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자립"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걸까?

더욱이 위기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의 자립이란 것은 가능하기나 한걸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기존의 "자립"이 아닌 위기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자립"이란 어떤것인지 고민했던 자몽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물을 나누고자 한다본 글은 인권교육센터 ""의 활동가들이 함께걷는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자몽"프로젝트 참여기관과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발표한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청소년의 자립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1.유동하는 자립 2.조건없는 자립 3.지금 현재의 자립 4.지속가능한 자립 5.관계적 자립 6.주체적 자립

각각의 자립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만나보자.



청 : 나에게 굉장히 의지하고, 나를 굉장히 좋아해주는 것은 좋은데 부담스러워. 나는 나를 하찮게 보는데, 이 사람들은 마치 나를 대통령 마냥 보면서 나에게 와서 자기 고민을 얘기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말해.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 나도 그이들을 많이 의지하고, 그이들도 무척이나 많이 의지해. 지금은 관계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청소년과 활동가가 이런 관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있고. 이런 관계를 갖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 같아.

 

소 : 나는 왜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 지키면서 나오지. 그런 것도 쫌 있는 거 같아요. 솔직히 ○○□□(실무자) 저를 아끼시잖아요. 기대도 하시고.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그러고 있는 만큼, 잘 해야 된다, 잘 보여야 된다, 그런 생각도 있었던 거 같고 그래서 더 옥죄는 거 같아요. (...) △△ (실무자)도 저를 많이 챙기셨잖아요. 저를 챙겨 주니까 처음에는 당연히 좋죠. 근데 지내다보니까 힘들어서,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것을 아니까, 내가 싫다 내색을 못하겠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거 그런 게 너무 힘들어요. 저는 바보 같아서 그런지 상대방 기분을 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줘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생각한다기보다 저도 모르게 몸에 배여 있어요. (...)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저는 그게 불편해요.

 

소 : 제가 (스무 살 되고) 용인에 간 거는 △△과 지역아동센터와 거리를 두고 싶은 게 있거든요. 왠지 그 근처로 가면 자주 오라고 그럴 것 같아서. 딱 거리를 두니까 한결 마음이 편하고 뭔가 여유롭다 해야 되나 마음이. (...) 그리고 센터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쟤가 ** 센터 소개로 왔대하면, 제가 뭔가 실수를 했어요, 그러면 쟤가 **센터 누군데 그랬다더라이런 것도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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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간섭관심의 경계는 모호하다. 관계의 주도권을 청소년들이 동등하게 쥐고 있지 못할 때, 실무자의 선한 의도의 관심도 간섭이나 억압으로 느껴질 수 있다. 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몸에 밴” '소(가명)'는 실무자들의 지나친 관심이 자신을 옥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자기 기분이나 욕망은 내려두고 맞춰주게된다. '청(가명)' 역시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주변 사람들이 부담스럽다. 실제 자신이 쥐고 있는 자원은 별로 없지만, 뭔가를 해줘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내 삶의 원심력이라면, 자신의 의지와 욕망은 삶의 구심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팽팽한 긴장 속에 자기중심을 잡아가려는 노력이 관계 주체성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소'가 다닌 지역아동센터의 실무자들은 거를 아껴주었고, 많은 기회들을 제공하려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소'는 학교 끝나고 곧장 달려가야 했던지역아동센터에서의 경험을 반추하며, 그 때는 왜 그걸 어기지 못했을까 후회한다. 그에게 지역아동센터에서의 경험은 분명 의미가 있었지만, 자신의 시간과 공간이 지역아동센터에만 매여 있었음을 지금은 안타까워한다. 어쩌면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모든 기관들의 딜레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한 프로그램과 관계적 지원이 오히려 청소년들의 삶의 반경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 몽실 초청 간담회에서 청소년 한명은 자립을 위해서 인간관계가 중요한데, 쉼터에 살면 쉼터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학교나 직장에서 깊은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고, 통금시간이 있고 외박이 불가능하다는 조건들 때문에 도리어 쉼터로 인간관계가 한정된다. 이는 사회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7월 자몽 네트워크 모임 때, 커피 동물원에서 나눠준 이야기도 떠오른다. “집단 멘토링에서 관계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동료/사회/커동/실무자와의 관계를 다 얘기하고 싶었는데 동료 관계라는 말에서 이야기가 멈췄다. 동료 관계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얘기를 하더라. 순환 근무여서 만나기 힘들고, 일 끝나고 나면 쉼터에 돌아가야 하고. 그러다 보니 동료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하는데... 영화 <거인>을 볼 때 느낌처럼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걸 감수하고 애들이 살아준 거였구나. 정말 못할 짓을 했구나. 기관 안에서도 어떻게 개인으로서 살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이 된다.” 기관 또는 기관 실무자의 영향력은 청소년들에게 장악력으로 해석되거나, 그렇게 작용하기 쉽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남들이 살라는 대로만 살지 않는은근한 위반의 전략과 자기 힘이 중요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관계의 동등한 주도권을 갖고, 긴장과 갈등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협상할 수 있는 생존력을 키워갈 수 있어야 한다.

 

'소'는 지역아동센터로부터 멀리 이사 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이 센터 관계자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을 법한데, 그녀를 오랫동안 만나왔던 한 사람은 오히려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관계에서의 거리두기는 관계의 단절이 아니다. 자기중심을 잃지 않도록 거리 설정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거리두기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이 지속가능하며,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 쉼터나 그룹홈 보다는 자립홈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 청소년이 집을 나오는 이유는 폭력 피해도 있고, 가정 폭력도 있고 그것을 회피하려고 나오는 애들도 많은데, 어떻게 보면 집을 나온다는 것은 이제는 자립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

 

: (뭐가 준비될 때 자립이 가능할까?) 첫 번째는 경제력이다. 이것이 필수로 있어야 해.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재산을 관리하는 능력. 살림을 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경험치. 어쨌든 자립을 해서 룸메이트와 살면 모르지만, 혼자 살려면 혼자 다 해야 하니까. 밥을 먹지 않으면 어찌 살 것이며, 설거지를 못하면, 청소를 못하면 어떻게 살 거야. 그런 걸 말하는 거야. (...) 밥 먹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밥을 떠먹여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계속 (일방적인 의존만 키우는) 지원을 받다 보면 계속 나태해져. 내가 뭘 하지 않아도 이런 것이 오는데, 내가 굳이 뭘 하겠어. 힘드니까 먹고 놀자. 이런 마음 갖게 되는 것 같아. 지원은 언젠가 끊기는데, 그럼 얘는 살 수가 없어. 굳이 내가 뭘 안 해봤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 지금은 쫌 사생활 없이 살고 있어. 이상하게 독립된 곳 같으면서도, 독립이 안 된 공간이어서 다들 굉장히 궁금해 하고, 성격이 다 다르니까, 그이들은 나의 사생활이 궁금한 거야. 나는 근데 사람하고 거리를 두는 편이야. 이것이 잘 안 맞으니까 내가 최근에도 고민을 말했어. 공동체 생활에 지친다고. 같이 계속 뭘 하고, 힘든데 뭘 해야 하는 것이 힘들어서 나간다고 했다고 몰매를 맞을 뻔했어.

 

: (저는 독립하게 돼서) 후련했어요. 돈이나 이런 거에 대한 압박감은 있었는데, 독립해야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쁨이 더 커서, 그 돈은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면 알바라도 하겠지. 할아버지한테 계속 신세지고 있을 수 없고. 해방이다 자유다 이런. 그 전에 원래 할아버지랑 살 때 할머니도 같이 계셨는데 제가 방만 나가면 너는 왜 그렇게 사니그런 말 듣기 싫고, 집에 있기 싫고, 그랬는데. (...) 그냥 뭐 로망 그런 것도 있고, 저는 간섭받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혼자 살면 내가 밥을 먹든 말든 내가 씻든 안 씻든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그런 거에서 오는 해방감? 지금 이사 간 지 한 달 정도. 지금까지는 아직 행복해요. 저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게.

청소년의 탈가정은 복합적 해석을 필요로 한다.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가정 상황이 청소년들을 밀어낸 것(추방)이라 볼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을 견디지 않고 스스로 나왔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동시에 탈출이다. '청'은 그 탈출의 주체적 맥락을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탈가정에는 청소년들의 자립에 대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음을, 그렇기에 보호 체계로서의 쉼터나 시설로의 유입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이 부여되는 자립홈과 같은 공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자립 지원은 떠 먹여주는성격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스스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나갈 수 있어야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소'에게 자립은 간섭 없는 해방이자 자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자기만의 방에 대한 기대가 충만하고, 그것이 로망이라 할지라도 이래라 저래라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 자체가 자신에게 안정감을 준다. '청'은 지금 살고 있는 자립팸을 독립된 곳 같으면서도 독립이 안 된 공간이라고 말한다. 같이 의지하며 사는 것도 물론 장점이 있지만, 자신은 조금 더 사생활을 갖고 싶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과 세계와 잠시 떨어져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이 자기만의 색깔 있는 삶을 만들 수 있는 전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