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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함걷아를 만난 아이들

[EXIT에서 만난 청소년 인터뷰] 이해의 세 가지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12. 15.
움직이는청소년센터EXIT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건강하게 자립하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주체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EXIT는 거리상담을 통해 청소년들 개개인에게 필요한 진로, 자립, 주거, 일 등 서비스를 연계하고, 거리에서 필요한 자립, 성, 취업 교육 등을 합니다. 또한, EXIT는 거리 청소년을 지원할 성인 및 또래 활동가를 조직하고, 지역 내 자원을 연결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청소년이 EXIT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중에서 세 명의 청소년을 만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5회로 연속 게재될 예정입니다. 세 번째 연재이자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4년 정도 EXIT에서 활동한 열아홉 살 조현지 씨(가명)입니다.

 

 

이해의 세 가지

 

 

저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어요. ㅋㅋ. 가출하진 않았지만 주로 외박은 했죠. 그때는 애들하고 놀고 싶고 집에 들어가기 싫고 엄마, 아빠가 하는 얘기가 다 잔소리처럼 들렸어요. 밖에서 계속 있다 보니까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재밌거든요. 애들이 모여 있으면 사건이 날 때가 있잖아요. 집단 폭력 같은.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건에 휘말리니까. 그래도 EXIT 덕분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넘겼던 것 같아요.

 

이해시키려고 하는 학교


제가 엄청 힘들게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학교에 너무 가기 싫고 노는 게 좋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어서 학교를 많이 빠졌죠. 60일 빠지면 등교정지를 당하는데 제가 그랬어요. 등교정지는 60일 동안 학교를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전에 등교정지를 당했는데 방학 기간 합쳐서 60일이 되는 마지막 날이 졸업식이었어요. 등교정지 상태니까 졸업식에도 오지 말라고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침에 교복도 입고 있었는데……. 전화 받고 계속 울었어요. 졸업식은 마지막 추억이니까 꼭 가고 싶었거든요. 억울했어요. 딱 한 번 그런 건데 졸업식에도 못 오게 하니까. 그래도 친구들 보러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어요. 친구들 졸업하는 모습 보면 제가 힘들어할까 봐. '니 졸업식인데 누굴 구경하냐.' 학교에 가도 졸업장 같이 못 받으니까 마음만 아프다고. 나중에 학교에 가서 따로 졸업장은 받았는데 돈도 이미 낸 졸업앨범은 아직도 안 받았어요. 따로 전화해서 받아야 하는데 짜증 나서 전화를 안 했어요.


학교는 학생을 이해하기보다 이해시키려고 하는 곳이에요. 그러면서 계속 가르치려고만 들어요. 선생님 말은 맞고 학생 말은 틀리다고 하니까 그게 너무 짜증이 났어요. 고민 상담을 해도 니가 잘못했다 그런 식이니까. “니가 이해를 해야지.” 모든 이야기의 끝이 그거예요. 그런 게 싫었어요.


고등학교 입학 오리엔테이션에 갔었는데 등록금 내기 전에 학교를 그만뒀어요. 학교에 적응 못 하니까 제대로 못 다닐 것 같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학교 다니면 그걸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잖아요. 바리스타도 하고 싶고 네일 아트도 하고 싶고, 동물도 좋아해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고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관심 있는 거 다 해 보고 싶다. 빨리 검정고시를 보고 다른 시간은 하고 싶은 걸 하자. 학교에서는 하루하루가 다 똑같고 지루했거든요. 애들하고 놀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답답한....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공부하는데 저는 손을 다 놔 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뜻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해하려고 하는 EXIT


EXIT에 왔을 때 엄마 미소, 엄청 포근했어요. 밝고 인자하고 마음이 넓다고 할까. 저희를 잘 받아주고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존중해줘요. 겪어보니까 선생님과 활동가는 달라요. EXIT 선생님들은 활동가잖아요.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활동가는 청소년들을 이해하려고 해요. 같이 지내다 보면 마찰이 생길 수 있잖아요. 신기한 게 몇 분 후에 저한테 다시 와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요. 제가 오히려 미안한데 어른인 사람이 먼저 미안하다고 하니까 엄청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EXIT는 다른 기관하고도 달라요. 다른 기관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막 대하면 일단은 다그치고 지적하죠. '너 왜 그러니' 하면서 이해 못 하는데 이해를 해 준다는 식으로, 그건 진짜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말로만 ‘널 이해해’ 하는 거죠. 근데 EXIT는 저희가 잘못한 걸 이해해줘요. 너희가 이렇게 해서 그런 일을 한 거구나 그렇게 말해 줘요. 그러면 제가 잘못한 걸 깨닫게 돼요. 이해를 행동으로 보여줘요. 진짜 이해를 해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거든요. EXIT는 엄청 이해를 잘 해주고 보듬어주고 다독여도 줘요.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팔자가 폈죠. EXIT 다니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그동안 시간을 엄청 잘 보낸 거 같아요. 416세월호 집회에 갔는데 너무 화가 나고 오기도 생겼어요. EXIT 청소년, 활동가들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활동을 하려고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 실천단을 만들었어요. 4월 16일쯤 일주일 동안 같이 자면서 유가족도 만나고 거리에서 세월호 참사도 알리고 집회도 나갔어요. 집회에 갔는데 시위를 하는 사람도 경찰들을 막 대하고 경찰도 시민들을 막 대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경찰들이 저희한테 물대포 쏘고 캡사이신 뿌리고……. 오기가 생기니까 짜증도 났어요. 원래 얼굴엔 쏘면 안 되는데 막 쏘니까 화도 나고. 차벽을 뚫을 때마다 몇만 명의 사람들이 '진실을 인양하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고 울컥했어요.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어요. 그거 때문에 계속 집회에 나가게 됐어요. 엄마도 제가 집회에 가는 걸 아세요. '제발 사람들 많은데 가지 말고 뒤에 있다가 오라'고 하는데 캡사이신 냄새가 옷에서 잔뜩 나니까 ㅎㅎ. 


정말 궁금해요. 이 정도로 막을 만큼 감추고 싶은 게 뭘까. 청소년들이 집회에 나갈 정도면 우리나라가 많이 심각한 상태인 거죠. 약자를 엄청 만만하게 보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고 돈 있는 사람들은 뭘 해도 되고. 청소년들이 집회에 가야 심각하다는 걸 어른들이 알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만 아니라 나중에 이런 일이 또 있을 때 사고라고 하면서 넘어갈 것 같고 저희도 관련 있는 건데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꼭 어른들만 가는 게 집회에 아니라 청소년도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동물을 엄청 좋아해요. 원래 고양이를 세 마리 키웠는데 지금은 한 마리만 키워요. 집은 작은데 고양이들은 크니까 애들이 답답해하고 털도 날려서 한 마리만 남기고 넓은 데서 뛰어놀라고 시골로 보냈어요. 집에 있는 애는 나이도 많고 너무 소심해서 적응을 못할까 봐 안 보냈어요. 유기견 보호센터에 봉사활동을 가면 버려진 애들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품을 수 있는 애들인데 '강아지 예쁘다' 하면서 유행처럼 샀다가 키워봤는데 별로다 하면 버리고, 아프면 감당이 안 돼서 버리고, 맡기다가 안 돼서 마지막엔 버리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관심이 푹 꺼지면 싫증 내고 많이 버려지는 것 같아요. 버려진 애들이 많아서 유기견 보호센터에 가면 할 일이 많아요. 치료받은 동물들 방으로 옮겨주고, 똥도 치우고, 신문지도 새로 갈아주고, 털 빠지면 털도 밀어줘요. 동물병원에서 분양받지 말고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생각을 잘해 보고요. 강아지는 장난감이 아니니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혹시 제가 손을 다 놓을까 봐 걱정이 됐던 거 같아요. 검정고시에 빨리 합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늦게 따면 고등학교 자퇴를 후회하게 될까 봐. 그 차이가 있어요. 검정고시 떨어진 애들한테 어른들이 "졸업했니?" 그러면 "아니요. 저 졸업 못 했어요" 하면 "뭐 했는데 아직 졸업도 못 했어." 그러죠. "아직 검정고시를 못 따서요." 대답하면 "그러게 학교에 다녔어야지." 어른들은 이렇게 말해요. 근데 어른들이 저한테 학교 다니니 물어볼 때 "저 졸업했어요" 하면 "어, 벌써 졸업했어, 아 그래 잘했다." "저 검정고시로 했어요." 그러면 "그래, 검정고시가 확실히 편하고 빠르긴 하지" 그러는 거죠. 이렇게 달라요. 제가 마음속으로 내기한 거죠. 학교 다니는 애들보다 더 빨리 졸업해야지. 검정고시는 4월, 8월 1년에 두 번인데 제가 이번에 떨어지면 스무 살 4월에 졸업하니까 늦게 하는 거죠. 그게 너무 싫었어요. 공부가 전부는 아닌데 사람들은 공부에 대해서 엄청 뭐라 하니까 대학은 안 가도 졸업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것도 목표잖아요. 시험을 세 번 봤어요. 일단 떨어지면 왜 떨어졌지 생각하고 꼭 따자 마음을 먹으면서 준비했어요. 힘들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따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안 하던 공부를 해서 합격해야 하니까 시험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런 긴장이 좋았어요. 스트레스받은 다음에 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뿌듯하잖아요. 공부를 한다는 보람도 있었고요. 합격해서 학교 다닌 애들보다 일찍 졸업한 거니까 그것도 좋아요.


저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끌리면 그냥 해요. 나중에 후회하는 스타일이긴 한데 일단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해 보자 생각해요. 그래서 EXIT에서 추천한 인터뷰도 했고 대학교 가서 강의도 했어요. 선생님이 되려는 대학생들 앞에서 거리에 나온 청소년에게 필요한 걸 말하는 강의였어요. 제가 은근 낯도 가리고 매번 긴장도 하는데 일단 해 보는 거죠. 생각해보면 그동안 평타(평범한 타격의 준말)는 쳤던 거 같아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못한 경험도 하고, 경험해 봐서 나중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하고 싶으면 즉흥적으로 하고 싫증 나면 그만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하고 싶은 걸 알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끈기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후회되는 일도 별로 없어요.

 

 

길에서 찾아오는 EXIT


인턴십을 시작한 지 3, 4개월 됐는데 뿌듯해요. 아침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 5일 일해요. 지금 제가 하는 건 한지와 가죽 공예에요. 십대 여성들이 일하는 공방인데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요기 분위기가 재밌어요. 새로 사람들이 와도 금방 친해져요. 얘기하면서 만드니까 그런 것 같아요. 한지공예는 서랍이나 거울을 만들고 가죽공예는 여권 지갑, 책갈피, 카드 지갑. 동전 저금통을 만들어요. 다 만든 완성품을 봤을 때 보람 있어요. 사람들 손재주가 엄청 좋아서 금방금방 팔려요. 돈을 벌 수 있어서 시작 한 일인데 많이 받지는 못하지만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생활할 수 있는 용돈과 핸드폰 비용 정도는 돼요.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데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지금은 일급제여서 시급으로 계산해서 받는데 조금 더 오래 다니면 주급제도 되고 월급제로 바뀐대요. 3년 정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제가 적성에 맞는 곳으로 연결해 준다고 하니까 계속해 보려고요.


여기까지 오는데 저한테 EXIT는 병원 같은 곳이었어요. 모든 걸 다 치료해 줬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이야기도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고민도 같이 보듬어 줬어요. 친구, 가족관계 다 힘들다고 생각했으니까. 잠깐 힘든 것도 다 가서 얘기할 수 있었어요. 친구들이랑 수다 떨다가 나온 고민도 EXIT에 가서 물어볼 수 있었고요. '나는 너보다 나이 많으니까 들어줄게.' 이런 게 아니라 내 눈높이에 맞춰서 고민을 들어주니까 그런 게 좋았어요. 제가 고민하는 걸 해결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에요. 들어주기만 해도 저는 좋았거든요. 누구든 들어줘라 그런 게 아니라 일단 편하고 친하니까 얘기할 수 있었던 거죠.


저는 EXIT를 소개할 때 집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청소년, 길거리 청소년이 오는 곳이라고 말해요. 청소년들이 길 가다가 들릴 수 있고, 길 가다가 와서 얘기할 수도 있고, 길 가다가 배고프면 와서 밥 먹고 갈 수 있고, 갑자기 아프면 와서 치료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해요. 꼭 가출 그런 게 아니어도 집에서 밖으로 나왔는데 힘들고 아프고 배고프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하면 들렀다 갈 수 있는 곳이 EXIT인 것 같아요.


 

기록자 : 이호연

 

10대, 빈곤현장, 재난참사의 피해자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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