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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함걷아를 만난 아이들

[EXIT에서 만난 청소년 인터뷰] 통하는 사이가 소중하다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12. 29.
움직이는청소년센터EXIT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건강하게 자립하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주체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EXIT는 거리상담을 통해 청소년들 개개인에게 필요한 진로, 자립, 주거, 일 등 서비스를 연계하고, 거리에서 필요한 자립, 성, 취업 교육 등을 합니다. 또한, EXIT는 거리 청소년을 지원할 성인 및 또래 활동가를 조직하고, 지역 내 자원을 연결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자립팸 ‘이상한 나라’는 여자 청소년(18세 ~24세)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다양한 일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여성들은 엘리스라고 불립니다. 그동안 많은 청소년이 EXIT와 엘리스로 소중한 인연을 맺었고 21살인 곰곰도 그중에 한 명입니다. 어느 늦은 저녁에 만난 곰곰은 3시간 30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습니다. 지면의 한계 상 그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했지만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통하는 사이가 소중하다

 

 

한 발 뛰기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공부 머리는 글렀다고 생각했어요.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보다 학교 다니는 애들이 못하는 걸 해 보자 싶었어요. 고등학교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려고 미친 듯이 공부를 했죠. 학교 다닐 때 잡지도 않았던 연필을 잡으려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들도 중간에 다 도망가고 혼자 헤매면서 공부를 하는데 어쨌든 이걸 해 놔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렇게 나쁜 머리는 아닐 거야 기대는 하면서도 정말 합격할 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한 번에 시험에 합격했어요.
 

일이 년 더 일찍 졸업하는 거니까 그 시간에 뭘 할까. 쉼터를 옮겨 다니는 것도 지치고 돈을 벌어야지 생각했어요. 주위 소개를 받아서 청소년 기관인 A에 갔어요. 처음엔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일을 하면 할수록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한 기관의 대표를 존경할 수는 있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그분 말이 다 옳다고 하면서 아무리 갑과 을의 관계지만 자기네들한테 맞춰주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하는 거예요. 점점 불만이 쌓였죠. 중요한 건 일 하면서 제 인격은 어디에 있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거예요. 존중받고 있는 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이해하면서 타협할 수 있는 건데 왜 그걸 강요하는지 거기서 더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어요.


점점 화가 났지만 그만둘 생각은 안 했는데 마지막에 꼭지가 돌아서 나와 버렸죠. 제가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더는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일단 끊고 보거든요. 그래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때도 일단 출근을 안 하고 EXIT 사무실로 가서 울었어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못 해 먹겠다고 우니까 EXIT 활동가가 대신 연락을 해 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 있었죠. 전화로 엄청 싸웠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하긴 해요. 어쨌든 기관 대 기관이잖아요. 저도 지금 기관에서 일하니까 그때 미안했다는 생각이 더 드는 거예요. 제가 잘 못 하면 나중에 거기서 일하게 될 애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려서 좋게 해결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속상했어요. 사실 청소년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얼마 없는데 그중에 하나를 제가 잃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낯이 뜨겁더라고요. 언젠가 제가 아는 친구들을 거기다 보낼 수 있는데 의도치 않게 편견을 줄 수 있고, 제 소개로 온 청소년이라고 소홀히 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거예요. 워낙 상처를 많이 받아서 아직도 그 사람들 보면 얼굴을 붉히지만 제가 복지 쪽을 떠날 게 아니라면 잘 지내야겠구나 싶어서 잘해 보려고 하고 있어요.

 

 

이인삼각 three-legged race


작년 6월부터 위기 청소년을 만나서 상담하는 일을 해요. 상담이 아예 없거나 한두 명 짧게 얘길 나누는 날도 있고, 진짜 많은 날은 열 명 정도 만나는 날도 있어요. 사건을 크게 만들고 온 청소년은 불이익을 당할까 봐 대개 겁을 내요. 밖에 오래 있던 친구들은 그만큼 사건이 많은데 우리가 기관인지라 믿지 못해서 말을 안 해주는 경우도 대개 많아요. 더 이상 얘기하기 싫다고 그냥 나가버리는 친구들도 있고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한 청소년들이 오는데 저는 주로 얘기를 많이 들어요. 서로 공통의 관심사와 경험이 있고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니까 통하긴 하는데 어떤 때는 걱정을 하다못해 꼰대가 되어가나 싶기도 해요. 애들한테 꼭 너를 아껴야 한다, 어디 가서 그러면 안 된다 그런 얘길 하다 보면 꼰대 같고 저도 말이 안 통하는 그런 때가 온 건가 싶을 때도 있어요. 위기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공통적으로 자기는 혼자라고 생각하고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은 자기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저도 그랬고요.


상담을 하다 보면 어렸을 때 사무쳤던 기억들이 자꾸 오버랩 되는 거예요. 입사 초반엔 힘들어서 저도 상담을 받았어요. 이 일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거라서 저를 지켜야 하는데 그것조차 힘든 거예요. 자신들의 얘기를 듣고 해결책을 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제가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편하게 하고 싶은데 제 경험을 그 친구들한테 오픈 하는 게 힘든 거예요. ‘나도 아픔을 가지고 있고 너랑 비슷한 시기를 보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은데 그들이 절 대단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데 그걸 깨뜨릴까 봐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상담 중에 가끔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선생님도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고민이 되는 거예요. ‘나도 그런 일을 겪었지만 난 이 일이 좋아서 지금 하고 있다’고 얘길 하고 싶은데 대단하지 않은 저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 이 환상을 지켜주고 싶은 거예요. 그 친구들이 이런 환상을 갖고 저처럼 살기를 바란다면 그걸 지켜주는 것도 저의 일이지 않을까 싶어서 제 얘길 잘 안 하는데 위태로운 친구나 세상 다 산 것처럼 힘들어하는 친구들한테는 제 얘길 하죠.


주로 하는 업무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인데 그 외에도 각자 맡은 사업이 있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상담원인가 행정업무 하는 사람인가 그 딜레마가 커지더라고요. 애들을 만나고 싶어서 온 건데 애들이 다 땅으로 꺼졌나 충분히 못 만나니까 그것도 힘들어서 차라리 애들이 사는 쉼터로 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1년을 보낸 거 같아요. 그러다가 요령도 생기고 이거저거 하기 싫다거나 뭘 모른다고 얘길 할 수 없는 위치가 됐어요. 직원이 계속 나갔다 들어왔다 하니까 1년만 있어도 여기선 경력자가 되는 거예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일요일 밤마다 울부짖고……. 일이 힘들어서 많이 그만두는 거겠죠. 다들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일한다고 하니까. 저는 앞으로 삼사 년은 더 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원래 처음에도 오 년 일하면 안식월 한 달 준다기에 그거 꼭 쓰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줄다리기


제가 화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보살님이라고 불리거든요. 저는 상대방이 화를 내면 아무것도 못 했어요. 화를 내면서 대답을 하라고 하면 대답을 못 하고 입을 닫고 눈을 닫고 그냥 울었어요. 속으로는 계속 말을 하고 있는데 입 밖으론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무시한다고 생각하는지 상대방은 더 화를 내는 거죠. 저한테 화를 내는 게 아니어도 누군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울었어요. 근데 이게 사회생활하는데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작년에 유독 화가 나는 일이 많았는지 상사가 저한테 계속 화를 내는 거예요. 제가 저한테는 관대하지 못한데 남들한테는 관대한 편이라서 ‘그럴 수 있지 그럼’ 하고 넘기는 거죠. 그러다가 ‘왜 나는 남들한테 관대하고 나한테 이렇게 모질지.’ 1년 동안 그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상태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나 싶은 거예요. 요즘은 입 밖으로 “화가 나네!” 얘기도 하고 화를 조금 잘 내게 됐어요.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얘길 하는 법을 배울 기회도 경험도 없어서 사람들 앞에서 얘길 시작하면 목소리가 떨리면서 우는 소리를 냈어요. 엘리스 애들이 제가 목소리 떠는 걸 듣고 양이 한 몇 마리 가는 것 같다고 에에에~ 하면서 저를 놀렸어요. 작년까지도 그게 대개 심했어요. 근데 엘리스 집에 오니까 사람들 앞에서 얘기해야 할 때가 많더라고요. 지금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잘 못 하는데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떨지 않고 얘길 할 수 있는 정도는 돼서 최근엔 EXIT에서 자원활동가 교육도 했어요. 또 목요일에 EXIT 버스에 가면 낯설어서 애들하고 말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원활동가를 콕 집어서 먼저 다가가서 얘길 해요. 제가 이제 사회생활 좀 했다고 모르는 사람한테도 말을 걸고 있다니까요.


다른 데서는 필터링하면서 얘길 하니까 그것도 너무 지겹고 힘들고 얘길 해도 마음만 더 답답해져요. 답안지를 받는 느낌이 들어요.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처럼 다 똑같은 얘길 해요. 근데 EXIT와 엘리스에 와서 얘길 하면 속이 시원해요. 이렇게 얘길 해주는 사람들이 없어요. 얘길 하면 뭔가 서술형 문제를 받는 것 같아요. 종이랑 펜을 저한테 쥐여주는 느낌이에요. 회사는 시댁 같고 EXIT와 엘리스는 친정 같아요. 지금은 자립팸에서 독립해서 혼자 있고 얘기할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외로운데 회사 사람들한테 제 생활을 다 오픈할 수도 없고 관심사가 맞지도 않아요. 공통 관심사가 없는데 뭘 얘기하지. 그렇다고 “어제 뭐 먹었니” 그런 대화만 할 수도 없고, 입사 초반에는 그런 거에 지쳐서 은둔 생활을 하다시피 했어요. 그러다 엘리스에 가면 “개미야 이리 와봐 얘기하자.” 한번 얘길 하면 혼자 4시간도 해요. 뭘 얘기해도 저랑 가치관이 맞으니까 말이 통하는 거죠.


무슨 일이 생기면 저는 부모님보다 EXIT와 엘리스에 먼저 전화를 해요. 생각해 보면 부모님보다 저를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저의 모든 상황을 잘 이해해 줄 사람들이니까 저보다 저 자신을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가끔 저도 뭘 원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잘 모를 때가 있어요.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제 자신도 모르는 저를 이 사람들이 알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고 같이 있으면 든든해서 연락하죠. 엘리스 개미한테 전화해서 “밥 한번 먹을래, 카페 갈래, 술 한잔할래” 하면서 만나지 못한 동안 쌓아놨던 에피소드를 쭉 얘기하면서 즐거움을 얻어요. 참 좋은 사람들이에요. 저는 흰 종이인데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같은 선생님들을 만나면 제가 알록달록해지거든요. 선생님들은 힘들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오래 같이 있어 주면 좋겠어요. 저도 이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의 친구들에게 저도 이런 존재가 된다면 정말 성공한 삶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멀리뛰기


가출한 것도 저를 위해서였고, 성매매하면서 지친 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고 쉼터에 갔고, 그런 과정들이 있어서 EXIT와 엘리스 친구들을 만났고, 지금 하는 일을 할 수 있었어요. 학교를 그만둔 걸 책임지려고 검정고시를 봤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합격을 했어요. 책임지지 못할 일도 많이 했지만, 다시 지금도 천천히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힘들게 버려놓은 저의 실수, 선택을 다시 수습하고 있으니까. 저의 삶을 남한테 맡기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아쉬운 일이잖아요. 이번 생에 얼마나 살 줄 알고, 이런 삶을 또 언제 살 줄 알고 이걸 남한테 맡겨서 남의 재미나 챙겨주고 있나 싶어서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사는 건 별로예요. 선택도 제가 했고 책임도 제가 지는 거죠. 제가 하겠다고 선택한 걸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책임까지도 저한테 있는 거니까요. 과거에 했던 일이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지금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살면서 제가 들었던 말들, “거봐 내가 뭐랬어 너는 더 나빠질 줄 알았어.” 이런 말들 반박하고 사는 거 같아요. “나는 아직 더 한 짓을 하지 않았다. 난 이미 오늘 하루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사는 거 같아요.


쉽지 않았는데, 올해 8월에 자립팸 ‘이상한 나라’를 나와서 독립했어요. 단체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까 혼자 살면 어떨까 싶고 저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을 구해야 하는데 처음이니까 혼자 부동산 가는 게 무서운 거예요. 회사 휴가 전에 엘리스 개미랑 같이 이 동네를 다 쑤시고 다니면서 방을 찾았어요. 처음에 떨던 애는 온데간데없고 부동산 가서 초면에 “쫌 깎아주시면 안 돼요?” 이러고 있더라고요. 이사 와서 처음엔 잘 실감이 안 났어요. 엘리스 집에서 이년 안 되게 가족처럼 오래 살았으니까. 혼자 있으니까 쫌 우울하고 심심하긴 한데 요새는 제가 책임져야 할 것 게 늘었구나 싶어요.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 뭘 사다 놓을까, 다이소 가는 게 재밌어요. 살림하는 사람티를 팍팍 내고 다니나 싶은데 그래도 즐거워요.


최근에 대학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땐 정말 대학 갈 생각이 없었어요. 배우고 싶은 게 없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 배울 필요가 있나 대학은 무슨……. 근데 생각이 바뀐 거죠. 제가 실행력이 없어서 옆에서 하라고 부추겨야 하거든요. 원서마감이 임박해서 엘리스 개미가 부채질한 거예요. ‘해야 한다.’ 학과에 대해선 고민 안 했어요. 복지사가 되고 싶었고 청소년과 잘 통하니까 청소년 복지학과를 생각했죠. 사실 저는 쉼터에서 일하는 게 천직이라고 생각했어요. 애들하고 같이 오래 있는 거. 당직하고 일하는 게 몸은 피곤하고 힘들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지만, 청소년이랑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이니까 쉼터가 아니더라도 일시 보호소 같은 데서 일하고 싶어요. 쉼터를 오래 이용했던 기관 선생님들하고 친해서 일하는 모습을 봐 왔으니까. 이직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고 대학교 졸업을 해야 하잖아요. 기회는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좋든 나쁘든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웬만하면 오는 건 다 하자. 청소년일 때는 “이거 해 봐라. 저거 해 봐라. 내가 도와줄게.” 이런 사람이 많았어요. 근데 이젠 더 이상 떠 먹여주지 않더라고요.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니라고 느꼈어요. 타이밍이 안 맞을 수 있고 때가 아닐 때 기회가 찾아올 수 있더라고요.


그래 해보자 하면서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일이랑 공부를 같이하니까 힘들긴 하죠. 졸업하려면 3년이 더 남았으니까. 그래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제가 해야겠다는 일들은 다 했던 거 같아요. 어느 정도 완성형이 안 됐더라도 단계적으로나마 했었고 끝이 안 좋게 되더라도 일한 경험에 만족했거든요. 계속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주로 해 보고 싶거나 재미있을 것 같은 일 위주로 그동안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은 제가 계속 옮겨 다니는 걸 안 좋게 볼 수도 있지만, 그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일을 새로 배워야 하고 인간관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 쫌 힘들긴 하고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고요. 자립팸 ‘이상한 나라’의 개미가 나중에 기관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얘기했을 때 한편으론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혼자 상상하면서 ‘쟤는 요 자리에 앉히고 쟤는 저 자리에 앉히면 재밌겠네!’ 생각 했어요. 약속했어요. 5년 뒤에 만나자고. 그 정도 경력 쌓이면 그때같이 해 보자고.

 

기록자 : 이호연

 

10대, 빈곤현장, 재난참사의 피해자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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