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장애인 정책 공약 첫 번째는 바로 ‘장애등급제 폐지’였다. 그리고 지난 3월 5일 문재인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방향’을 발표하였으며, ’19년 7월을 시작으로 현행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842일 동안 광화문광장 지하도에서 농성하며 장애인들이 요구해왔던 ‘장애등급제 폐지’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장애등급제 폐지’인데 왜 다르다고 하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장애등급제’의 역사와 그 본질을 우선 살펴보아야 한다.
#차별의 역사, ‘장애등급제’
장애등급제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UN이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한 1981년, 한국정부는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하였고 이듬해부터 ‘장애인등록제도’를 시범 실시하였다. 그리고 1989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을 개정하여 「장애인복지법」을 제정함으로서 당시 일본과 같은 방식의 ‘의학적 손상’ 정도를 기준으로 한 ‘장애등급제’가 만들어지고 도입되었다.
‘장애인등록제도’와 함께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복지에 접근하기 위한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였다. ‘당연’하게도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장애인’이 아니고, 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등급을 ‘부여받느냐’에 따라 서비스 수급여부와 그 양이 결정된다. 등급기준을 충족시켜 서비스를 받으면 다행이겠지만, 등급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경우 ‘장애등급제’는 마치 ‘검문소’나 다름없다. 보다 정확하게는 장애인의 삶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생사의 저울’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장애등급제’는 왜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일까? 국제사회와 비교했을 때 지금도 한국의 장애인복지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당시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보장 제도나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정한 소득보장과 함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대인서비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 정부의 장애인정책은 ‘전기료 할인’, ‘공원입장료 할인’등 일부 공공·민간 영역의 ‘감면 할인제도’만이 전부였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의학적 손상 정도에 따라 등록이 되고 등급을 받으면, 각종 ‘감면 할인 혜택’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니 큰 문제의식을 갖지 못 했을 것이다. 또한 정부의 입장에서는 장애인 개개인의 환경이나 욕구를 파악할 필요 없이, 오로지 의학적 손상 정도에 따라 획일적으로 제도를 적용하면 되니 행정적으로 너무나 편리했을 것이다. 거기에 기준의 엄격함까지 더해지면 등록하는 장애인도, 등급기준에 부합되는 장애인 수도 일정 수준의 통제가 가능하니 ‘예산 절감’의 효과까지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장애등급제’는 하나의 제도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30여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절부터 이어져온 장애인이 차별받아왔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장애등급제 폐지’는 숫자 등급이라는 낙인 아래 가두어진 장애인의 권리를 어떻게 확장시킬 것이며, 장애인의 삶의 수준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절대로 무관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와 1842일 동안 장애계가 외쳐왔던 ‘장애등급제 폐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전제조건이자 원칙은 ‘예산 확대’
‘장애등급제’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서비스와 직접적 소득보장 제도가 확대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이 시기는 비로소 ‘장애등급제’의 본질이 드러나고 장애인에게 체감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다. 2005년 경남 함안의 한 중증장애인이 수도관이 터져 동사한 사건을 계기로 2006년부터 중증장애인들의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이 시작되었으며 그 이듬해부터 활동보조서비스가 시행되었다. 그리고 2010년 「장애인연금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 소득보장제도가 형식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2018년 현재 보건복지부 장애인 정책 예산의 1, 2위를 차지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장애인연금제도’ 시행과 공교롭게 맞물려 시행된 것이 바로 ‘장애등급심사’이다. ‘장애등급심사’는 일선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부여한 장애등급이 타당한지에 대한 심사를 하는 것이 그 취지이며, 만일 ‘장애등급제’가 옳은 것이라면 이것은 합리적인 개선책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사회서비스 및 소득보장 정책 도입과 맞물려 시행했다는 것은 결국 더욱 엄격한 심사를 통한 ‘예산 절감’ 이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는 현실로 나타났는데, 2007년부터 시범사업 3년 동안 약 9만여 건의 심사 중 단 0.4%만이 ‘등급 상향’이 되었고, 무려 35%에 달하는 장애인이 기존 등급보다 하향조치 되었다. 그 결과는 2001년 약 113만명의 등록장애인수가 장애등급심사의 본격적 시행 전인 2010년까지 약 250만명으로 연 평균 15만명씩 꾸준히 증가하였지만, 2011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등록장애인수는 2010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OECD국가들의 전체 국민 대비 장애인인구 평균 출현율(13.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약 5%)이다.
당시 ‘장애등급심사’라는 ‘장애등급제’ 강화 조치는 장애인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실제 피해를 입은 사례도 많았으며, 등급제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린 경우도 있었다. 27년간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생활하다 2013년 10월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한 故송국현씨는 혼자서 식사와 보행이 어려운 장애인이었다. 의사소통에도 타인의 지원이 필요했던 그는 시설 입소 전 장애등급 3급 판정을 받았었고, 시설에서 나와 등급 재심사를 요청했다. 재심사를 요청한 이유는 바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 위함이었으며 당시 신청자격은 장애등급 2급까지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등급재심사 결과는 3급이었고, 이의신청을 하였지만 역시 결과는 3급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故송국현씨가 살던 자립홈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3도 전신화상을 입은 그는 나흘 뒤 운명을 달리 하였다.
‘장애등급제’의 목적이 애초부터 장애인을 공포에 떨게 하고 예산을 절감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등급제’의 효과와 그 결과는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의 근본적 원인은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OECD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치는 장애인복지예산 수준에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예산을 확대시키려는 노력 없이 단순히 ‘등급제’만 폐지한다면, 과연 장애인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지난 3월 5일 정부 발표자료에는 ‘장애등급제 폐지 후 달라지는 모습’이라는 참고자료를 통해 정부 계획대로 추진되었을 시 장애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제시하였다. 뇌병변장애 4급인 A씨가 현재는 등급제한으로 활동지원제도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19년 7월 개편 이후에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예시가 있다. 과연 그러할까? 현재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 6명 중 1명꼴(약 7만명)로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서비스 수급을 받고 있는 장애인의 단 5% 정도만이 3급 장애인인 현 상황에서 과연 4급 장애인 A씨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예산 수준이 획기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문재인정부의 계획에는 바로 전반적인 장애인복지예산의 확대에 대한 목표치가 제시되어 있지 않기에, 이것을 두고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예산은 그대로 한정지은채 ‘숫자 등급’을 ‘장애 정도’로 껍데기만 바꾸는 것은 결코 ‘장애등급제 폐지’가 아니다.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개개인의 환경과 욕구를 고려하지 않고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그 효과를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기준을 무엇으로 바꾸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서비스(제도)가 필요한 사람에게 권리로서 보장될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예산 확대가 전제조건이자 필수요소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마중물
‘장애등급제 폐지’는 이미 국제사회에서도 제도 개선을 권고한 사항이며, 2008년 한국정부도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의 철학과 가치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2014년 UN은 의료적 관점의 「장애인복지법」과 ‘장애등급제’를 폐지 또는 개선할 것을 이미 권고하였다. 또한 2015년 UN총회에서는 향후 국제사회의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를 수립하는 데 있어 ‘누구도 배제되지 않을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바 있다.
이 모든 것이 향하는 방향은 너무나 분명하다. 의학적 손상을 이유로 장애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차별의 문제로 바라보고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를 이유로 골방이나 시설에서 숨죽여 살아가고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받으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그 자체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계기로 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며, 문재인정부가 지향하는 ‘장애인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치는 비장애인과의 삶의 격차를 완화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 수준은 최소한 국제사회의 평균은 되어야 할 것이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펌프 위에 붓는 물인 ‘마중물’과 같이,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시작이 되어야 한다.
조현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조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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