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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함걷아를 만난 아이들

[올키즈스트라 참여 아동 인터뷰] 색소폰이 나에게 왔다(2)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5. 26.

 

 

색소폰이 나에게 왔다_ 두 번째 이야기 

 

 

아빠의 마음이 움직인 걸까?


차라리 공부를 못 할 걸 그랬나, 공부를 못해서 악기라도 열심히 한다고 하면 아빠가 허락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는 공부를 못했거든요. 근데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하자는 생각이 있어서 열심히 했어요. 성격이 그런 건지 생각이 그런 건지 뭐 한번 열심히 하자 마음을 먹으면 완전 독하게 한다 말이에요. 반에서 3등인가 했을 거예요. 아빠는 제가 고등학교 와서 공부도 잘하니까 계속 공부해서 좋은데 취업하면 되는데 왜 굳이 악기를 전공해서 힘들게 살려고 하는지, 돈도 많이 드는 걸 하려는 건지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나중에 사촌오빠에게 들었는데 아빠가 시골 고모들한테까지 전화해서 ‘지원이 3등 했다’고 자랑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빠 이번에 3등 했어’ 했을 때는 아빠가 ‘아 그래잘했어’ 덤덤하게 말했거든요. 저는 원래 아빠가 ‘잘했어 축하해’ 이런 말을 진짜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른 식구들한테 전화해서 다 말한 거예요. 고등학교 와서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도 오른 거니까 악기도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주겠다고 아빠를 설득했어요. 아빠가 전공이 그렇게 하고 싶냐고 물어서 진짜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하시는 거예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더 얘기 안하고 그날은 그냥 잤어요. 아빠는 갑자기 들은 거니까. 제가 전공하고 싶어 한다는 걸 제 주변은 다 알지만 저 혼자만 생각해 왔으니까 아빠는 몰랐거든요.


아빠가 그러셨어요. ‘니가 나중에 혼자 살 시간이 올 텐데 그때 후회하게 할 순 없다고, 니 살 길 니가 가야지 내가 어떻게 정해주냐’고. “니 알아서 해 난 몰라.” 그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니 알아서 해.” 아빠가 정확하게 된다 안 된다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돈이 별로 안 드는 거면 안 된다고 해도 시켜달라고 하겠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하고 싶은 거 왜 안 시켜주냐 이렇게 말할 수 없잖아요. 지원금이 오백만원이고 나머지는 자부담인데 레슨만 받는 게 아니라 연습실비, 반주비도 내야 되고 원래 악기도 사야 되거든요. 아빠가 돈을 주긴 하는데 그래도 쫌 눈치가 보여요. 돈이 필요할 때 선뜻 말을 잘 못해요. 아빠는 음악 쪽을 잘 모르니까 왜 그 정도 비용이 드는지 모르잖아요. 수시 볼 때 원서비랑 반주비 제가 모아 둔 돈으로 냈어요. 유치원 때부터 모아둔 돈이 있는데 돈 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때 그 통장에서 빼서 써요. 악기 전공하면서도 힘들다고 아빠한테 말을 못 했어요. 그렇게 힘든 거를 왜 하냐는 말을 들을까봐 힘들다는 말을 못해요. 힘들다 그러면 왜 하냐고 그만두라고 할까봐.

 

제가 진짜 1등이에요?


다른 전공하는 애들보다 많이 늦은 거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악기 연습을 진짜 열심히 한 거 같아요. 정신없이 열심히 하다보니까 고등학교 3학년이 된 거예요. 3학년 돼서 처음으로 콩쿠르에 나갔어요. 처음이니까 ‘아 이게 뭐지’ 어리둥절했던 거 같아요. 그래도 실력대로 한 거 같아 만족했어요. 연습실에 같이 있던 오빠가 콩쿠르 끝났으니까 밥 사준다고 해서 같이 밥 먹고 있는데 레슨 선생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축하한다. 너 1등이야”. “‘에이, 거짓말 하지 마세요, 헤헤 거짓말이죠?” “진짜야 1등이야.” 헐~ “오빠 저 1등이래요.” 대박~ 레슨 선생님도 아빠랑 비슷하게 제 앞에서는 별로 얘기 안 하는데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1등 했다고 다 말을 하신 거예요. 연습실 들어갔더니 선생님들이 “야 1등” 그러는 거예요.

 

대학입시는 확실히 떨리는 게 콩쿠르랑 다르더라고요. 수시를 봤는데 압박감이 심해서 그런지 떨어서 실수를 했어요. 악기는 시험장에 들어가서 틀리면 탈락이거든요. ‘아 망했다 떨어지겠다’. 실기시험에서 틀리니까 ‘아, 내가 지금까지 뭐 했지?’ ‘진짜 대학을 못 가겠구나.’ ‘아, 진짜 어떡해’. 집에 가는데 기분이 다운되는 거예요. 너무 억울한 거예요. 아니 억울하기보다 내가 틀린 거니까 속상했어요.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선생님한테 문자가 왔어요. ‘오늘 본 거 잊고 다음 꺼 준비하자.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지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자’고요. 세 곳에 원서를 넣고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다 안 됐어요. 지하철 막차타고 집에 가면서 친구한테 전화를 했어요. “요즘 악기 하기 너무 싫은데 그만둘까?” “악기 왜 하는지 모르겠어,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수시 준비하면서 엄청 힘들었거든요. 결국 수시는 다 떨어지고 정시 준비했는데 그때는 별로 안 힘들었어요. 대학 두 군데 붙었는데 지금 다니는 대학을 선택했어요.


힘들어서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말할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레슨 선생님한테 말할 수도 없고..... 연습실 같이 쓰는 애한테 말할 수도 없고. 딱 한번 연습실에 있는 애한테 말했나. 제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줄 몰랐을 거예요. 티 안 내고 지냈죠. 힘든 걸 거의 말 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래서 혼자 힘들었던 적도 많았던 거 같아요.

 

[일러스트: 김다희]

 

함께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래도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악기를 전공 할 수 있었어요. 상위관악단 같이 했던 지역아동센터 언니들, 사촌오빠, 레슨 선생님들, 함께걷는아이들 선생님들, 학교 친구...... 언니들이 저희 아빠가 반대한다는 얘길 듣고 어떻게 말하면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 줬어요. “잘하는데 하고 싶으면 해야지.” “전공하고 싶다고 말을 해, 악기 한다고 공부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악기도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해.” “딸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밤늦게까지 열심히 연습하고 집에 가는데 어떻게 안 시켜 주겠냐.” “딸이 잘 말하면 아빠는 넘어올 수밖에 없어.” 언니들 말 듣고 제가 말 잘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아빠한테 얘기를 꺼낼 수 있었어요. 아빠한테 말 못하는 제 모습 볼 때마다 언니들이 더 안타까워했거든요. 


사촌오빠도 많이 도와줬어요. 악기 전공하는 걸 아빠보다 고모가 더 반대했다고 했잖아요. 사촌 오빠가 ‘엄마 시대에는 돈 많이 버는 거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시대는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잘 하는 거 해야지 잘 먹고 잘 사는 거라’고 고모한테 얘기해줬어요.


아빠가 반대한다는 얘길 듣고 레슨 선생님도 아빠랑 통화해서 제가 하고 싶은 말 대신 잘 해 주셨어요. 선생님이 추천서 써 주시고 가정통신문 보낼 때도 ‘애가 대개 열심히 하고 악기 하는 거 정말 좋아한다’고 얘기해 주셔서 제가 열심히 하는 걸 아빠가 안 거 같아요. 상위관악단에서 레슨 해 주시는 선생님이 제가 열심히 하는 걸 아셨거든요. 합주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문자로 물어보고 했어요. 선생님이 그 모습도 좋게 보고 열심히 해 가는 것도 알고 ‘아 진짜 열심히 하는 애구나’ 저를 좋게 보셨어요. 함께걷는아이들에 전공지원 신청할 때도 오디션 보기 전에 선생님이 계속 봐 주셨어요. 전공수업처럼 해 주셨어요. 선생님이 저를 잘 챙겨주셨어요. 감사해서 선생님하고 만날 때 커피 사 들고 가고..... 선생님이 중학교 근무하시니까 평일에 계속 레슨 해 주기 힘드셔서 다른 좋은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다행히 고2, 고3 때 함께걷는아이들에서 전공 지원을 받아서 계속 할 수 있었고요.


수시 준비할 때 힘들었다고 했잖아요. 힘들어서 친구한테 전화했더니 친구가 우는 거예요. 전화 끊고 카카오톡이 엄청 길게 왔어요. 카톡을 봤는데 ‘열심히 하는 거 아는데 그만둔다고 말하니까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대신 힘들 수도 없고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모르겠고, 악기 그만둔다고 말하는데 무슨 말을 해 줘야 될지 몰라서 미안해서 울었다’고 그러는 거예요. 저를 엄청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친구가 울어주고 챙겨주니까 힘이 됐죠. 이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악기 전공을 못했죠. 제가 어렵지 않았으면 사람들의 도움을 당연하다고 생각 했을 것 같아요. 지금이 좋은 거 같아요. 저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저는 그 마음을 돌려주고 싶어요.

 

어떻게 이 길을 왔을까?


아빠가 저를 믿고 악기 전공을 시켜 준건데 열심히 해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열심히 안 하면 시켜 준 보람도 없고 왜 시켜줬지 그런 생각을 아빠가 할 거 같았어요. 집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아빠가 저보다 더 힘들 텐데 아빠한테 힘이 되고 동생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던 거 같아요. 고모한테 ‘니가 도와줘야 된다’는 말을 많이 듣다 보니까 익숙해진 것도 같고요. 이런 마음을 버리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이제 제가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고 가족이랑 같이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올키즈스트라는 원래는 못 가는 길인데 저의 길을 열어줬어요. 이게 없었다면 악기 자체를 잡아보지 못했겠죠. 아마 악기를 보지도 못했을 거 같아요.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예요. 색소폰은 살면서 완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악기였어요. 내가 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 내가 잘 할 수 있겠다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 주기도 했고요. 막상 그만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뭘까 싶기도 했던 거 같아요. 시작하면 끝을 봐야 되고 주어진 일이 있으면 내 손에서 다 해결해야 되고 안 되는 거 있으면 될 때까지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속 이것만 보고 왔어요. 10년이 지나도 악기를 계속 연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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