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께 걷는 아이들입니다. 😀

지난 3월에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주제로 내공 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진행된 4월 총선을 위한 공부시간이였다는 생각이 들을만큼 유익한 시간이었는데요.

이번 4월 내공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 개굴님을 모시고 화제였던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1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시작과 흐름

 

 

"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



1950~6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인권 및 참정권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났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하여 지도부들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버스 사건을 계기로

흑백 분리 거부 운동을 펼치는 등 다양한 운동들이 있었는데요.

이 흑백 분리 거부 운동을 하며 걸었던 슬로건이 바로 위의 문장입니다.

 

때 늦은 정의는 실현되지 못한 정의이다. 또는 지체된 정의는 정의의 부정이다.

정의와 민주주의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말고 다음에, 내일이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결국 지체된 것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 슬로건은 한국 사회의 청소년 참정권과도 결이 맞닿아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만 19세로 선거 연령이 하향된 이후로 청소년 선거권은 

만 18세로 낮춰지기까지 1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사이에는 교육감 직선제,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2014년 세월호, 한국사 국정화 반대 시위, 박근혜 탄핵 시위 등과 같이

정말 많은 사회 이슈 및 시위가 있었고 그 현장을 청소년들이 앞장 서기도 했습니다.

 

2007년, 청소년은 뽑을 수 없는 ‘교육감 직선제’를 계기로 청소년들이 직접 투표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후 이뤄진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는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며 시위의 불을 지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청소년들은 시위 시작의 주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회 속에서 어느새 보호 받아야 할 존재로 배제되어 버렸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청소년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수의 움직임으로 진행되던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사회에서 주요 의제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바로 14년 세월호 사건15년 한국사 국정화 사업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입니다. 

청소년들이 이 사회 운동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함께 바뀐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는 청소년 참정권에 있어 대전환이 된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직접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하고,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등 오히려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에게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탄핵이 이후 진행된 17년 장미 대선에서 결국 청소년들은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고,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외치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같은 해 9월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2 청소년 참정권의 의미

 

국가 정책은 커녕 학교 운영에서도 참여가 배제되어있는 청소년들.

참정권을 인권으로 일컫는 이유는 보편적으로 주어져야하는 권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소년들에게도 참정권을 보편적 권리로 만드는 과정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할 수있을지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대표가 될 수 있어야하고 동시에 직접 대표를 뽑을 수도 있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청소년이 ‘유령’에서 ‘시민’으로 함께 할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데요.

이번 만18세 선거권 이후 우리는 어떤 정치와 사회를 기대하고 나아가야 할까요?

이 글을 보고 계실 여러분들과도 함께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




👉 청소년의 존재를 지우지 않는 정치를 위해

 

“나는 분명 존재했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았고 목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받는 교육에는 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조차 나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나는 청소년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정치인을, 수능이 끝나도 자살하는 사람 없는 세상을 만들어 줄 정치인을 뽑고 싶다.”

서한울(원주 행동하는 청소년의 양심)

 

 

“사회 안에 자리/장소가 없는 사람,

사회의 바깥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나서 줄 제삼자를 갖지 못 했기에,

사적 관계 안에서도 자신의 자리와 장소를 지킬 수 없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흔히 청소년은 희망, 미래, 성장 등 미래 지향적인 존재로 표현되고는 하는데요. 

청소년을 미래 세대가 아닌 지금 현재 시점에서 사회를 함께 꾸려나가는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청소년 참정권 선거 연령 하향은 청소년들과 함께 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넘어 청소년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물꼬를 터줄 수 있는 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 ‘같은 크기’의 목소리로 들리기 위해

 

“아동의 의견을 ‘듣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비교적 큰 도전이 아니며,

그들의 견해에 적정한 비중을 두는 것이야말로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들릴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5. 12항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비청소년들의 목소리와 같은 크기로 들리기 위해 우리는 청소년들이 청소년들만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요구에 귀 기울여야만 합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들어주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할테니까요!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청소년이 경험하는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뿐만 아닌 일터, 학교, 가정 모든 사회 구성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소년에게는 참정권이 없고 비청소년들에게만 참정권이 있는 지금의 이 법은,

청소년과 비청소년을 계속해서 분리시키고 권력 차이가 더욱 커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력 차이가 청소년에 대한 수많은 폭력을 낳고 있고 다시 은폐하고 있습니다.”

김윤송(삭발농성에 참여한 청소년, 당시 만15세)



지난 해를 뒤덮었던 스쿨 미투는 과연 갑자기 터져 나온 문제일까요?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폭력에는 신체적인 폭력만 존재할까요?

 

청소년을 향한 폭력이 보호라는 이름 하에 묵인되거나 용인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청소년들에게는 주체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청소년의 정치와 말하기가 바로 이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을 바꾸기 위해

 

📢비청소년들이 대변해주는데 왜 필요한가?

📢(비청소년에게) 선동 당하기 딱 좋다.

📢가수, 게임, 미용에나 관심 있지 정치에는 관심 없을 것이다.

📢학교가 정치화 된다.

📢투표권을 원하면 세금부터 내야한다.

 

만 18세 선거권 하향에 대해서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사유들이 참 다양했습니다.

이러한 반대 의견을 통해 오히려 현재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짚어볼 수 있지 않나 싶은데요. 

이에 대해 여러 이야기거리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청소년들만 선동 당하는지, 선동 당하는 것이 나쁜 것인지, 선동 당하는 것이 싫다면 선동 당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수와 게임, 미용과 관련한 문제는 정말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것인지. 

청소년들이 하는 공부에는 정치와 사회가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

 

특히, 투표권을 거래의 개념으로 보는 것과 함께 청소년을 사회에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존재로 보는 시선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만 18세 선거권, 끝이 아닌 시작이다.

 

정치가 젊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단순히 생물학적인 연령이 낮아지는 것보다

‘엘리트, 자산가, 장노년층의 남성’으로 이뤄진 주도 집단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며, 이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성분 교체’라고 합니다.

 

상임활동가 개굴님은 만18세 선거권이 실현되었지만 18세 이하 청소년 인구 입장에서 보면 무대표에서 극소대표로 나아간 것이기 때문에 정치 성분 교체를 위해서는 정치 연령이 더 낮아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더 넓은, 더 많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선 청소년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 돌봄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같은 시민 사회 구성원으로, ‘동료’로 만나야 할 것입니다. 

 

 

강의를 듣고 있는 함걷아 직원 일동



이번 내공을 통해 함께걷는아이들 일동은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았고,

앞으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청소년 참정권을 마주하면 좋을지 의논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내공으로는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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