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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함걷아를 만난 아이들

[EXIT에서 만난 청소년 인터뷰] 잃어버린 것의 자리를 채우는 것들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12. 7.
움직이는청소년센터EXIT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건강하게 자립하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주체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EXIT는 거리상담을 통해 청소년들 개개인에게 필요한 진로, 자립, 주거, 일 등 서비스를 연계하고, 거리에서 필요한 자립, 성, 취업 교육 등을 합니다. 또한, EXIT는 거리 청소년을 지원할 성인 및 또래 활동가를 조직하고, 지역 내 자원을 연결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청소년이 EXIT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중에서 세 명의 청소년을 만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5회로 연속 게재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2년 정도 EXIT에서 활동한 스무 살의 문선아씨(가명)입니다. 문선아씨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누어 나갑니다.

 

 

잃어버린 것의 자리를 채우는 것들


 

나에게 EXIT는 000이다

 

EXIT에서 청소년운영위원을 했는데 대성공이었어요. 제가 주최해서 회의도 진행하고 프로그램도 만들어서 EXIT 활동을 같이 평가한 적이 있어요. 진행한 프로그램이 어땠는지 청소년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건데 저는 애들이 “이런 거 귀찮은데 왜 해” 그럴 줄 알았어요. 되게 걱정을 했는데 애들이 너무 잘 참여해줘서……. 그렇게 응해 줄 거라고 상상도 못 했거든요. 회의하는 데도 재밌고 애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평가서도 귀찮아서 짧게 쓸 줄 알았는데 길게 많이 쓰고, 하나하나 읽어봤는데 정말 울컥했어요. 벌써 일 년이 지났는데 그때 그 기분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무대에 서는 기분 아세요? 무대에 서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엔돌핀이 솟으면서 소름 쫙 돋고 흥분되고 기분 좋거든요. 잘했다고 쌤들이 박수도 진짜 많이 쳐 줬어요. 많이 행복했어요. EXIT 활동가가 되기 위해 한 발짝 나간 거 같아서 감동적이었어요. 지금도 말하다 보니 되게 행복하네요.


‘EXIT는 나의 희망이고 미래다.’ 제가 EXIT 버스에 붙여 놓은 말이에요. 맨 밑까지 떨어진 애들은 올라오기 힘들어요. 엄마한테 창피해서 말도 못하고 어디 나가기도 싫고 저 스스로 더러워졌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좌절하고 있었는데 EXIT가 딱 내 눈앞에 나타난 거죠. 여기 다니면서 심리상담도 받고 다시 웃음도, 꿈도 찾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내 발걸음을 찾았어요. 사실 다시 상처를 묻는 게 진짜 힘들어요. 상처를 완전히 잊기는 힘들어도 다른 거로 인해 잠시 묻어둘 수는 있더라고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도와줄 사람 한두 명은 있어요. 그게 저한테는 EXIT였어요.


나를 잡는 게 되게 힘들어요. 잡히지 않고 막 돌아다니는 나를 잡는 게…… 애 가출했다고 찾아달라고 부모님이 전화하고 회의도 밤늦게까지 하고 계속 애들한테 말 걸어주고 쌤들이 되게 힘들어 보이는데 사랑이 없으면 못 할 것 같아요. 쌤들은 우리를 사랑하는 거 같아요. 우리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EXIT에서 받은 사랑을 나눠주고 싶어요.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어요. 제가 자꾸 꿈이 바뀌긴 하는데 EXIT 활동가는 꼭 해 보고 싶어요. 애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니까. 꿈을 잃고 생을 포기하고 살다가 지금은 당당해진 제가 “너희도 도움 같이 받지 않을래?” 얘길 하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자격증이 필요하면 따고 다른 노력도 해야죠. 학력 미달이라고 나를 버릴 EXIT가 아니니까. EXIT는 그냥 엄마 품 같아요. 정말 지치고 힘들면 쌤들이랑 얘기하면 좀 회복되고 EXIT 가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해서 시간이 되면 계속 가요. 저는 나이를 더 먹어도 EXIT를 계속 찾아올 거예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제가 한층 더 자랐고 다시 희망을 찾았거든요. 

 

 

마트엔 000한 손님이 있다

 

너무 하고 싶어서 지금 마트 캐셔(계산원)를 하고 있어요. 2주 정도 됐어요. 하루 6시 시간을 일하는데 삼십 분도 못 쉬어요. 밥도 안 주고 5시부터 밤 11시까지. 원래 6시에 밥을 줘야 해요. 저희 엄마도 마트에서 저랑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일하는데 밥을 주거든요. 쉬는 시간도 있대요. 제가 일하는 곳은 사장님, 사모님이 같이 있고 직원은 저 혼자에요. 시장에 있는 마트여서 물건은 엄청 많고 심지어 가격표도 안 붙여놔서 일일이 찍어서 알려줘야 하는데 계산대는 하나에요. 제가 손이 느린 편이거든요. 사람마다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는데 저는 빨리하려고 해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느린 거죠. 손님들이 한번 밀리면 쫙 밀려요. 손님들은 기다리고 이 상황에 사장님은 잔소리하고 스트레스 엄청 받아요. 화장실 갈 때 빼고는 계산대 교대를 안 해 줘서 화장실도 사모님이 있을 때만 가야 돼요. 참았다가 가는 거죠. 되게 힘들어요. 찾아보니까 노동법에 걸리더라고요. 평소 같았으면 그냥 신고하고 이제까지 일한 거 받고 끝냈을 텐데. 지금은 누가 이기나 해 보자 그러고 있어요. 당신이 나를 자를 건지 내가 먼저 그만두는지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더 큰 마트에서 좋은 대접 받고 일을 했었거든요. 학교를 그만두고 삼일 뒤에 엄마가 일하는 마트 캐셔(계산원)로 일했었는데 성격대로 하다가 잘렸죠. 엄마보다 더 늦게 점장으로 들어온 남자 직원이 있었어요. 높은 곳에 있는 물건도 꺼내고 무거운 것도 들어야 하니까 남자 직원이 필요해서 채용했어요. 엄마가 “점장님, 저것 좀 꺼내주세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나도 키 작아요. 직접 꺼내세요” 하고 손님들 앞에서 대놓고 코 풀고 점쟁이라고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땡땡이나 치고. 제가 힘든 거는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엄마가 힘든 거 되게 싫거든요. 어차피 나는 잘리면 그만이니까 욕하면서 싸웠죠. 근데 웃긴 건 점장이 먼저 잘리고 제가 잘렸어요. 원래 일을 잘 못 했어요. 한참 어린 저하고 싸우기까지 하니까 사장님이 보기에도 한심해 보였겠죠.


이번엔 제가 먼저 그만두지 않으려고 하는데 걱정되는 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거든요. 제가 뇌압이 높아서 쓰러졌었어요. 일주일 동안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었어요. 절대 안정. 스트레스를 조심해야 하는데 그래도 버티고 있어요. 이 정도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내가 느리다는 이유로 해고할 수는 없는 거니까. 포기 안 하고 있어요. 꼭 버틸 거예요. 하하하. 이 일이 힘들 때는 힘든데 나름 재미있거든요. 가격표 찍는 것도 재밌고, 찍을 때 ‘띡’ 소리도 재밌고 단골들 만나는 것도 재밌고. 처음 오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단골도 있어요. 제가 얘기하는 걸 좋아해서 단골이랑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일주일만 다녀도 단골들과는 친해지거든요.


아기들이 와서 “이거 얼마에요?” 하면서 그 작은 손에 돈을 쥐고 오는데, 그것도 좋더라고요. “이 돈 잘 가지고 가요” 하면서 거스름돈을 손에 꼭 쥐여 줘요. “우유를 일주일 만에 먹었네” 하면서 우유만 사러 오는 할머니도 있고, 무슨 담배 피우는지 기억할 정도로 담배만 사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담배 하나 줘요.” 이러면 “아, 이거죠” 하면서 드리고 그런 게 재미있더라고요. 마트에서 기억나는 사람이 은근 많아요. 거의 다 얼굴을 기억해요. 시각 장애인 한 분이 계세요. 그분이 와서 항상 사시는 게 육개장이랑 담배. 오셔서 “담배 주세요” 하면 항상 피는 담배를 골라서 손에 쥐어 드리고 육개장도 찾아드리고. 바쁠 때는 힘든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손님은 못 찾으시니까. 남자 손님인데 되게 밝게 대답하시는 분도 계세요. 거의 맨날 와요. 항상 모자를 쓰고 오시는 분인데 “감사함니당, ”안녕히 계세용” 하면서 가시는 분이 계세요. 외국인도 있어요. 키 큰 남자분이랑 되게 예쁜 외국인이 있어요. 그 두 분은 거의 매일 와서 우유랑 빵을 사 가더라고요 밥을 먹어야 하는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빵이 외국에서는 주식이긴 하지만……. 그리고 포인트 5220이 있어요. 머리카락이 많지 않은 아저씨인데 제가 5,520인 줄 알고 못 알아듣고 “네? 네?” 그러니까 한번은 소리를 질렀어요. 오둘둘공이라고~ 그다음부터 이 분을 보면 “오둘둘공 맞으세요?” 하면 ”이제 아시네요” 하시죠. 어제는 이십 년 넘게 마트에 다녔는데 최근에 생긴 포인트 제도를 모르는 분이 있어서 포인트 카드를 만들어드렸어요. 중국인 단골들도 많아요. 중국말로 막 얘기하다가 “봉투 필요하세요?” 물어보면 “아니에요” 하면 제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러면 그분이 “그렇겠죠.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농담으로 받아주더라고요.

 

 

하고 싶은 얘기는 000이다


과거를 말 못 할 정도로 창피한 적이 있었어요. 나는 불행한 아이다, 힘든 일만 겪어서 나는 힘들다. 자책도 하고 힘들다는 얘길 많이 했어요. 학교 다닐 때 왕따 당한 게 너무 창피했어요. 지금은 내 옆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과거에 왕따였다니……. 다른 사람에게 ‘그 사건’이 알려 질까 봐 신고를 안 하려고 했었어요. 했던 얘길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과거를 들추어내야 하니까. 근데 내 발로 신고를 직접 하러 갔어요. 이제는 과거에 살았던 삶을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창피하고 두려운 마음, 불행한 마음들을 이겨냈으니까. 뿌듯해요.


EXIT 덕분에 이렇게 잘할 수 있었고 이겨낼 수 있었고 저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EXIT에서 소개해줘서 인터뷰하자고 하면 웬만하면 하는 편이에요. 몇 번 인터뷰했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만 주로 물어보더라고요. 사람들에겐 그 사건이 중요한가 봐요. 제일 궁금하고. 근데 저한테는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제가 그걸 버티고 이겨내고 있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오늘은 얘기하면서 되게 편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한 것 같아서.

 

기록자 : 이호연

 

10대, 빈곤현장, 재난참사의 피해자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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