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키즈스트라는 모든 아이들의 희망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란 뜻으로 문화예술교육의 기회가 적은 어린이 ∙ 청소년에게 악기지원, 악기교육, 합주, 관악단 활동 등으로 건강한 성장을 돕는 함께걷는아이들의 음악 사업입니다. 2009년 '베토벤바이러스를 찾아라' 음악사업으로 시작한 올키즈스트라는 2011년 상위관악단을 창단하고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습니다. 


8년의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올키즈스트라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중에서 상위관악단에서 활동하는 세 사람을 만나 음악과 함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5회로 연속 게재될 예정입니다. 윤지원씨 다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은 올키즈스트라에서 트럼본을 연주하는 스물한 살 청년 이상민씨(가명) 입니다.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누어 나갑니다.


-기록자 말-  

 

 

사람 사이로 음악이 흐른다_ 첫 번째 이야기

 

[일러스트: 김다희]

 

즐거워서 악기 연주를 하지만 더 좋은 점은 올키즈스트라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8년 정도 했는데 가족처럼 정이 많이 들었죠. 제가 먼저 동생들한테 다가가서 장난치고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오래 같이 있다 보니까 좀 더 챙겨주고 싶어요. 동생들도 저한테 친하게 다가와 줬으면 좋겠고요. 오래 계속 하고 싶죠. 악기 선생님이 "너는 장가가기 전까지 해야지" 그러는데 진짜 장가가기 전까지 하고 싶어요. 장가가서도 시간이 되면 하고 싶고 오래 오래 하고 싶어요. 여기 아이들도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사람을 알게 된 지역아동센터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지역아동센터를 갔는데 되게 힘들었어요. 센터가 생긴 지 1, 2년 정도 됐었는데 원래 다니던 애들이 있었고 중간에 들어간 애들이 있었어요. 저와 같은 학년 애들이 제일 많았는데 저는 중간에 들어간 상황이었어요. 이건 부모님도 모르는 얘기지만 제가 갔을 때 같은 학년 애들 사이에 텃세가 있었어요. 어릴 때 특히 남자애들은 자존심 내세우면서 일부러 싸움도 붙이고 하잖아요. 그때 제가 완벽한 왕따였어요. 센터에 가기 싫어서 간 척 하고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 읽다가 집에 시간 맞춰 가기도 하고..... 친구들하고 노래방을 미친 듯이 매일 매일 갔어요. 노래방 다니면서 2주 정도 센터를 빠졌던 거 같아요. 센터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솔직하게 말 할 수 없었어요. 아빠한테는 무서워서 센터 안 가고 싶다고 말을 못했어요. 엄마는 밥을 챙겨줄 수 없으니까 무조건 저를 센터에 보내야 하는 입장인거죠.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별거를 했다가 이혼을 하셔서 저는 아빠랑 쭉 살았어요. 2년 정도 엄마랑 연락을 안 하다가 5학년 때 다시 연락이 돼서 만나면서 지냈거든요. 어렸을 때는 집 나간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어요. 근데 그건 아빠, 엄마 관계니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 원망할 일이 아니구나. 부모님이 헤어지든 아니든 환경 탓을 하지 말자. 내가 잘 하면 되는 거니까. 이런 환경에서 왜 자식을 자라게 했냐는 그런 원망은 이제 하나도 없어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빠도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아빠가 저희만 보고 사셨거든요.


부모님이 좋으시고 자식들 생각 많이 하시니까 힘들게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때 경제적으로는 진짜 힘들었어요. 우리 집에 돈이 없다는 걸 느낀 게 중학교 때 교복을 살 돈이 없는 거예요. 수학여행 간다, 어딜 간다 학교에 돈 내야 할 때 집이 힘들다는 걸 느꼈던 거 같아요. 아빠가 어떻게 해서라도 다 보내줘서 다 갔던 거 같지만 학교에 돈 내야 할 때 신경이 쓰였죠. 일본에 사셨던 친할머니가 저희 집 상황을 모르다가 한국에 오셔서 보시고 도움을 주셔서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편해졌어요. 


아, 센터에 가서 왕따를 당했다고 했잖아요. 그쯤 센터장님이 새로 오셨거든요. "왜 안 와" 그러면서 야단을 칠 수도 있는데 그 선생님은 눈높이를 낮춰 주셨어요. 저한테 말을 걸려고 하셨어요. 제가 힘들어한다는 걸 이해해 주시고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셨어요. 센터에 다시 다니면서 저를 많이 괴롭힌 애들이 지금 제일 친한 애들이 됐어요. 저를 괴롭혔던 형도 지금 말도 안 되게 친해졌으니까. 옛날에 있었던 일들 서로 얼굴 붉히기 싫으니까 한 번도 얘기를 하진 않았어요. 서로 민망하잖아요.


새로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센터를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하고 싶은 걸 하게 하는 선생님이었어요. 애들이 하기 싫어하는 이유 물어보시고, 이해해 주시고. 눈높이를 낮춰서 애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시는 편이었어요. 지역아동센터 스케줄 새로 짤 때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뭐 하고 싶어?" 애들이 축구하고 싶다, 뭐하고 싶다 말을 하잖아요. 그것만 하면 돼요. 공부도 수학, 국어, 영어 이렇게 써 놓고 하고 싶은 사람 신청하라고 하세요. 근데 신청 안 하면 애들이 못 배겨요. 아무것도 안 하면 자기 혼자 가만히 뭐 하겠어요. 안 하는 애들한테도 나중에 "한 번 해 볼래?" 물어보시거든요. 근데 한번쯤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하면 재미있을 수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영리하신 거예요.


그 전에 센터장님도 사실 되게 좋은 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을 못하셔서, 표현을 못 하셔서 애들이 안 오면 뭐라 그래야 할지 모르는, 어려워하셨던 거 같아요. 그 선생님이 가까이 사셔서 몇 번 밥도 먹었는데 얘기해 보면 진짜 밝은 성격이고 애들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요. 근데 애들이 실수를 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셨던 거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안 보였어요. 지금 와서 만나니까 그런 게 보이는 거죠. 


지역아동센터를 다니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사람이 모이면 작은 사회가 되잖아요. 여기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할까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냥 뭣 모르고 놀다가 센터에 들어가서 형, 선생님, 친구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가 뭔지 알게 됐어요. 지역아동센터가 단체생활의 시작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단체생활 하다 보면 당연히 하기 싫은 것도 있죠. 저는 손으로 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십자수, 뜨개질 이런 거. 근데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직업도 분명 거기엔 하기 싫은 일이 있잖아요. 하기 싫은 걸 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것도 경험이 되는 거 같아요. 하기 싫은 걸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하기 싫은걸 끝내야지 다른 걸 할 수 있어 이런 거요. 제가 조리학과에 다니잖아요? 요리를 하면 칼 가는 일이 있어요. 힘만 들고 진짜 하기 싫거든요. 근데 제가 좋아하는 칼질을 하려면 칼 가는 걸해야 하거든요. 그런 걸 알게 된 거 같아요. 스무 살이 돼서 달라진 건 제가 공부를 하기 싫어서 도망가서 놀면 선생님한테 혼났는데 이제는 제가 싫어서 안 하면 온전히 그게 제 책임이 되는 느낌, 그런 게 달라졌어요.

 

지역아동센터와 올키즈스트라의 닮은꼴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올키즈스트라에서도 인간관계를 배웠어요. 지금은 여기서 제가 제일 나이가 많지만 형, 누나 있을 때는 같이 지내면서 선배들, 선생님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손윗사람들 만나는 법을 배웠어요. 악기를 배운 것도 있지만 사람을 만나서 배운 거에 더 만족하고 있어요.  

   
중학교 때 지역아동센터에서 연결해 줘서 올키즈스트라를 시작했어요. '악기들 중에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서 처음엔 색소폰이 하고 싶어서 신청했는데 나중에 트럼본을 하게 됐어요. 아마 트럼본은 팔이 길어야 할 수 있는 거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신청은 했지만 처음에는 다 하기 싫었어요. 애들이 같이 한다고 하니까 저도 한 거죠. 몇 개월 하다가 그만뒀어요. 하기 싫어서요. 1년 단위로 프로그램을 하고 끝나면 두 달인가 세 달인가 쉬고 다시 오디션을 해서 시작을 하거든요. 첫 해에는 하다가 그만두고 그 다음해에 오디션 다시 봐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왜 그만두지 않고 다시 오디션을 봤냐고요?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센터장님한테 설득 당해서 초등학교 동생들이 간 악기 캠프에 따라 간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같이 가서 초등학교 애들 잘 지켜보고 챙겨주라고 해서 간 캠프였는데...... 그만 둔 상태여서 악기도 안 들고 갔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이게 다 영리한 저희 센터장님 때문이랍니다. 

 

 

기록자 : 이호연

 

10대, 빈곤현장, 재난참사의 피해자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