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보너스’를 향한 연말정산 시즌이다.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연말정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 이번엔 ‘얼마나 돌려받을까’하는 기대가 담겨 있다.
올해에 환급액이 많기를 바라는가? 솔직히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올해부턴 연말정산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 바꾸자. 연말정산이 뜻밖의 선물처럼 보이지만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대목이 존재한다.
# 연말정산은 보너스?
과연 연말정산이 보너스일까? 세금은 이왕 낸 것인데 나중에 일부라도 돌려받으니 보너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엄격히 따지면, 환급은 자신이 원래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이 낸 금액을 나중에 돌려받는 것뿐이다. 정부가 추가 납부세액을 돌려주면서 이자를 쳐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환급이 좋다고? 현행 연말정산 제도에서 ‘13월의 보너스’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 매달 내는 원천납부액을 올리면 된다.
국세청은 매년 소득과 가구원 수에 따라 원천 납부할 세금(간이세액)을 공지한다. 회사는 이 간이세액표에 제시된 금액을 노동자의 월급에서 원천징수해 국세청에 전달한다. 근래 원천납부액의 크기를 노동자가 정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노동자가 원하는 경우 국세청이 제시한 간이세액의 80, 100, 120%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2015년 ‘연말정산 사태’ 때 이전보다 환급금액이 줄어들거나 토해내는 금액이 많아졌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국세청이 마련한 제도이다.
당연히 원천 납부액을 120%로 선택하면 미리 더 냈으니 연말정산에서 돌려받는 금액도 많다. 만약 80%를 선택하면 대부분 연말정산 때 세금을 추가 납부할 것이다. 환금액이 많다고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조삼모사 속담의 주인공이 돼 버릴 수 있으니.
# 소득세 구조, 미리 내고 연말에 정산한다.
왜 이 복잡하고 성가신 연말정산을 매년 해야 하는 걸까? 소득세 납부구조의 특징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가가치세에는 연말정산 절차가 없다. 시민들이 물건값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납부하면 가게 주인이 이를 모아 국세청에 전달하는 거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다.
반면 근로소득세에서는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에는 최종 내야 할 세금액을 알 수 없다. 소득별 세율이 정해져 있지만, 실제 소득세액은 가계 지출에서 발생하는 일부 비용, 즉 공제 항목을 적용한 후 결정된다. 이 공제 금액은 소득 발생 시점에는 알 수가 없다. ‘연말’이 돼서야 올해 아이가 출생했는지, 의료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 정리가 된다. 가계지출이 완료된 연말을 기준으로 세금을 확정하는 연말정산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근로소득세의 계산 과정은 대략 이렇다. 우선 국세청이 매달 미리 소득과 가구원 수를 고려해 설정한 간이세액을 기준으로 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소득이 월 300만 원인 3인 가구 직장 동료가 있다면 두 사람의 원천징수액은 약 3만 원으로 같다. (-> 국세청 간이세액 자동계산 http://www.nts.go.kr/cal/cal_06.asp).
반면 두 가정의 지출구조에 따라 공제 규모는 다르다. 만약 의료비, 교육비 지출이 많으면 그만큼 공제도 많고 최종 내야 할 세금(‘결정세액’이라 부른다)은 적아진다. 이렇게 소득세는 처음에 원천납부한 세금과 연말정산을 거쳐 최종 확정된 결정세액을 비교해 환급받거나 추가 납부해야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다. 작년에 연말정산을 신청한 사람 100명 중 67명은 환급받았고 17명은 세금을 추가 납부했다(나머지 16명은 그대로).
# 소득세의 광범위한 공제
세금을 주제로 강의를 할 때, 수강생들에게 묻는다. “노동자는 버는 만큼 모두 세금을 내고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그렇다’ 대답한다. 자영자는 자신의 소득을 감추지만, 노동자는 유리 지갑처럼 투명하게 노출돼 있어 세금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근거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대답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일수도 있다. 노동자 번 소득 중에서 ‘공제’ 금액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연말정산을 해 본 사람을 알겠지만, 우리나라 소득세를 보면, 근로소득공제, 인적공제, 연금보험료공제, 특별소득공제, 세액공제 등 참으로 공제 항목이 많다. 작년 2016년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한 근로소득자는 1774만 명, 금액은 약 600조 원이다. 이 중 47%인 280조 원이 소득공제로 인정돼 과세대상에서 빠졌다. 실제 받은 월급에서 53%인 320조 원에만 소득세율이 적용돼 43.7조 원이 소득세가 산출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예 세금을 감면해주는 ‘세액공제’가 뒤따른다. 산출세액에서 12.8조 원이 감면돼 최종 내야 할 세금은 30.9조 원으로 줄었다. 이 세액공제까지 고려해 대략 계산하면 총 근로소득 600조 원 중 실제 세금을 소득 비중은 230조 원, 약 40%에 불과하다. 노동자는 받은 월급 중 40%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는 셈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수입 규모는 OECD 국가 중에서 상당히 작다. 2016년 한국의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이 4.6%이다. OECD 평균 8.4%(2015년)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왜 이리 빈약할까?
소득세율이 낮은가? 그렇지 않다. 2016년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은 41.8%(국세 38% + 지방소득세 3.8%)로 OECD 국가 평균은 43.3%와 엇비슷하다(게다가 한국은 2018년에 최고세율이 46.2%로 인상).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우리나라 소득세율이 낮지 않음에도 소득세 수입이 적은 핵심 이유는 광범위한 공제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이 진행되지만, 우리나라처럼 공제 규모가 크지는 않다.
# 공제가 늘어난 이유
우리나라에서 왜 이리 공제가 많을까? 우선 자영자와의 형평성이다. 자영자의 소득파악이 미비한 상태에서 소득의 자영자와 노동자가 내는 세금을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동자에게 상당한 공제를 제공했다. 자영자는 스스로 지출을 공제해 절세한다는 추정에 따른 정책이다(근래 자영자 소득파악은 상당히 강화된 편이다).
빈약한 복지를 대신해 공제가 늘어나기도 했다. 스웨덴에선 의료비 공제가 없다. 사실상 무상의료가 제공되니 의료비를 지출할 이유가 없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빈약한 복지의 대체 급여 성격으로 공제가 등장했다. 의료복지, 교육복지가 빈약하니 각자 의료비, 교육비를 지출하고 사후적으로 소득에서 일부 공제해 세금 감면을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박근혜 정부에서 일부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민생대책이 필요할 때면 정치적 판단에 따라, ‘비과세 저축’, ‘감면 혜택’ 등 다양한 세금 공제 정책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근로소득세에서 오늘과 같은 복잡하고 광범위한 공제체계가 생겨났다.
# 공제의 역진성
비록 복잡하지만, 공제가 시민들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거니 괜찮은 거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물론 공제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다. 단, 계층별로 다르다. 예를 들어, 소득공제는 소득에서 과세대상 규모를 줄여주는 것이므로 이것이 주는 감세 효과는 고소득층일수록 크다. 같은 100만 원 소득공제라도 6% 세율이 적용되는 서민은 6만 원, 40% 세율이 적용되는 고소득자는 40만 원의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 바로 ‘공제의 역진성’이다.
우리나라는 ‘공제의 나라’이다. 어느 나라보다 공제 규모가 크고, 그만큼 공제로 인한 재정의 역진성도 크다. 반면 스웨덴은 소득세율이 32%~57%로서 우리나라 6.6~46.4%보다 높다. 그런데도 공제 규모는 작아 버는 소득 대부분에 세금이 부과된다. 납세자 입장에서 못마땅한 일이 아니다. 이것을 재원으로 복지가 제공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 모델 국가의 토대로 세금이 역할을 한다.
# ‘공제의 나라’에서 ‘복지의 나라’로
대한민국에도 복지국가 꿈이 커가고 있다. 이에 발맞춰 세금에 대한 시민의 인식에도 변화가 요청된다. 연말정산이 복잡한 이유는 공제 항목이 많기 때문이고, 이 공제는 모두에게 세금 혜택을 주지만 역진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를 바라는 시민의 선택은?
두 유형의 나라가 있다. 주요 가계 지출을 사적으로 감당하면서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 혜택이 큰 공제의 나라에 살 것인가? 모두가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고 가계의 기본 지출을 나라가 책임지는 복지의 나라에 살 것인가? 올해 연말정산 신고를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볼 주제이다.
오 건 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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