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내 삶에 관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들어가며: 한국에서 30대 대통령이 불가능한 까닭
작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끝나고 2차 투표를 앞두고 있던 2017년 5월, France 24라는 뉴스 채널을 보다가 유력 후보인 마크롱의 나이가 39세이며, 프랑스에서는 18세 이상 시민 누구나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는 설명이 문득 내 신경을 건드렸다. “어, 한국에선 대통령 출마를 위한 연령 제한이 40세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여전히 한국의 대통령 피선거권은 40세로 제한돼 있었다. 이처럼 보수적 기준이 어떻게 헌법에 명문화됐을까 의아해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보았다. 헌법에 명문화된 이 규정은 1962년 12월 박정희가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기수로 떠오르던 김영삼, 이철승, 김대중 등 젊은 정치인들의 출마를 막기 위해 도입했다고 했다. 자신도 44세에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으면서 그 권력에 도전할 만한 다른 청년 정치인들의 출마를 미리 봉쇄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삼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조항을 그대로 헌법에 유지한 채 일곱 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도, 심지어 광역과 기초지방자치단체 의원도 피선거권은 모두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진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혼할 수 있고, 군대에 가 공동체 방어의 의무를 수행하며, 직업을 구해 일하며 세금을 내는 등 온전한 시민적 권리와 책임을 지닌 동료 시민들이 25세에 이르지 못하면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제한되는 것이다. 반면, 핀란드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18세가 되면 의회나 지방자치선거에 출마할 권리를 부여한다. 더욱이 한국은 각급 선거 투표권을 만 19세 이상에게만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OECD 국가들 중 유일한 것으로 대부분의 나라는 만 18세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2007년부터 만 16세 이상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헌법적 가치로서 아동, 청소년의 인권과 참여
아동,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핀란드의 사례를 예로 들어 민주주의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를 살펴보고 그 해법을 찾아보기로 하자. 무엇보다, 정치공동체와 사회 운영의 최고 원리를 규정한 헌법에서부터 한 가지 근원적 차이가 감지된다. 핀란드 헌법 제6조(Section 6)는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다루는 헌법 제2장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부분인데, 만인의 법 앞의 평등과 차별금지 조항에 이어 곧바로 아동의 인권 보장에 관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어린이들은 평등하게 그리고 개인들로 대우받아야 하며 그들의 발달 수준에 상응하는 정도로 자신들에 관한 문제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돼야 한다.” (Children shall be treated equally and as individuals and they shall be allowed to influence matters pertaining to themselves to a degree corresponding to their level of development.) 아동, 청소년의 인권 보장과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의 권리가 어느 정도의 위상과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배우기 시작하는 과목 중에 오이께우스(Oikeus)가 있는데, 이 말은 ‘정의’, ‘법률’, ‘권리’라는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지난 가을 아이가 가져온 교과서를 펴보니 첫 장부터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이 보장하는 다양한 목록의 아동 인권이 서술돼있고, 민주주의에서는 “내 삶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정책이나 의사결정에 누구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어린이 의회와 청소년위원회 제도
실제로 핀란드는 아동, 청소년 관련 정책 결정 과정에 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나의 아이는 현재 만 11세로 핀란드 공립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데, 지난 학기 반에서 투표를 통해 부대표로 선출됐다. 어느 날 내게 반 대표 선거에 나가도 되느냐고 물어 나는 공동체 업무에 참여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므로 당연히 된다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혔던 모양이다.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학교 전체 학생회 대표 선거에 나가도 되느냐고 해서 또 그러라고 했다. 아쉽게도 3위에 머물러 대표와 부대표로 구성되는 회장단이 되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 대표가 되고 싶어했던 한 가지 이유를 들어보니 회장단이 되면 시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의회(Lasten Parlamentti)에 대표로 참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린이 의회는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Tampere 시를 비롯해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운영하고 있는 제도이다. 또, 7학년부터 9학년까지 고학년이 되면 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위원회(Nuorten valtuusto)에 참석할 학교 대표를 선발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들은 정례적으로 모여 시에서 시행하는 아동, 청소년 관련 정책에 대해 심의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청소년 대표가 직접 맡는 청소년위원회 위원장은 시 공무원들이 가져오는 결재 문서에 서명까지 한다고 한다. 비단 아동, 청소년만이 아니라 핀란드의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은 장애인위원회와 노인위원회를 구성해 당사자들에 관련된 정책 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 (Tampere)대학교 연구원(정치학 박사)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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