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청소년센터EXIT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건강하게 자립하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주체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EXIT는 거리상담을 통해 청소년들 개개인에게 필요한 진로, 자립, 주거, 일 등 서비스를 연계하고, 거리에서 필요한 자립, 성, 취업 교육 등을 합니다. 또한, EXIT는 거리 청소년을 지원할 성인 및 또래 활동가를 조직하고, 지역 내 자원을 연결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청소년이 EXIT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중에서 세 명의 청소년을 만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5회로 연속 게재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2년 정도 EXIT에서 활동한 스무 살의 문선아씨(가명)입니다. 문선아씨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누어 나갑니다.

 

 

사람을 잃는 것


인터뷰에 대한 나쁜 기억

 

EXIT에서 믿을 만하니까 연결해 준 거겠지 생각하고 인터뷰하러 나왔어요. 사실 인터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거든요. 그 뒤로 녹음하는 걸 꺼려요. 000이라고 꽤 유명한 잡지를 내는 곳인데 가출체험 기사를 쓴다고 찾아온 일이 있었어요. 체험이다 보니까 제가 가출했을 때랑 똑같이 하는 거였어요. 집 밖에서 밤을 새우는 걸 그대로 하는데 할 일이 없어서 가족 이야기를 했거든요. 근데 그걸 녹음해서 그대로 기사를 쓴 거예요. 가족 얘기는 기사로 쓰겠다는 말도 없었고, 기사에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얘기도 했었는데……. 엄마 기사가 사실과 다르게 나온 거예요. 엄마가 노래방 카운터에서 일을 한다고 말했는데 노래방 도우미로 기사가 난 거예요. 그때 혼자 인터뷰하기 어려워하니까 친구들이 같이 있어 줬거든요. 친구들이 한마디 뚝 던진 것도 다 기사로 써 버린 거예요.


기사를 본 친구들이 저한테 욕을 많이 했어요. 기사에 제 뒷모습 사진이 그대로 나와서 친구들이 보고 “선아다” 딱 맞춘 거죠. “너 가출청소년이냐고?” 그리고 전에 제가 친구들한테 엄마 얘길 했었거든요. 우리 엄마는 내 동생들이랑 나를 키우느라 쓰리 잡을 뛴다. 보험설계사도 하고 마트에서도 일하고 노래방에서 카운터 보는 일도 한다고요. 근데 기사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나오니까 친구들이 ‘거짓말한 거냐’고 따지는 거죠. 저는 엄마가 욕먹는 게 싫어요. 사람들이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니네는 애비 애미도 없냐.’ ‘니네 애미가 그렇게 가르쳤냐.’ 저는 다른 말은 참아도 이런 말은 못 참겠어요. 우리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키웠고 자랑스러운 엄마고 내가 엇나간 건데 사람들이 엄마를 욕하는 게 너무 싫거든요. 상처를 많이 받아서 신고하려고 했어요. 기사가 나온 지 한 달이 지나고 신고를 하고 고소를 하려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저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던 거죠.

 

 

추억이 그립다

 

제가 친구를 잃는 걸 싫어했어요. 근데 그때 기사를 보고 저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던 친구들이랑 결국 헤어졌어요. 제 말을 안 믿는 애들이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요. 지금은 극소수, 몇 명만 같이 놀아요. 음……. 사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어요. 춤으로 먹고살 거다 할 정도로 제가 춤을 좋아해요. 옛날에 철이 없을 때 제 꿈이 노숙자가 되어도 춤을 추는 거였어요. 그때까지도 해도 SBS 스타킹 프로그램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접수하러 갔다가 엄마한테 걸려서 끌려오고 그런 일도 있었는데……. 5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전따’(전교생이 따돌림)가 됐어요. 못생기고 뚱뚱해서 그랬는지 어쨌든지 “쟤가 문선아래”하면서 저를 바이러스처럼 취급하는 거죠.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웃기는데 그때는 되게 아팠어요. 지우개를 주어서 내밀면 더럽다고 버리라고 하고. 저의 친절이 화를 부를 정도로 애들이 저를 싫어했어요. 친하게 생각했던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자기들도 왕따 당할까 봐 저를 멀리했어요. 지금도 걔네랑 마주치기 싫어요. 전에 살았던 그 동네는 지금도 안 가요. 되게 충격이었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는 완전 범생이처럼 머리 하나로 찍 묶고 안 꾸미고 공부는 안 하지만 개근상 받을 정도로 학교를 열심히 다녔어요. 근데 애들이 지나가는 저한테 책을 던져서 이마가 찢어지고 발을 걸어서 턱을 많이 다치고 병원에 실려 가고. 그 정도로 괴롭힘을 많이 당하니까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힘들더라구요. 예쁜 애들도 싫어하잖아요. 같은 반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꼬리 쳤다고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걔랑 같이 다녔어요.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생각에 교실에는 들어가기 싫으니까 점심시간 때까지 학교 밖에 있거나 학교 안을 쑤시고 다녔어요. 선생님한테 “저 학교 왔어요”, “교실 들어올 거니?”, “아니요 싫어요.” 화장실에 가 있고 상담실도 가 있고 교무실에서 선생님이랑 수다 떨고 있고 아니면 학교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거죠. 제가 밖으로 돌아다니니까 선생님이 잡으러 오고 선생님이 계속 봐 주셔서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었어요. 중학교 내신이 안 좋아서 겨우 턱걸이로 그 학교에 들어갔는데 적응을 못 해서 1학년 2학기 때 학교를 그만뒀어요.


저한테 학교는 감옥 같았어요. 제가 틀에 박혀 있는 걸 싫어해서 그런 건지.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는 아쉬운 추억 같아요. 집에 돈이 별로 없어서 애들이랑 수련회도 같이 못 가고 추억이 별로 없어요. 관객으로만 축제에 참여하고 수련회도 못 가서 졸업 앨범을 보면, 교복 입고 형식적으로 찍은 사진 한 장뿐이에요. 졸업앨범 뒤쪽에 보면 애들이랑 놀러 가서 찍은 사진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제 얼굴은 없어요. 게다가 고등학교도 중간에 그만뒀으니까 학교에 대한 추억이 없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수련회도 가보고 싶고, 좀 더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아볼 걸, 덜 상처 받을 걸, 더 버텨 볼 걸, 포기하지 말걸….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을 해서 더 외로웠어요. 나한테는 엄마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데 그땐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학교 끝나고 같이 놀아줄 친구 하나 못 사귀었으니까. 지금이니까 버텨 볼 걸 생각을 하지만 사실 그때는 되게 힘들었어요. 아마 더 힘든 걸 겪고 나니까 학교가 차라리 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겠죠. 학교에 있었으면 ‘그 사건’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무표정

 

제가 원래 활발하고 말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근데 사건이 있고 엄마한테 말도 못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출을 했는데 그때 그 사건이 있었어요.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와서 놀이터에서 만났던 쌍둥이 여자애들, 나보다 두 살 어린 여자애, 그리고 동갑인 여자애가 있었어요. 매일 같이 놀았어요. 마음도 잘 맞고 상황도 비슷했고 되게 잘 맞았던 애들이에요. 서로 많이 의지했었고, 한때는 가족처럼 지냈어요. 같이 가출했을 때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붙어 있고 서로 떨어지기 싫었던 애들이거든요. 그랬던 애들이 돈 때문에 눈이 멀어서 저를 배신했어요. 친한 친구한테 당한 배신이었어요. 3개월을 그 애들한테 붙잡혀 있었어요. 집에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 그 애들이 우리 부모님도 알고 우리 집도 알고 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 사건으로 온몸에 멍은 들고, 우울증도 왔고, 자살 시도도 했어요. 상처도 많이 받아서 지치고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EXIT를 처음 알게 됐어요.


EXIT에 처음 왔는데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저는 우울한 상태니까 표정도 안 좋고……. 무표정, 애들이 웃어도 제대로 웃지도 않고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얘기를 못 했어요. 아픔이 있다는 걸 얘길 못했어요. 그러다가 EXIT에서 여기저기 치료를 받으러 다녔어요. 아픔이 있어서 더 어른이 됐고, 그 아픔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더 조심하게 됐고, 애들도 가려서 만나게 됐어요. 사실 그 애들한테 풀려난 후에도 같이 다녔거든요. 착한 애들인데 돈 때문에 그런 거겠지 돈만 아니었어도 우리는 이렇게 안 됐겠지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 애들이 재판을 받아서 처벌을 받고 나왔고 주범은 소년원에 2년 갔다 왔어요. 근데 나와서 또 사고를 쳐서 다시 들어갔어요. 그런 걸 보니까 제가 정신을 차린 거죠. 아 나쁜 애들이구나, 어쨌든 나한테 나쁜 애들이다.


지금은 사람 잃는 게 별로 안 무서워요. 그래도 한 명쯤은 남아 있으니까.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유일하게 내 옆에 같이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엄마가 지어준 별명인데 ‘껌딱지’. 제 옆에 그 친구가 있으니까 다른 애들은 가면 가는구나 오면 오는구나 별로 신경을 안 써요. 5년을 계속 함께했어요. 지금은 가족이 되었어요.

 

기록자 : 이호연

 

10대, 빈곤현장, 재난참사의 피해자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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