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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함걷아를 만난 아이들

[EXIT에서 만난 청소년 인터뷰]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12. 26.
움직이는청소년센터EXIT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건강하게 자립하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주체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EXIT는 거리상담을 통해 청소년들 개개인에게 필요한 진로, 자립, 주거, 일 등 서비스를 연계하고, 거리에서 필요한 자립, 성, 취업 교육 등을 합니다. 또한, EXIT는 거리 청소년을 지원할 성인 및 또래 활동가를 조직하고, 지역 내 자원을 연결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자립팸 ‘이상한 나라’는 여자 청소년(18세 ~24세)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다양한 일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여성들은 엘리스라고 불립니다. 그동안 많은 청소년이 EXIT와 엘리스로 소중한 인연을 맺었고 21살인 곰곰도 그중에 한 명입니다. 어느 늦은 저녁에 만난 곰곰은 3시간 30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습니다. 지면의 한계 상 그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했지만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

 

 

제 얘기를 사람들에게 하고 그 내용이 자료집으로 나와서 제가 일하는 곳 지인한테 전했는데 너무 충격적인 이야길 들어서 한동안 회복 불가능 상태였어요. 그분이 자료집을 보면서 이걸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얘길 하시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기념품이라고 농담처럼 말했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굉장히 심한 말을 하셨는데 ‘니가 지금도 이런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까 더 큰 관심을 받기 위해서 이것보다 더한 짓을 하려고 그러냐’ 이런 얘길 하는 거예요. 이것도 정말 나를 걱정해서 하는 얘기라고 이해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이 제 얘기 잘 들어줘서 저도 얘길 많이 했었거든요. 친한 관계라고 생각해서 준 건데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자료집을 준 게 아닌데 제 마음을 그렇게 찢어놓을 줄 몰랐어요. 너무 속이 상하고 화가 부글부글 끓었는데 차마 앞에선 화도 못 냈어요.

 

시선의 무게

 

제 경험이 일반 사람들에게 충격적일 수 있어요. 성매매 얘기도 있고, 성적 지향에 대한 것도 있고 가출해서 길거리에서 산 얘기니까. 입사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걸 회사 사람에게 주는 게 걱정도 됐어요. 이 자료집을 보고 어떻게 얘기할지 상상이 안 됐거든요. 딱히 듣고 싶은 말은 없었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건 제가 이십 년 동안 살아온 인생을 압축해 놓은 거와 다를 바가 없단 말이에요. 내면까지 기록한 쌩 날 것이란 말이에요. 제 자식 같았거든요. 이 책은 나 자신이고 나를 공개하는 거고 더 친해지려고 전한 건데 얘기하는 걸 잘못 했다고 하다니……. 내 자식 시집보냈다가 소박당하고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이 와중에 속상한 건 제가 그분 말에 수긍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지 그럼.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관심을 받기 위해서 노력했는지를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과 관계 맺기를 잘 못 하지만 욕구는 있으니까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 사람들에게 얘길 하다 보면 과거에 얼마만큼 쎈 걸 해 봤고 여기까지 해 봤고 그러면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일을 하고도 지금 잘살고 있니.” 나쁜 과거지만 현재가 괜찮아서 과거가 나쁠수록 현재가 더 의미 있게 보이니까 그런 반응을 기대하면서 난 충분히 더 좋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다. 지금도 제가 좋은 상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심리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인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거든요. 길거리에서 생활한 다음에 제 경험을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 없었어요. 정말 뇌에서 불필요한 기억을 삭제하듯이 그렇게 살았어요. 머리론 잊었는데 마음은 힘드니까 내가 그런 일을 과거에 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가 말하기 시작했고 자료집은 제 얘기의 완성형 같은 거였는데…….


그분 얘기를 들은 후로 인터뷰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는 걸 거의 못했어요. 굉장히 조심스러워졌어요. 글로든 말로든 제 얘기를 하는 게 어려워진 거예요. 제가 얘기하고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져주면 어떡하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쓸데없는 말을 해서 혼란을 주면 어떡하지 자신이 없는 거예요. 경험한 당사자라는 무게감이 있으니까 내가 하는 말을 맞다고 믿을 수도 있는데 잘못 얘길 하면 큰일 나겠구나, 내 말에 무게가 있구나, 내 말이 휴지쪼가리처럼 가벼운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그래서인지 한동안 제가 쓴 글에 감정이 빠져 있더라고요. 글도 나 자신인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메말라 있는 글만 쓰고 쓴 글을 보니까 더는 쓰기가 싫은 거예요. 글은 썼다 지웠다 할 수 있으니까 말보다는 차라리 글이 편했는데……. 새벽 감정이나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 글을 쓰는데 읽다 보면 지우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 거예요. 이 글을 읽을 불특정 다수가 나를 어떻게 볼까 글을 읽는 사람의 반응이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글 쓰는 건 제가 잘하는 것 중의 하나였는데 그걸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몸이 아파서 어디 하나를 떼어 내듯이....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울 때가 있어요. 내가 분명히 아는 사람이고 친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최악의 상황으로 감정이 치닫고 있을 때 이렇게 들쑤셔 놓으면 나를 지켜보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잘 살아야 하지 잘 살아 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해요. 집 나와서 지금까지 별로 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쉬고 싶은데 쉬면 아무것도 안 하고 퍼져 버릴까 봐 겁이 나요. 살면서 저를 잠시도 가만히 놔둔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가족의 무게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집을 나왔어요. 남들은 가출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탈출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정말 지옥 같았어요.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어요. 제가 고모 손에 컸는데 고모부가 대개 폭력적이었어요. 지금은 이 일을 미안해하시는데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아빠와 새엄마와 같이 살게 됐을 땐 새엄마가 저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아빠를 좋아해서 저를 데리고 사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꾸 당신의 자식들과 비교하고, 남의 자식과 저를 비교하고 본인의 판단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다 틀리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아빠가 중간에서 중재하거나 막아줘야 하는데 계속 저한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불편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산다는 게,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산다는 게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몰랐어요.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제가 어느 날 어디서 뛰어내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숨이 막혔어요. 워낙 그때 친구 관계도 안 좋았고 학교생활도 엉망이었고 어디 기댈 때 하나 없어서 하루하루 숨이 쉬어지기에 숨을 쉬었고 눈이 떠지기에 눈을 떴고 학교에 가야 하기에 학교를 갔어요. 그냥 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어요. 힘들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어요.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때라서 글로 썼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집 정리하면서 그 글을 다시 봤는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잠겨 있는 문을 따고 강도가 들어와서 나만 찌르고 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쓰여 있는 거예요. 드라마에서 봤는지 엄마들이 책상을 뒤진다는 걸 알아서 그 종이를 책상에 올려놓고 학교에 갔어요. 그날도 학교에서 힘들었는데 제가 책상에 올려놓은 종이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저한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느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별로 듣지 않고 관심받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각박하고 삭막한 이곳에서 뭐하면서 살까 여기서 살면 미래에는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정말 이 사람들과 같이 살면 미쳐서 돌아버리겠구나. 춥고 배고프고 불편한 삶을 살더라도 혼자 살아야지 하고 집에서 탈출했죠. 저를 위한 거였어요.


그때 만나고 있던 친구랑 집을 나왔어요. 중학교 때도 그 친구랑 나갔었고 고등학교는 한 일주일 다니다가 학교 간다고 거짓말하고 그 친구랑 다시 집을 나왔어요.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제가 친구를 잘못 만나서 가출한 거라고 얘길 하는데 그 친구는 저의 도움이었지 가출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거든요. 혼자 집을 나올 수 없으니까 친구 도움을 받아서 탈출한 거죠. 멀리 경북까지 내려갔어요. 최대한 집에서 멀어져야 부모님이 찾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친구가 워낙 떠돌이 생활을 많이 해 봐서 연고가 있는 줄 알고 믿고 따라갔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길거리 생활을 했고 위기 상황에도 노출되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어요.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를 따라왔는데 막상 나와 보니까 그런 관계인가 생각이 들면서 힘든 거예요. 기댈 사람이 이 사람밖에 없는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꾸 힘들게 하고 그렇다고 딱히 집에 가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혼자 거리생활을 하려니 아는 것도 없고,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이 컸어요. 그때는 쉼터도 알지 못했고 1388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한 달 넘게 집 밖에 있으니까 몸은 점점 힘들고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었어요.

 

생활의 무게


같이 있던 친구가 쉼터에 가자고 했어요. 너무 힘드니까 거기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갔는데 쉼터에 간지 얼마 안 돼서 그 친구는 저를 두고 서울로 가 버렸어요. 삼 개월이 지나서 집에 가지 않으려면 갈 데를 알아봐야 하는데 바리스타 직업사관 학교로 연결이 돼서 거길 가게 됐어요. 거긴 쉼터랑 달라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거예요. 식비와 주거비 빼고 생활하는데 돈이 필요한 거예요. 저는 사실 빵을 배우고 싶어서 갔는데 커피를 배워야 빵을 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적응할 수가 없어서 그만뒀어요.


집 나온 후로 계속 쉼터를 오가면서 살았는데 그것도 힘들었어요. 매번 얼굴이 바뀌는 남이랑 사니까 힘들고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게 또 힘든 거예요. 쉼터니까 규칙도 있고 싫어하는 애도 있는데 같이 살아야 하니까. 쉼터에서 별별 일을 다 겪었어요. 같이 사는 애한테 두들겨 맞기도 하도 경찰도 오고 앰블런스도 오고 2층에서 뛰어내리는 애도 있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너무 지치고 스트레스도 받으니까 쉼터에서 힘들 때마다 집에 갔다가 집이 힘들어지면 다시 쉼터에 가고 이걸 반복하면서 한 이년은 계속 왔다 갔다 했던 거 같아요. 어쨌든 가족이라서 정이 있고 좋아하는 마음도 있는데 가족이랑 많이 떨어져 살기도 했고 같이 살면 불편한 거예요. 서로 생활했던 게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까. 같이 살다가는 제가 병이 들어서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나와서 안산에 있는 쉼터에 다시 갔어요. 쉼터에 같이 살았던 친구가 지금 만나는 사람인데 EXIT에서 쉼터로 온 거였어요. 이 친구가 알려줘서 그때 처음 EXIT도 알게 됐어요.


집을 나온 게 제 삶에 첫 번째 터닝 포인트라면 안산에 있는 쉼터를 가고 EXIT와 엘리스를 만난 건 두 번째 터닝 포인트에요. 지금까지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미치고 도움을 주는 소중한 관계를 얻었고, 소중한 동료들을 얻은 셈이죠. 이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고 나름 잘 추스르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든지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꽤 잘 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죠. 그동안 EXIT와 엘리스에서 제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기록자 : 이호연

 

10대, 빈곤현장, 재난참사의 피해자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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