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께기자단 기사

[간과되는 아동학대 문제 1] "우리 오빠는 아빠에게 맞아 죽었어요. 저는 어떻게 될까요?"

by 함께걷는아이들 2017. 7. 25.

 “지훈이는 정말 힘든 아이었죠. 근데 지민이가 지훈이와 비슷해요”


  2011년 아빠에게 맞아 죽은 세 살짜리 지훈이를 쓰레기더미에 내다버린 엄마의 입에서 하소연하듯 나온 말이다. 지민이는 지훈이의 여동생이다. 지훈이가 죽은지 4년 후 가해자인 엄마가 지민이를 죽은 아이처럼 골칫거리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우리의 우려처럼 이미 지민이는 죽은 오빠가 당했던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지민이는 말을 안 들으면 작은 방에 갇히고 며칠 씩 벌을 서며 매를 맞았다. 다행히 지민이는 한겨레 기자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엄마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다. 지민이는 아동보호시설로 보내져 영영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지민이의 엄마도 동의한 조치였다. 어렸을 적 가장 위험한 존재가 자신을 낳아 준 엄마였다는 사실을 지민이는 자라면서 이해할 수 있을까.

 

 

  지민이와 같이 가해자 부모와 여전히 같이 사는 사망 아동의 형제, 자매들은 현재 우리 사회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아동학대 사망자 113명 중 형제, 자매가 있는 경우는 46건(40.7%)이었다. 이 중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관리 받은 사례는 7건 뿐이었다. 물론 부모로부터의 분리가 무조건 아동학대의 예방책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한 가정에 남아 있는 아이들을 그저 방치하고만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5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11,715건 중 재학대 건수가 1240건(10.6%)이었다. 이 중 부모에 의한 재학대 건수는 1153건으로 93%의 수치를 기록했다. 이 통계를 보면 사망 아동의 형제, 자매들을 잠재적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이 결코 무리한 판단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동학대 사망자가 발생하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식의 태도만 취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가해자인 부모에 대한 사법 절차가 진행되면 사례를 종결해버린다. 그 가정은 한 아이만 사라졌을 뿐 그 아동을 죽게 한 모든 상황은 그대로인데 그저 방치된다. 결국 아동학대 가정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가해자 부모 밑에 남아있게 된다.


  남은 형제, 자매들은 꼭 신체적 학대를 당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정신적 학대 피해자일 수도 있다. 지훈이의 엄마는 다른 형제인 지석이만큼은 잘 돌보았다. 지석이는 지훈이나 지민이처럼 말썽을 부리지 않고 엄마의 말을 잘 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지석이가 다른 형제, 자매들의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적으로 가장 아팠다는 사실이 전문가의 개입을 통해 밝혀졌다. 즉, 직접적인 학대를 당하지 않아도 지석이처럼 아동학대 가정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아동은 학대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 아동의 형제, 자매들이 방치되는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부족한 예산과 인력 문제이다. 아동학대 전문기관의 상담원은 1인당 평균 200개가 넘는 위험 가정을 관리하고 있다. 상담원들은 새롭게 접수되는 신고를 처리하기 위해 기존에 관리하던 가정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 전에 ‘사례 종결’ 처리를 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피해 아동이 아니면 같은 가정의 아이라 할지라도 개입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 정서상 가정 내 문제에 개입하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특히 자식 양육에 대한 부분은 전적으로 부모의 관할 영역이라는 의식이 강해 아이들이 맞아 죽을 때까지 아동학대 신고가 한 번도 접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동학대의 징조가 보여 전문기관에서 예방 관리를 들어가려고 해도 현재로선 적극적으로 개입할 권한보다 가정의 사생활 보호 의식이 훨씬 강해 예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사망 아동이 발생한 아동학대 가정이라 할지라도 형제, 자매들에게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 아이굿뉴스 (사진제공:아이클릭아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급한 불을 끄는 일은 아동학대 사망자가 발생한 가정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관리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아동학대 전문가에게 가장 까다로운 일은 특정 가정 내에 아동학대 위험 요소가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아동학대의 예방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한 가정의 사생활권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에 항상 개입주의를 우선할 순 없다. 그런데 사망 아동이 발생한 가정은 아동학대의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가정이다.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서히 불을 끄는 일은 아동학대 분야에 대한 예산과 인력 지원을 늘려 사망 아동이 발생한 가정 이외에도 아동학대가 한 번이라도 발생한 가정 내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 대해 관리를 하는 것이다. 또한 아동학대 가해자인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한 조치를 처벌과 분리로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치료와 개선으로 해야 한다. 아동학대 가해 부모들은 과거 학대의 피해자였거나 빈곤, 질병, 가정불화 등 여러 사회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가정에 대한 통제와 처벌만이 답이 아니라 적절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관리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민이의 엄마도 과거 학대의 경험이 있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만약 지훈이가 죽은 후 우리사회가 좀 더 빨리 지민이에게 관심 가지고 엄마에게 적절한 치료와 조치를 취해주었다면 지민이도 여느 아이들과 같이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자랄 수 있었을까.

 

<참고자료>
김동욱,문영희, 『아동학대』, 청목출판사, 2011
류이근,임인택,임지선,최현준,하어영,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시대의창, 2016
보건복지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2015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2016
정윤숙, 「한국의 아동학대 예방, 지원정책에 관한 분석」, 전남대학교, 20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