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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함걷아를 만난 아이들

[올키즈스트라 참여 아동 인터뷰] 색소폰이 나에게 왔다(1)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5. 18.

올키즈스트라는 모든 아이들의 희망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란 뜻으로 문화예술교육의 기회가 적은 어린이 ∙ 청소년에게 악기지원, 악기교육, 합주, 관악단 활동 등으로 건강한 성장을 돕는 함께걷는아이들의 음악 사업입니다. 2009년 '베토벤바이러스를 찾아라' 음악사업으로 시작한 올키즈스트라는 2011년 상위관악단을 창단하고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습니다.


8년의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올키즈스트라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중에서 상위관악단에서 활동하는 세 사람을 만나 음악과 함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5회로 연속 게재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올키즈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는 스무 살의 색소폰 연주자 윤지원씨(가명) 입니다. 윤지원씨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누어 나갑니다.


-기록자 말-

 

색소폰이 나에게 왔다_ 첫 번째 이야기

 

[일러스트: 김다희]
 

동생 챙기고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 아빠는 새벽에 일하러 나가서 늦게 오시니까 그동안 힘들다는 말도 못했어요. 레슨 해 주시는 선생님들한테 말할 수도 없고 연습실에 같이 있는 애한테도 저의 집 사정을 말할 수 없으니까 힘든 티를 안 내고 괜찮은 척 하고 지냈어요. 힘든 걸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얘기를 한 건 처음인 거 같아요. 얘길 하고 나니까 시원하고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색소폰이 어떻게 생긴 악기야?


어렸을 때부터 음악 쪽으로 뭘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도 쳤고 기타도 했고, 사물놀이는 좀 오래했어요. 지역아동센터는 4학년 때부터 다녔는데 6학년 때 올키즈스트라를 만났어요. 원래 플롯을 하겠다고 지원했거든요. 처음에 어떤 악기를 선택할지 몰라서 그냥 사람들이 많이 하는 쪽으로 같이 따라 간 거였어요. 근데 막상 플롯을 하려니까 뭐랄까 끌리지 않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거예요. 뭘 해야 하지 했었는데 지역아동센터에 같이 다녔던 언니가 색소폰 하자고.


색소폰이 어떻게 생긴 악기인지도 몰랐어요. 아 그런 악기가 있구나 하다가 일단 색소폰으로 결정을 하고 해 보니까 생각보다 재밌는 거예요. 사업단 선생님 중 한 분이 매일 악기를 만지는 게 중요하다고 했었거든요. 그 말 듣고 색소폰을 안 불더라도 악기를 꺼내놓고 매일 악기를 만졌어요. 악기를 꺼내놓고만 있다가 다시 쌀 때도 있고 연습을 하던 안 하던 매일 악기를 봤어요. 2년째부터는 매일 연습을 했어요. 그러다가 지역에서 지원받는 게 중단이 된 거예요. 인원이 적어서 그랬나 지원이 끊기게 돼서 레슨을 못 받는 상황이 된 거예요. 저는 계속 하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해야 되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해에 상위관악단이 만들어졌어요. 선생님이 저한테 지원을 하라고 했어요.


제가 혼자 하는 거 잘 못해요. 마트를 가든 밥 먹으러 가든 항상 누구랑 같이 가야 되거든요. 악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같이 지원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하는 게 걱정이 됐어요. 혼자라서 별로 안 하고 싶다고 했더니 센터 선생님은 그래도 했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하고 잘 하는데 아깝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다행히 센터 언니 중 한명이 같이 하자고 해서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신청 마감 전에 언니가 '자기는 이제 고등학생이라서 힘들 것 같다고'..... '아 그럼 혼자라도 해야 되나' 망설이고 있는데 센터 선생님이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한번 해 보자 결정을 하고 상위관악단을 하게 된 거죠. 

 

제가 엄청 많이 낯을 가리거든요. 누구 한명 친한 사람이 있으면 낯을 덜 가릴텐데.... 지원 한 사람들이 같이 모였는데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친한 거 같아서 다가가기 어려웠어요. 한 2주 정도는 엄청 힘들었죠. 근데 클라리넷 하는 언니가 저한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줬어요. 그 언니가 저한테 본적이 있는 거 같다고 00센터에 다니던 애 아니냐고. 언니가 다가와서 인사하니까 다른 언니도 '아, 얘가 걔지 왠지 낯이 익더라' 하면서 친해진 거죠. 집에 갈 때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가면서 더 많이 친해졌어요. 클라리넷 전공하는 언니가 연신내에 연습실이 있는데 한번 놀러 와서 연습하고 가라고 했거든요. 악기 들고 거기 가서 연습을 했어요. 언니들이랑 합주도 맞춰보고 연습하면서 더 친해지고 언니들은 악기를 전공으로 선택해서 열심히 하고 저도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으니까 열심히 하고. 저는 전공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못하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매일 연습을 했어요.

 

악기 전공을 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아빠가 악기 전공 하는 걸 반대했어요. 그걸 하려면 제일 큰 게 경제적인 문제잖아요. 돈이 많이 드니까..... 아빠는 안 된다고 딱 잘라서 말을 하진 않았지만 반대하는 내용으로 말하면서 계속 취미로 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고모랑은 집도 가깝고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아빠보다 고모가 더 반대를 했어요. '피리 부는 거 그거 해서 뭐 할 꺼냐', '악기 전공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닌데 첫째인 니가 돈 많이 드는 걸 하면 어떻게 하냐',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려고 하냐.'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악기 전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려는 건데 그렇게 가족들이 반대를 하니까 '아 어떡하지' 싶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는데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중 한 곳에 음악과가 있었거든요. 진학 프로그램 중에 고등학교 탐방이 있어서 저는 그 학교 음악과에 탐방을 가려고 아빠한테 전화를 했어요. 근데 아빠가 '안 된다고 거기를 왜 가냐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거기를 가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니고 구경만 하고 온다는 건데 아빠가 탐방을 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아빠가 '내가 음악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 구나'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완전 반대를 하니까 여기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어떡하지 계속 생각을 하니까 혼란스러운 거예요. 인문계를 선택해서 좋은 것과 특성화고를 선택해서 좋은 거를 비교하면서 써 봤어요. 인문계 가서 뒤에서 있을 바에는 차라리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서 정신 차리고 공부를 잘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인문계는 한 학기당 학비가 비싸잖아요. 특성화고는 학교 운영비만 내고 수업료는 전액 지원이거든요.아빠는 제가 이 고등학교를 왜 선택했는지 모를 거예요. 저는 돈 때문에 거기 간 게 크거든요. 첫째라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돈을 아끼려고 그 학교를 선택한 거였어요. 중학교 3학년 때여서 저도 어렸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우리 집에서 나라도 경제적으로 부담을 안 줘야지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고등학교는 유아교육과를 갔지만 악기를 전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연습을 계속 했어요. 상위관악단 활동을 하다 보니까 진짜 전공하고 싶고 해야 될 것 같은 마음이 엄청 커지는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함께걷는아이들에서 전공지원 사업이 있었는데 악기를 전공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일 년에 오백만원씩 지원을 하는 거였어요. 그때는 고등학교 온지 얼마 안 되고 학교 적응도 해야 되고 아빠가 반대를 하니까 지원사업 신청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만 하다가 지원 시기를 놓쳤어요. 아빠한테 얘기를 해서 허락을 받고 내년에 전공 지원 신청을 해보자 마음을 먹었어요. 아빠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할 말을 엄청 생각해서 핸드폰 메모장에 정리를 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괜찮겠지 하고 집에 갔는데 막상 아빠 얼굴을 보면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아 어제 말 못했어. 아 오늘도 못 말했어.'


저희 아빠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에요. 저랑 동생, 아빠 모두 아침에 나가고 집에는 잘 때만 만나니까 집에 오면 아빠는 자고 있거나 티비를 보고 있는데 말을 시키기가 그렇잖아요. 그렇게 며칠을 망설이다가 아빠한테 한번 말했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되냐고.' 근데 아빠가 아무 말도 안하는 거예요. 몇 번을 저 혼자 말을 하고 아빠는 별 반응이 없는 거예요. '아 이제 어떡해야 되지?'


아빠도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돈이 많이 드는 게 걱정되는데 애는 하고 싶다고 하고 아빠도 말을 섣불리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거예요. 제가 아빠한테 다시 그랬어요. '우리 집이 잘 사는 게 아니어서 옛날부터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동안 말을 못했다고'. '이번에 전공지원을 하는 게 있는데 정말 하고 싶다고.' 제 얘기를 듣고만 계시다가 아빠가 드디어 입을 열고 묻는 거예요. "전공이 그렇게 하고 싶어?" 아빠가 허락을 했냐고요? 궁금하시죠?

 

기록자 : 이호연

 

10대, 빈곤현장, 재난참사의 피해자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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