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라는 노래 가사. 이 노래의 멜로디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한번쯤 흥얼거렸을 만큼 경쾌하지만 가사는 그와 아주 대조적이다. 신데렐라는 계모 밑에서 자라면서 무관심과 폭언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신데렐라가 계모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는 내용은 책 속에 등장하지 않지만 어린 신데렐라는 온갖 정신적 학대와 방임에 시달렸다. 어떻게 아무도 그 어린 신데렐라를 도와주지 않았는지 너무 안타깝지만 더 서글픈 것은 만약 신데렐라가 지금 한국에 태어났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동화 속 신데렐라에게는 요정과 왕자라도 있었지만 현실의 신데렐라에게는 아무도 없다. 상상해보건대 한국의 신데렐라는 사회적으로 방치된 채 제대로 된 밥을 챙겨 받지 못하고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할 것이다. 또 아플 때 병원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아동학대하면 신체적 학대만을 떠올릴 뿐 아이에게 매우 치명적이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정서적 학대와 방임을 아동학대로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법률사무소 디케


  신체적 학대는 아동학대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아동학대는 더 방대한 범위로 이루어진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ㆍ정신적ㆍ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다. 즉, 정신적 학대 및 방임 행위도 아동학대에서 신체적 학대와 성 학대만큼의 중대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5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서는 정신적 학대와 방임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적 학대는 아동에게 행하는 언어적 폭력, 정서적 위협, 감금 등의 행위이고, 방임은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행위인데 더 세부적으로 물리적 방임, 교육적 방임, 의료적 방임, 유기로 분류된다.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와 방임은 보호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아동의 발달과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동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정신적 학대와 유기, 방임도 적극적으로 처벌 대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신체적 구타로 몸이 성치 않은 상태까지 되어야 그제서 늦은 조치를 취할 뿐 정신학대와 유기로부터 아이들을 전혀 보호하고 있지 않다. 아직까지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에서 사람들의 인식이 벗어나지 못해 방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훈계와 정신적 학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출처: 서울신문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에 비해 정신적 학대와 방임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치명적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속적 정서학대가 신체적 학대보다 아이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언뜻 보기에 정서학대와 방임은 신체적 폭력과 성 학대에 비해 심각한 학대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피해아동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쉽게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2013년 겨울, 민이는 9년 동안 작은 방에 갇혀 살다가 죽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민이의 부모는 다친 아이를 치료하지 않고 밥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작은 방에 아이를 방치했다. 13살의 민이는 발견 당시 7.5kg에 불과했다. 물리적, 교육적, 의료적 방임이 모두 종합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5년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수경사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되었다. 버려진 아이들을 스님들이 돌보아주는 줄만 알았던 수경사의 실상이 아이들을 철저히 방임하는 학대를 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수경사에 있는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받기는커녕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인간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영양상태가 엉망이었다. 스님들이 아이들을 신체적으로 구타하진 않았지만 방임 그 자체로 얼마나 심각한 학대가 되는지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부모가 생후 2개월 된 딸이 영양실조와 감기를 앓고 있는데도 병원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해 숨지게 한 의료적 방임 사건, 초등학생인데 한글을 모르게 방치하여 아이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킨 교육적 방임 사건 등 많은 아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방임 학대가 무수히 많이 일어났다. 정서학대는 사실 다른 종류의 학대와 항상 동시에 일어나며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해 구체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다.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은 정신적 학대와 방임에 대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법처리에서 알 수 있다. 먼저 2015년 아동에 대한 정신적 학대 발생 건수는 총 7,197건인데 이 중 고소, 고발된 사건은 1,412건(19.6%)에 불과하고 이 중 형사처벌까지 받은 사건은 고작 85건(6%)이었다. 방임에 대한 사법처리도 다르지 않았다. 2015년 방임 학대의 발생 건수는 총 3,175건이었는데 고소, 고발된 사건은 473건(14.9%)에 그쳤고 이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은 24건(5%)에 불과했다. 또한 형사처벌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단편적인 예로 정서학대 행위에 대한 영국의 형량은 최대 10년인데 반해 한국은 최대 3년형에 불과하다. 만약 신데렐라가 영국에서 태어났다면 좀 더 빨리 불행에서 벌어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영국에서는 2014년 30대 미혼모가 4살짜리 아들을 굶겨 죽게 한 사건 이후 아동을 때리지 않더라도 부모가 자녀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폭언 등의 정신적 학대를 가하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즉, 영국은 정서적으로 학대받는 일에 대해서도 신체적 학대 못지않게 철저한 형사처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영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동학대 처벌법이 육체적 학대에만 중점을 두었는데 개정 후 방임 및 정신적 학대도 아동학대에서 중대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출처: 조선일보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웨덴의 교육 철학자 프란시스코 페레가 당시 체벌로 아이들을 훈육하는 스웨덴 교육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이 말에 담고자 한 더 깊은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신체적으로 가하는 체벌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등급매기고 경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에게 부모와 교사가 쏟아내는 온갖 비난과 강요를 정신적 고문이라고 말하며 크게 규탄했다. 때론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 고통보다 더 무참히 아이들을 짓밟는다. 온 몸의 멍으로 울고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음의 멍으로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도 정신적 학대를 아이를 위한 훈계라고 말하며 꽃으로 때리고 있는가. 꽃의 가시로 피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참고자료>
박홍규, 프란시스코 페레,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우물이있는집, 2013
보건복지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2015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2016
신연욱, 「아동방임이 아동의 자아탄력성과 또래수용에 미치는 영향」,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2007
이봉주, 「아동학대와 방임의 사회구조적 요인」, 서울대학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