 도쿄도 세타가야구에서 주민 참여 사업으로 첫발을 뗀 이후, 1981년엔 간사이 지방인 효고현 고베시에서 마을만들기와 관련한 첫 지방 조례가 통과됐다. 일본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2000년대 이후 본격화 한 한국의 마을만들기 사업과 견줬을 때 30년 앞서 마을이 가야할 방향과 비전을 대내외에 명시한 것이다.
함께걷는아이들 연수단은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지원 중심 사업에서 탈피해 지역 주민 자발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하고 있는 일본 마을 공동체를 찾았다.


<표 1> 일본 마을만들기 사업 역사

연도 

 내용

 1960년대

 - 고도성장에 따른 문제인식기

 - 1950~60년대 고도성장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와 공해문제, 농촌지역과소문제 등에 대한 저항적 시민운동,

  역사보전, 지역살리기 운동 등

 - 주민, 전문가, 지자체에 의해 ‘마을만들기’와 공공이 지원하는 시책 진행

 - 사례: 나고야시의 사카에 히가시지역

 1970년대

 -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전개

 - 주민리더쉽을 통한 종합시가지 정비, 주민참여형 단지 재건축 시행, 거리만 들기 등 다양한 마을만들기 활동이

    전개되고 성과를 보임

 - 사례: 동경도 세타가야구의 타이시도지구 “수복형 마을만들기”, 오이타현 일 촌일품 운동

 1980년대

 - 마을만들기 확산기

 - 기성시가지를 대상으로 행정이 중심이 되고 전문가가 협조하는 형태의 활동 전개

 - 마을만들기 워크숍,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등 주민의 의지를 사회에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과 공간 마련

 - 사례: 고베시(1981)와 세타가야구(1982)에서 마을만들기 조례 제정

 1990년대

 - 마을만들기 정착기

 - 시민단체, 전문가, 일본 내 선진 지자체의 시책, 재단에 의한 경제적 지원, 마찌즈쿠리 3법 및 NPO법의 제정

  등으로 전국 각지로 마찌즈쿠리 보급 및 정착

 - 협의회, 시민조직, NPO가 마을만들기의 중심을 이룸

 - 사례: 시민활동추진조례, 니세코쵸 카나가와 야마토시

 2000년대

 - 새로운 공공사회기

 - 단순한 주거환경개선뿐만 아니라 녹지나 농지의 보전, 교육․문화․복지․환경․ 일자리 등을 위한 마을만들기,

   하천보전, 도시계획대한 정책 제안 등 다양하게 진행

 - 새로운 공공의 개념으로 근린자치정부와 같은 시민, 기업, 행정, 전문가 모두가 인정하는 수평사회구조로의 변화


연수단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교토 시내에서 약 두 시간 떨어진 교토부 난단시에 속한 <미야마 마을>이었다.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 곳은 96%가 삼림 지역이다. 사실상 목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곳이다. 실제 해외에서 값 싼 목재가 수입되자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인구도 절반 가까이 지역을떠났다(1955년 1만 명에서 2000년 5천명). 같은 기간 고령 인구 비중은 30%까지 치솟아 마을로써 수명이 끝났다는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쇠퇴한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미야마 마을이 택한 것은 지역자원을 활용한 ‘그린투어리즘’이었다. 그린 투어리즘은 농촌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 생활과 산업을 매개로 도시민과 농촌주민 간의 교류 형태로 추진되는 체류형 여가활동을 말한다. 농가가 숙박시설을 제공하고, 특산물ㆍ음식 등 상품을 개발하며, 이벤트와 농사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추가함으로써 농촌지역의 농업 외 소득을 증대시키려는 농촌관광전략이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농가소득 증대 및 농촌 환경 보전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그린투어리즘 정책을 펴왔다.
그린 투어리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미야마 마을은 가장 먼저 지자체와 지역민이 함께 참여하는 ‘마을활성화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마을의 성장과 발전의 과실이 외부로 새 나가지 않고, 주민에게 오롯이 전달돼 지역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지방 정부 주도로 정량적 목표를 세우고, 사업부터 시작하는 국내 마을 사업과 달리 미야마 마을은 지역주민 주도로 마을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통 관심사를 통합하고 구축하는단계를 핵심 선행 과제로여겼다.


<표 2> 미야마 마을 연혁

구분 

 내용

 제 1기

(1970-1988)

 ▶지역통합시기 - ‘논은 사각으로 마음은 둥글게’ 라는 취지로 정부와 교토부의 보조 사업인 신농업구조 개선사업이 시작됨.

    구불구불했던 논은 반듯하게 재조정하는 작업으로 주민간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일을 한다는 의식 을 싹틔우는 작업

 제 2기

(1989-1993)

 ▶지역자원 가치발굴 및 네트워크 구축 - 자연경관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마을활성화 추진위원회’를 설립하여 그린투어리즘을 추진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을 연구하였고 도시와의 교류거점인 ‘미야마 자연문화촌’을 설립함. (정부보조금 1억엔 - 지역 창생사업)

 제 3기

(1994-2000)

 ▶그린투어리즘과 신산업만들기 - 가야부끼(억새지붕) 보존 및 그린투어사업(자연체험학교, 산촌유학프 로그램, 농촌체험 등) 활발히 진행.

 제 4기

(2001 이후)

 ▶진흥회 설립과 주민주도 지역 만들기 - ‘자신의 지역은 자신의 손으로, 일본 제일의 시골만들기’를 추구.

    지역과제를 도출하고 이를 함께 해결하는 집행기구 진흥회를 설립


미야마 마을의 주 수입원은 자연체험학교(산촌유학 프로그램, 농촌체험, 예술체험 프로그램 등), 자연문화촌 운영, 계절요리 판매다. 여기에 1992년에는 주식회사 미야마후루사토를 설립했다. 교토를 비롯한 외부 이주민들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마을기업이다. 이주 희망자를 위해 토지와 오래된 민가를 중개하거나 미야마 나무를 활용한 주택, 에코빌리지 판매, 숙박시설(미야마자연문화촌)을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여러 특산품(우유, 장아찌 등)을 개발하고 가공해 전국단위(배송)로 판매하고 있다.


(미야마 마을 사업 담당자인 난단시청 무라타 지역추진 과장이 미야마 마을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미야마 마을이 일본 내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유한회사 가야부끼사토다. 일본에서 가야부끼는 억새로 만든 초가집의 지붕을 의미하는데, 미야마 마을은 풍부한 억새로 일본에서도 고유한 가야부끼 초가집이 많은 지역으로 통한다. 미야마 마을은 지역 내 가야부끼를 전승하기 위해 후계자 육성은 물론이고, 소득 창출을 위해 가야부끼 가옥 내 민속자료관, 공방, 식당, 숙박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가옥의 억새를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는 주민들의 관리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관리 비용의 50%는 중앙정부가 35%는 지자체가 지원하고 있다. 현재 인구 5천명인 미야마 마을을 찾는 연간 관광객만 70여만 명에 육박하며, 매출액은 4억 5천만 엔에 달한다.


(일본 시골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야부끼는 우리말로 ‘초가집’을 의미한다.
한국의 볏짚과 같이 일본 농촌에 풍부한 억새풀로 엮은 지붕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