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께걷는아이들 인턴들이 ‘함께걷는(차별&공존)’+’아이들(아동청소년)’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수.분.해 _ 인턴들의 수다를 분해하다], 두 번째 영화는 ‘어바웃 레이’입니다.
*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레이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4살 무렵 스스로 남자임을 깨닫습니다. 레이의 소원은 수술을 받고 ‘평범하게’ 사는 것. 하지만 의사는 오래 전 헤어진 아버지로부터의 수술 동의를 요구합니다. 딸 ‘리모나’가 아들 ‘레이’가 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10년 넘게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에게도, 모든 걸 이해해줄 것만 같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할머니에게도, 그리고 엄마 매기에게도요.
영화의 줄거리를 네 문장으로 줄이자니 이미 꾹꾹 눌러담긴 이야기를 더 꾹꾹 누르는 일 같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많은 이야기를 안고 시작합니다. 레이는 트랜스젠더이자 청소년입니다. 부모님의 동의 없이는 수술을 받을 수 없고, 아버지는 레이의 확신을 두고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냐’고 이야기하죠. 홀로 레이를 키워온 싱글맘 매기는 어머니 수잔의 간섭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독립을 두려워합니다. 레이의 수술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만 동시에 심한 불안을 겪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차별과 공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족도 빼놓을 수 없구요. 영화만큼 다양했던 인턴들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조아영(조), 이현진(이), 문다솔(문), 구지연(구), 한지연(한)
Q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시작할까요?
조 레이가 머리를 미는 장면이 기억 나요. 아빠를 찾아가기 전에 스스로 머리를 밀면서 담담하게 마음을 가다듬는데, 비장함이 느껴졌어요. 한국 영화 아저씨도 생각나고.. 어쩌면 레이가 나다움을 찾는 과정 같기도 했어요. ( 이 머리 미는 건 어느 나라나 반항의 상징인가봐요 )
문 엄마가 구긴 수술 동의서가 차 뒷자리에서 굴러다니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구겨지고 해진 그 서류를 마지막까지 계속 가지고 있잖아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의 마음과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조 그러니까요. 빳빳한 새 종이에 받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게..
문 구겨진 서류처럼 어려운 마음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갈등을 견디고 풀어내며 나아가는 모습이 담긴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한 저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동생들에게 너는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 인상적이었어요.
문 동생이 레이에게 형이야? 하니 형이야. 하고 씩 웃어주는 것도요.
이 레이가 불링을 당하고 왔을 때 멍든 얼굴에 닭을 얹어주고, 빼앗긴 신발을 함께 찾으러 가는 장면이 좋았어요. 물론 성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스스로의 문제겠지만, 가족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면 분명히 가족들도 함께 겪어야 하는 과정이잖아요. 서로 투닥거리고 창피해하면서도 신발을 함께 찾아나서는 그 모험 안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Q 원래 제목이 3 Generation 인데, 각 세대에서 보이는 특징과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면요?
조 같은 시대의 세 세대라도, 우리나라였다면 달랐을 것 같아요. 외국 영화여서 이런 상황과 대화가 가능하구나 생각이 드는 장면이 많았어요.
문 이 영화에서는 세대가 나타내는 특징보다는, 레이의 가족이 너무나 특수하다는 점이 더 큰 것 같아요. 그 세대의 보편적인 인물들이 아니니까요. 미혼모 엄마에 트랜스젠더 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할머니 커플. 미국에서도 한 천만 분의 일 확률로 존재할 것 같아요.
이 한국에서는 없을 법한 이야기라 어바웃 레이 아닐까요. 사실 다솔샘 말처럼 너무 많은 소수자성이 들어있어서 잘못하면 폭발할 수도 있는데 잘 다듬어낸 영화라고 생각해요.
문 아슬아슬한 장면도 있었어요. ‘레이 그냥 레즈비언 하면 안 돼?’라고 묻는 할머니처럼요.
이 저도 궁금했어요. 할머니는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이해했을까요?
문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요. 다만 손녀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건 아닐까요
한 이해를 못해서는 아닐 것 같아요. 그냥 할머니로서 그 거대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긴 말 아닐까 생각해요.
조 저는 할머니가 엄마 매기에게 갑자기 독립하라고 하는 것도 뜬금없이 느껴졌어요. 엄마의 상황을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일 뿐일까요?
문 미국에서는 다 컸으면 독립하라고 하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요..
한 사실 킹 오브 썸머에서는 집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그 갈등을 피해 집을 나가는데, 이 영화에서는 반대잖아요. 갈등은 주로 밖에서 일어나고, 집에서는 힘들고 지친 주인공들이 위로를 받아요. 어쩌면 집이 이 가족을 나타내는 공간이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이런 주인공이 나오는 가족 영화라면 당연히 아빠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시작부터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인 엄마가 나오잖아요. 가족 안에서는 그 이해가 공고하고요. 그게 좋았어요.
조 저도 이 영화에서 엄마가 참 좋았어요.
한 엄마는 처음부터 모든 걸 받아들인 상태로 등장하지만 점점 복잡한 감정들이 드러나고, 그러면서도 애쓰던 모습 같은 게 기억에 남아요.
Q 영화 속에서 레이가 영상을 만들잖아요. 영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조 본인이 원하는 삶, 그리고 솔직한 마음을 담는 것 같아요. 영상을 통해 엄마와 공유하기도 하고요. 후반부에 영상 속 목소리와 현실의 레이가 하는 말이 맞물리는 장면이 있는데, 레이가 원했던 삶이 현실이 되는 걸 표현한 건 아닐까요?
문 이 영화는 담고 있는 내용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잖아요. 인물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과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관객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였다고 생각해요.
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렇겠지만, 만드는 사람 또한 그 장치를 통해 영화를 좀 더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불링 당하는 장면을 레이의 영상을 통해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걸 보는 엄마와 레이의 마음도 함께 보여주었던 것처럼요.
Q 더 생각나는 장면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 레이가 자기는 키가 작아서 농구 못한다고 말하던 장면이 안타까웠어요. 그 장면에서 곁에 친구들이 있지만 전학 가고 싶다는 마음이 와닿았어요.
조 저는 학교 화장실 옆에 붙어있던 포스터가 기억 나요. ‘인간으로 가치 있게 살 것(Conserve humanity)’ 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여자와 남자 화장실의 가운데에 붙어있었어요. 성별과 관계없이 인간으로 가치있게 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느낌이었어요.
한 레이는 그 화장실을 지나치고, 다음 장면에서 음식점 화장실로 가고요..
문 그렇게 대비되는 장면들이 있었죠. 영화의 따뜻한 색감 또한 주인공이 처한 따뜻하지 않은 상황을 더 대비시키는 듯했어요.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대사도 마찬가지로요.
구 저는 레이가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는 장면과, 주유소 화장실 앞에 선 할머니를 보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사실 엄마가 그걸 보고 뭔가 깨닫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지만요.
이 할머니 커플 좋았어요. 저세상 정서. 저는 트랜스젠더 안에서도 여성이 남성으로 전환하는 건 잘 다뤄지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영화에서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구 이 영화를 검색했을 때 ftm(female to male)인 사람이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하기 전에 함께 봤다는 평점이 베스트에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어디에나 있구나,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Q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한다면
조 제목이 어바웃 레이지만, 레이의 감정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감정 변화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이 어바웃 레이라는 게 사실 레이의 내적 상황 뿐만 아니라 외적 상황까지 포함하는 말이지 않을까요. ‘레이, 그리고 주변 모두에 대하여’
문 영화가 아니라 50부작 드라마였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아요
이 그러니까요. 할머니 캐릭터의 미래도 궁금해요. ‘내가 사랑하는 저 여자는 노이로제 덩어리야.’라는 대사가 기억나는데, 그 커플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이 영화를 두 번 봤어요. 처음 볼 때는 레이에 집중해서 봤는데, 두번째로 보면서는 상대적으로 영화 전반적인 부분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엄마의 성장 일기 같다고 생각했어요.
조 엄마도 불안을 앓고 있었잖아요. 갱년기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갑자기 열이 오르고요. 그런데 마지막 가족 모두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엄마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어요. 엄마도 모든 과정을 견디며 성장한 것 아닐까요.
한 저는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 영화 되게 무겁겠다 생각을 했는데, 그냥 가족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레이 가족의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치환되는 걸 느꼈어요. 성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보편적인 문제니까요. 그렇게 레이의 이야기가 평범해진다는 게 이 영화의 좋았던 점이었어요.
이 저는 개인적으로 인권 영화나 소수자성을 다룬 영화들은 보고 나서 편하면 안된다고, 찝찝함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 볼 때에도 너무 많은 소수자성을 넣었는데 터지지 않고 잘 진행이 될까 걱정을 했어요. 물론 아슬아슬한 경계선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성을 평범성으로 굉장히 잘 끌어내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문 맞아요. 불편할 수 있는 장면도 있지만, 그걸 또 영화 안에서 해소해주고요. 아슬아슬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 영화, 완전한 이해가 아닐지라도 공감의 물꼬를 틀 수 있게 한 영화같아요.
어바웃 레이와 인턴들의 수다는 이렇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논의를 하려 했지만,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도 많았어요. 이 영화가 궁금해지셨다면 한번쯤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댓글로 함께 이야기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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