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선 되도록 짧게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이전에 미팅을 시작하되 2시간 이상 진행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오후 3시가 되면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근로 자들의 본격적인 퇴근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북유럽 근로자들의 시계바늘은 항상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전 7시~8시에 출근해 6시간 30분~7시간가량 일한다.

늦어도 오후 4시에는 어린이집에 도착해 아이들을 데려간다. 한국 근로자들의 이른바, ‘칼퇴근’ 시간격인 저녁 6시는 대다수 북유럽 가정의 저녁식사 시간이다. 항공사, 병원 등 근로자의 근무 일정이 불규칙적인 근로자들을 위해선 지자체와 직장이 함께 나서 24시간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침대와 별도의 시설을 갖추고 아이들의 휴식과 취침을 돕는다. 적어도 이들 국가에선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회사를 관둬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표 1> 2007~16년 OECD 가입국 여성 고용률 추이 

북유럽 국가의 높은 여성 고용률이 지속될 수 있는 비결은 정부의 과감한 복지 지출과 기업의 근로시간 단축, 근로자의 생산성 강화 3박자가 잘 들어맞은 탓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북유럽 국가와 같은 높은 수준의 복지 지출과 신뢰와 관용에 기반한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500만~1000만 명 규모의 인구를 가진 국가와 5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의 복지 모델은 다를 수밖에 없고, 수십 세기 동안 이어진 개별 국가의 문화적 차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네덜란드, 호주, 영국, 일본, 독일 등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고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 고용률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꼽힌다. 실제 이들 국가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은 남성에 견줘 여성 일자리에서 매우 높게 나타난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전체 여성을 10명 중 6명 은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다. 경력 단절이 본격화되는 30대와 40대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에서도 네덜란드, 영국, 일본, 독일 등은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그리고 있다.


<표 2> OECD 가입국 시간제 근로자 비중


남녀를 통틀어 OECD 가입국 가운데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가장 높은 네덜란드는 1982년 고실업, 복지재원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댄 바세나르 협약 (Wassenaar Agreement)이 핵심 동기로 작동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사용자협회와 노동총연맹이 의지를 보여주면,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문제는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기업에게 세금감면, 기업보조 확대를 약속했고, 기업은 근로자에게 선호하는 시간에 나와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하는 이른바, 네덜란드식 시간제 일자리가 탄생했다. 오늘날 네덜란드는 전체 노동자 중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36.7%에 이르고 변호사, 의사 등 사실상 전 산업에 시간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독일은 1990년대 이후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노동시장 개편을 단행했고, 이 시기 단시간 근로에 대한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 저소득 소규모 직업 육성, 청년 실업자 시간제 채용 시 보조금 지급, 조기 퇴직 고령자 시간제 전환 등과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이 마련됐다. 독일은 OECD 가입국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다.  2016년 OECD 조사에서 독일은 남성과 견줘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무려 4배 이상 높았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력 단절이 발생하는 40~44세 여성의 경우 남성 전체 시간제 일자리 비중의 약 5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여성 위주의 시간제 일자리라는 이유로 차별적 요인이 많지 않을까?

독일은 강력한 노조의 힘으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독일은 시간제 근로자도 노조에 가입 할 수 있다. 공공·사무직·금융·소매·미디어 노조가 통합한 독일 최대 서비스노조 베르 디(Ver.di)의 경우 조합원 중 20%가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다.

영국은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들의 주요 고용형태가 된지 오래된 국가 가운데 하나다. 관련 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한 2000년 이전까지 시간제 일자리는 출산과 육아로 인해 시간이 제한적인 기혼 여성의 전형적인 일자리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영국사회에선 기존 시간제 일자리를 뛰어넘어 근로계약상의 정해진 시간 없이 일한만큼 급 여가 지급되는 ‘제로 아워(zero hour)’와 같은 제도 등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표 3> 네덜란드, 독일, 영국 시간제 일자리 제도 현황   

이처럼 북유럽을 제외한 이른바 서구 선진국들은 경기 침체와 재정 건전성을 위한 목적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시간제 일자리 도입에 나섰고, 이는 여성들의 고용률 상승으로 이어져 경력 유지를 통한 사회적 손실 방지 그리고 더 나아가, 출산율 상승 이라는 사회적 순기능을 낳고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출산, 보육, 교육 등 전 부문에서 높은 복지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북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호주, 영국, 네덜란드와 같은 시간제 일자리가 활성화되어 있는 국가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출산율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시간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난 10개국과 출산율 하위 10개국을 비교해보면 한국을 비롯해 헝가리,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등 7개국이 중복된다. 이들 국가의 출산율은 평균 1.5명에 미치지 못했고, 특히 한국은 1.2명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표 4> 2007~15년 OECD 가입국 출산율 추이

물론 시간제 일자리에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일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시간제 일자리는 낮은 급여를 비롯해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우려될 수 있다. 시간제 일자리 시행 이전에 차별적 요소에 대한 제도 보완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손실과 소득 양극화로 인한 출산율 저하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임은 다양한 해외 선진 사례를 통해 이미 증명됐다. 생의 디딤돌로써 때로는 징검다리이자 마침표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 노사정이 함께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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