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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키즈 자료실/위기상황 ㅣ청(소)년

청소년의 자립이란?_4. 지속가능한 자립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11. 16.

"청소년의 자립"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걸까?

더욱이 위기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의 자립이란것은 가능하기나 한걸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기존의 "자립"이 아닌 위기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자립"이란 어떤것인지 고민했던 자몽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물을 나누고자 한다. 본 글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들이 함께걷는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자몽"프로젝트 참여기관과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발표한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청소년의 자립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1. 유동하는 자립   2. 조건없는 자립  3. 지금 현재의 자립  4. 지속가능한 자립  5. 관계적 자립  6. 주체적 자립

각각의 자립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만나보자. 


지속 가능한 자립: 기둥 없는 집 vs. ‘모퉁이에서 쉬어가는 시간

 

시간이 단계적분절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반영한 또 하나의 자립 개념이 지속 가능한 자립이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본래 생태학적 용어로서 생태계가 생태의 작용, 기능, 생물 다양성, 생산을 미래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한 개인의 삶과 사회를 생태계로 보자면 지속가능성이란 사회 생태계의 일부로서 개인의 삶을 바라보며,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에 주목하며,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 사이의 연결과정을 강조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자립이란 당사자가 무언가를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수행한다는 뜻이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시도들과 삶의 과정 자체를 자립으로 인정하는 것을, 자립 지원 기관에게는 당사자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의미 있게 삶을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무수한 단기적 지원의 연속혹은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것을, 사회에게는 지속가능한 자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생태계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준비나 동기 없이 강요되는 자립(퇴소, 학력 취득 등), 특정 국면이나 시점에서의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자립, 자립의 총체성을 보지 못하고 경제적 차원의 취업(탈 복지 의존)만을 강조하는 자립, 자립의 사회적 조건을 탐색하지 않고 개인의 의지와 자격 갖춤만을 강조하는 자립이 오히려 자립 당사자들의 삶의 생태계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청' : (할머니가) 너는 대학에 갈 생각하지 말고 취업이나 해서 집 빨리 나가라고. 그래서 그냥 당연할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슬슬 저는 처음부터 대학을 안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취업을 하든 뭐를 하든 돈을 벌어야 겠다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해야 되겠다 싶은데 정작 나는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생각만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을 다 보낸 거 같아요.(...) 지역아동센터 다니면서도 솔직히 제과제빵, 사진, 요리, 연극 이런 거 다 해봤는데 할 때마다 뭔가 어중간하게. 남들보다 특출나야 그런 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 생각하잖아요. (...) 3도 그렇게 무난하게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 없이 지나갔는데 이제 졸업을 하고, ‘졸업했는데 너 뭐 할 거니?’라는 질문을 엄청 받았죠. (...)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아서 상담사라는 직업도 막 찾아봤는데 대학을 나와야 인정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취직이 안 된다는 말이 너무 많고.(...)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안 했는데 과연 내가 지금 공부해서 대학 들어간다고 해도 뭐가 될까. 제가 게으른 거죠. 아유 안 되겠다. (...) (이모가) 본인이 완전 푸시를 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성격이시라 이사 간 첫날에 저를 데리고 간호학원을 등록했어요. 제가 바늘도 무서워하고 이게 맞는 건가 싶은데 지금 당장에는 제가 뭘 하는 것도 아닌데 이거 하기 싫다고 하면 얼마나 욕을 먹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간호조무사 준비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요.

 

'청': 저는 살면서 제가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그때(간호조무사 학원 등록 전)뿐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못 가게 돼서 앞으로도 영원히 못 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지금 나이 때 갈 수 있는 그런 여행은. 앞으로는 취업해서 돈 벌어야 되고, 저 그런 애들 진짜 부러웠거든요 엄마, 아빠가 학원비 대주는 애들. 저는 지금 당장에 돈 벌어서 먹고 살아야 되는데 간호조무사 학원에서 엄마, 아빠가 돈 내주는 학원 다니면서 다니기 싫다 찡찡대고 진짜 꼴불견이었어요. 저는 학원비는 할아버지가 저 집 나간다고 이것 저것 사라고 돈을 줬는데 그 돈이 남아서 그걸로 결재는 했어요. 아직 옷 같은 거는 사야 되고. 제가 돈 벌어서 전기세나 이런 거는 알아서 내야 돼요.

 

'소': 내가 자립해야 한다, 뭔가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20살까지 그래야 한다는 게 그때는 엄청 부담이 됐어요. 나이는 드는데, 제 나이 주변에서는 사회생활 하는 애들도 있고 대학 다니는 애들도 있는데 너무 비교가 되는 거예요. 이것저것 참고 하다 보니까 무너지고, 참고 무너지고 반복돼요. 그런데 여기(이상한 나라)와서 천천히 해도 된다, 급하게 생각 말고 나이에 대한 압박감에서도 좀 벗어나서... (...) 엄청 불안하고 힘들고 그랬는데... 빚이 있으니까 더. 나는 이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여기를 벗어날 수 없다, 빨리 빚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거 하나로 일만 했는데. 이자만 빠져나가고 돈이 모이지도 않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일은 일대로 짜증나고, 생활은 생활대로 짜증나고. 외롭기도 하고. 반복되지만 나는 이거 빨리 해야 돼, 해야 돼, 해야 돼. 그러다 보니까 피폐해지고. 기둥 없는 집을 만드는 느낌? 집을 지으려면 땅이 어떤지도 봐야 하고 기둥은 어떤 걸 좋은 걸 써야 하는지도 봐야 하는데, 그냥 막 지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소': 동생이 힘든 일이 있어서 계속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아서 제가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낭떠러지 앞에(옆에) 삐져나온 모퉁이 같은 데서 쉬었다 가라고. (...) 계속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자꾸 내려갈 수밖에 없잖아요. 올라간다는 생각보다는, 앉아서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다시 기회가 올 거고, 모퉁이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면 더 올라가지만, 내려가면 한없이 내려가니까. 사람들은 가다가 돌덩이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 거고, 뭔가에 맞아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거고. 앞으로 걷겠다는 생각보다는 앉아서 좀 쉬었다가 포기만 안 하면 될 것 같아요. 걷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고. 내가 지금까지 왔던 길이 아깝잖아요? 힘들게 왔는데, 돌아가면 이 길을 다시 가야 하는데... 그럴 바에야 쉬었다 가는 게 낫잖아요. 쉬는 동안에 생각이 계속 바뀌니까. 더 힘을 낼 수도 있고. 사람마다 갖고 있는 힘이 다르잖아요. 늦더라도 회복하고 가는 게. (...) 결과를 당장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 신경 안써도 될 것 같아요.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겠지만..(...) 모퉁이에서 내가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내가 갈 때 뭔가가 날아오면 어떻게 피해야겠구나,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되겠구나 같은 것도 생각하고. (...)어떤 힘든 상황에 있어도 어른들은 해결책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참아라 그러는 것 같아요. 책임감이 없다 그러고. (...)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일자리 자체도 별로 없고,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방학 때는 대학생들이 다 채가고.



'청'이는 여전히 진로를 고민 중이다. 가족 안팎의 지원이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진로를 차차 준비해나가고, 대학생활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는 와중에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가정의 지원이 없거나, 탈가정 상태인 청소년들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진로를 빨리 결정해야 하는 압박에 내몰리곤 한다. '청'이는 18살 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년간 다닌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곧장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지는 못했다. 소질을 살릴 수 있는 직업(상담사)을 발견해도 문턱이 높아 시도해볼 생각을 접게 된다. 결국은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소'는 스무 살이 되면 자립해야 한다는 압박에 쫓겼던 시간을 기둥 없는 집을 짓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천천히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은 비록 신경은 쓰이지만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소'는 모퉁이에서 쉬어가는 시간이 생각을 익혀나가고 앞으로 나아갈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이라고 얘기한다. 이 시간을 인정하지 않으면, 정해진 시기 동안 정해진 결과를 성취하라고 사람들을 내모는 자립, 그리하여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수 없는 자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은 쉬어가도 좋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재촉한다. 좀 쉬어가려 해도 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서원은 사기를 당해 진 빚도 갚아야 하고, 일해서 번 돈을 가족에게 보태느라 까먹었고, 앞으로 자립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돈도 모아야 하는 형편이다. 미진은 지금 아니면 갈 수 없을 것 같은 여행을 꿈꿨지만 떠날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준 독립 자금으로 당장의 학원비는 결제했지만, 앞으로의 주거비와 생활비는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다양하거나, 구직이 쉬운 것도 아니다. 자립을 하라고 재촉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할 일자리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모순. 지속가능하지 않는 세상에서 지속가능한 자립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져 있는 꼴이다.


'년': (내가 자립을 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은 나이였어. 20대가 되길 항상 꿈꿔왔어. 하지만 나이가 제일 도움이 되기도 했지. 내가 어렸기 때문에 그만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내가 어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겼으니까. (...) (자립 지원에 있어서) 사실 난 19~20살도 문제지만, 20~22살도 문제라고 봐. 이때는 나이도 애매하고, 뭔가 딱 걸려있지 않으면 지원받기도 어려워. 성인과 미성년자의 경계를 잘 모르겠어. 블로그에 글로 쓰기도 했지만, 20살이 넘었다고 성인이라고 볼 수 없는 것 같아. 어린 애야.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살라고. 그러니 대출 받고 빚에 허덕이기도 하는 거야. (...) (연속적인 지원이 있다면 뭐가 좋을 것 같아?) 내가 뭐하나 고르자면, 의료지원은 좋을 것 같아. 나도 밖에 있을 때 아프지만, 집에 있을 때도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병원 가는 것이 제일 사치라고 생각했었어. 집에서 끙끙 앓다 한숨 자면 낫고. 이런 것이 커서 의료지원은 되게 중요한 것 같아.


 

지속가능한 자립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지지 않기 위해 '년'은 스무 살이 지난 사람들의 삶도 돌볼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권 이야기를 담은 그 집은 나를 위한 집이 아냐를 보면, 마냥 웃고 넘길 수는 없는 기록이 등장한다. “우리가 지금은 어리니까 가출 청소년이라고 불러주지, 나이 들면 그냥 노숙자되는 거야.” 지금의 사회복지 시스템 혹은 자립 지원 제도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통찰이 아닐까 싶었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쉼터인 열림터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에서도 자립에 필요한 시간이 개인 마다 다르기 때문에 퇴소하는 시점과 자립하는 시점은 일치하지 않음을 짚는다. 따라서 퇴소한 뒤에도 자립을 훈련하며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여러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 생태계 안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지원을 받을 때 당사자들은 긴 호흡으로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

 

지속가능한 자립은 자립의 시간과 관련된 개념이자 동시에 장소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특정 연령대로만 한정하지 않는 자립 지원 제도나 정책은 자립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나 정책 차원으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주거가 있고, 소득이 보장된다고 해도 삶을 함께 가꿀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추억을 쌓거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비빌 언덕이나 아지트가 없다면, 어렵사리 확보한 시간은 무료한 생활로 채워질 것이다. 위기 청소년에게 삶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장소는 더욱 중요하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가족이나 학교가 그러한 장소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렇다고 가족과 학교의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만이 해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소는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 사회 곳곳에 차별 없는 환대가 가능한 장소들을 넓혀 가고, 그러한 가치들이 서로 통용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연결 지을 때 비로소 삶도, 자립도 평생의 연속적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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