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대한민국보다 훨씬 이전부터 은둔형 외톨이에게 주목하고 연구와 대책을 마련해 왔습니다. 고립 청(소)년 관련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매년 한국을 찾아 청소년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리츠메이칸대학 야마모토 코헤이 교수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건 언제였나요. 그동안 일본 정부와 민간의 노력, 그리고 결과는 어떠했나요?
제가 1987년~2003년에 보건소에서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히키코모리와 유사한 청소년에 대해 시민들로부터 많은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히키코모리 정의가 존재하지 않았고 청소년 내면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동료 정신과 의사들과 공유했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2000년 1월에 발생한 니가타현 여아 감금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들의 가정폭력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상담 전화를 받은 의사와 보건소 직원들이 가해자 S(남, 당시 37세)를 강제 입원시키기 위해 현장 주택을 방문했는데 이 집 2층에서 1990년에 실종된 A(여, 당시 19세)를 발견한 것입니다. A는 9살에 S에 의해 납치되어 은둔생활 하는 S의 방에 9년 2개월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그해에는 과거에 은둔했던 사람들이 가해자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이는 ‘은둔형 외톨이=흉악 범죄자’라는 낙인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심각한 불황으로 '취업 빙하기'가 찾아왔고, 취업에 실패한 많은 사람이 니트족으로 전락하거나 프리랜서라는 노동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사회로 진출해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40대입니다. 최근 2020년에 니트족은 87만 명으로, 기록이 남아있는 1995년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전년 대비 추이를 보면 15~24세 연령층에서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전체 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15~19세의 증가 폭(전년 대비 10만 명)이 매우 큰데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요식업 등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곳들이 단축 영업이나 휴업하였고 일자리를 잃은 청년층이 니트족으로 전환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니트족, 프리랜서라는 노동 방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은 히키코모리와 공통된 성향이 있습니다. 바로 '대인관계의 약함'입니다. 등교 거부, 히키코모리, 프리랜서는 '낮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낮은 자존감', '사람과의 관계에 높은 불안감'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970년 이후 경쟁 위주의 사회와 엄격한 평가,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특징으로 개인의 삶을 ‘성공과 실패’로 평가하고 실패가 분명해지는 사회로부터 회피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9년과 2015년에 만 15세부터 39세까지를 대상으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또한 2018년도에는 만 40세부터 만 64세까지를 대상으로 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 은둔형 외톨이(2015년 조사) 54.1만 명, 40~64세 은둔형 외톨이 61.3만 명, 총 115.4만 명의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가장 최근인 2017년 조사에서는 15~64세의 은둔형 외톨이가 전국적으로 146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은둔형 외톨이에 특화된 전문 상담 창구로서 도도부현(일본의 광역행정구역) 및 지정 도시에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정비를 추진하여 2018년까지 모든 도도부현 및 지정 도시(67개 지자체)에 설치하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는 보다 가까운 곳에서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설치 주체를 시군구까지 확대(2022년 18개 시군구)하였습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 핵심인 상담 지원-거점조성-네트워크 구축을 통합적으로 실시하는 '히키코모리 지원 스테이션 사업'(2022년 87개 지자체)과 8가지 지원 프로그램(상담, 당사자-가족 자조 모임, 강연 및 워크숍 개최, 네트워크, 실태 파악 조사 등)을 선택해 실시하는 '히키코모리 지원 사업'(2022년도 85개 지자체)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정촌(일본의 기초 행정구역, 한국의 읍/면/동과 비슷)에 도도현과 연계한 위성 지원센터 설치, 소규모 시정촌에 재정지원과 지원방식 계승 사업을 신설하여 시읍면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체계 정비와 지원 평준화를 촉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민간에서도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데 일부에서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를 강제로 끌어내려는 '끄집어내기 산업'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고 없이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를 찾아가 당사자 동의를 얻지 않고 집에서 데리고 나와 단체가 운영하는 기숙사에 입소시키는 등 납치-감금, 취업 강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고액의 비용 청구 등 피해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특히 주목하는 은둔형 외톨이 경향은 무엇인가요?
코로나 이후 히키코모리와 히키코모리의 고령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2022년 내각부 조사(15세~39세)에서 '외출 빈도가 줄어든 지 반년 이상'이 경과한 사람(494명)에게 지금의 상황이 된 이유를 물었더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이 29.6%로 1위로 뽑혔고, 다음으로 '퇴직' (16.2%), '임신'(15.2%),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아서' (13.8%), '질병' (11.5%) 등 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응답자는 14.8%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타인과 거리를 두도록 하였으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청년과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게 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집콕 상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일본 사회는 8050(고령의 부모가 히키코모리 자녀를 봉양하는 문제)문제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30대였던 은둔형 외톨이가 어느덧 50대가 되었고 취업 빙하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40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8050 문제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무대책이었던 일본 사회가 당연히 겪게 된 문제입니다.
저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의 목표를 취업·자립이 아닌, 각자 자기답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취업·자립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지만, 온화·평온한 거처 참여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방에서 컴퓨터를 통해 외부 세계와 계속 교류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각자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복지정책의 역할이 아닐까요.
오늘날 문제가 되는 은둔형 외톨이의 장기화, 고령화는 당초 사회운동단체 등에서 심각한 경향으로 지적해 왔습니다. 이를 정책적으로 바라볼 때,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장기화하면, 사회를 지탱하는 계층이 취업과 납세 의무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경제적 손실론을 근거로 듭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조기에 '극복'해야 할 과제로 보고 외부의 힘으로 그들과 그들의 삶을 위협하려는 권력성을 보입니다.
'장기화=문제'라는 발상에는 당연히 '은둔=문제'라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개입책을 만들어 강제적으로 은둔형 외톨이를 '해결'하려는 정책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0년 니가타 여아 감금 사건 이후 정신보건복지법 제34조(이송제도)의 제정입니다.
현재로서는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정신보건복지법이 있지만, 사회적 은둔형 외톨이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가 도도부현과 지정 도시에 설치되어 있지만, 지역 간 격차가 있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센터도 있습니다. 즉, 은둔형 외톨이 현황과 정책이나 사업 사이에는 큰 괴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사회적 고립의 한 형태로 본 빈곤층 자립지원법이 있는데 법에서 말하는 포괄적인 지원의 하나로 취업준비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준비사업만으로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발달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빈곤자립지원법은 개인과 가족에게 책임을 추구하고 공적부조를 줄이려는 의도가 강한 법입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지원은 그들의 일상생활 능력을 향상하고 취업준비 능력을 높이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은둔형 외톨이가 그 사업에 응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히키코모리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이란 무엇인가’입니다. 근무에 지쳐서 "NO!"를 외치는 사람, 그곳에서의 인간관계에 지쳐서 은둔하는 사람이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런 이기적인 말을 하면 취업이 안 된다'며 참아내고 취업하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은둔형 외톨이 지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국은 인제야 은둔형 외톨이에 주목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나 민간 단체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때로는 1년에 3번씩 한국을 방문해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배워왔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 탈 가정 청소년과 등교 거부가 큰 문제이지만 일본처럼 은둔형 외톨이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에 한국에서 히키코모리 자녀를 둔 어머니와 면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우리와 같구나'였습니다. 그 생각의 핵심은 그 아이(18세)의 아픔이었습니다. 왕따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가 앞으로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지금은 해산한 사회적기업 ‘Yooja Salon(유자살롱)’에서 은둔형 외톨이 경험이 있는 청소년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일본 청소년들의 공통된 고민이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 청년들에게 인터뷰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 적응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한국의 입시제도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이 입시제도에 적응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입시경쟁에 과도하게 적응했다는 인식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경쟁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이후 어떻게 되는지, 사회에서 고립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니,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경쟁사회에 대한 과잉 적응은 한일 양국의 공통된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쟁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은둔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청소년)들이 한일 양국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가 만들어 낸 과제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성공과 실패에 의한 인간 평가)을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으면 히키코모리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 목적이 취업을 통해 사회 적응, 취업을 통해 세금을 내는 자립을 하는 것이 진정한 '자립'이라면 히키코모리 지원은 실패할 것입니다.
아서 클라이먼 등은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힘이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힘과 그 힘이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적 고통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은둔형 외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관점입니다.
은둔형 외톨이의 대부분은 청소년에서 성인입니다. 그들 중에는 장기적으로 은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은둔형 외톨이는 노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사회입니다. 부모들은 그들이 사회로 나가기를 바라며 조바심을 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은 당연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방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세계를 지키려는 청소년들을 방에서, 더 나아가 집 밖으로 내쫓는 행위는 지원자가 권력을 휘두르며, 권력에 취하고, 때로는 침입하여 공격하는 행위가 됩니다.
히키코모리 상담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지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취방 혹은 자택에 은둔하는 상황은 가족이나 친척의 상담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은둔 기간이 장기화하거나, 은둔에 따른 이차적인 정신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이 경우 적절한 의료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다만, 은둔이 폐쇄성이 큰 곳에서 발생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 지원을 발달보장(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 고유의 발달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추구해 개개인의 인격 전달을 보장함으로써 그 사람 고유의 가치 실현을 도모하는 일)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개인의 발달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은둔형 청년의 상태와 은둔형 청년이 접하는 의료-복지-보건 등 모든 분야가 자유롭지 못한 청년들의 상황을 해방하는 방향으로 행해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집단의 발달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생활집단으로서의 가족은 '병리'성을 가진 '가족'이며, 치료의 대상이라는 이해 속에서 발달보장의 실천적 전개는 어려울 것입니다. 발달보장 실천을 위해서는 가족이 청소년들에게 안전과 안심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은둔형 외톨이 가족이 된 자책에 사로잡혀 있던 가족들이 다른 가족들과 함께 그 삶의 어려움을 공감할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사회에서 겪는 삶의 어려움을 고발할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집단은 일률적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힘을 형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경험하는 집단은 그들이 참여하는 거처나 취업 준비 장소 등의 일상생활 집단, 나아가 거주지 등의 동년배 집단 등 그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집단과 그들과 함께 소수자로서의 생활 요구를 함께 높여가는 지역 생활자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이 참여하는 집단이 일률적으로 사회에 '적응'을 요구하는 집단이었다면, 그는 그 집단에 '자기들 삶의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집단이 그들의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면 그는 그곳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셋째, 사회의 발전입니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구축하는 사회사업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와 함께 ‘그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것을 사회사업이 지향하는 사회변혁과 어떻게 관련지어 볼 것인가?’가 요구됩니다. 애초에 은둔형 청년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본래 인간은 모든 면에서 다양하며, 그 사람이 느끼는 느낌도 생각도 다양합니다. 이 다양성은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배움의 방식과 일하는 방식에 의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다양성은 결코 부정되는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는 그 다양성 때문에 그 사람의 삶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나 그녀가 그 다양한 배움과 일하는 방식을 추구할 수 있으려면 그 배움과 일하는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자원, 다양한 그나 그녀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치관(발달관)이 뒷받침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은둔형 외톨이, 고립 청(소)년에게 주목하는 이때 정확한 이해가 없거나 잘못된 목표를 설정한다면, 그들에 대한 지원은 실패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주목해야 하는지 야마모토 교수의 말로 서면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고립된 청소년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입니다. 그 주체와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실천이 필수적입니다. 일본 사회는 가족 외의 사람에게 가족 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물론 그 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생활상의 문제들이 '가족의 문제'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일본 사회가 가족의 과제를 사회의 과제로 삼는 것을 거부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청소년의 성장이야말로 기존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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