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청년’은 정말 일반적인가
최근의 공정 논란을 상기해보면,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부정청탁, 허위 수상경력 등을 통해 일반인들은 생각하기 힘든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통해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청년들이 취업 전선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소위 물고 나온 수저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기회를 받고, 서로 다른 꿈을 꿔야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공정’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고, 이러한 이야기의 대상자인 많은 ‘청년’들은 지금의 현실에 허무함을 느꼈다.
언론들은 이와 관련된 내용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청년세대에 대해 20대 남성들의 정치적 경향성을 ‘이대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MZ세대’ 와 같이 특정 세대를 지칭하여 여론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에 등돌린 이대남 , ~에 분노하는 MZ세대 등의 헤드라인을 통해 청년의 생각을 일반화하면서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언론 그리고 정치인들이 언급하고 있는 이 ‘청년’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언급하는 청년들은 고등교육을 끝마치고, 수능을 보았으며,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했고, 직업이 있거나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한국사회에서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행보를 청년들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세대를 하나로 ‘표준화’하여 현상을 설명하기에 편하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기회의 공정’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적절하지 않은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사회에서는 ‘표준 청년’이 되는 것을 꿈조차 꾸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비율은 79.2%이다. 그 중 흔히 말하는 ‘인서울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수능 성적 2등급 커트라인 정도인 13%에 들어가야 하며,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지원 조건에 대학졸업 여부를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할 여건이 된다는 것도 함축된 가정이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추산해보면 대입을 위해 사용되는 각종 사교육비용은 고등학생 기준 월 평균 38만 8000원이며 이를 고등학교 이수 과정인 3년으로 넓혀보면 연간 1000만원 정도를 단순히 교육을 위해 지불해야 한다. 만약 고등학교까지 사교육 없이 졸업했다 하더라도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통계청에 따르면 4년제 대학 기준 한 학생이 연간 부담해야 하는 평균 대학 등록금은 673만 3500원이다. 이를 4년으로 환산했을 때 약 2700만원을 대학 졸업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 모든 수치는 각종 생활에 필요한 돈과 부수적인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용을 내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소득을 벌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2021년 기준 4인가구의 기준 중위소득(모든 가구를 소득 순으로 순위를 매겼을 때, 정확히 가운데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은 약 4900만원이다. 우리나라 4인가족의 대부분의 가족형태가 2인 자녀를 둔 부모의 형태를 보인다 생각하면, 고등학생 자녀를 사교육을 시키고, 대학을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연간 소득의 30퍼센트 수준을 교육비로 사용해야 한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추산한 기준중위소득의 경우 그래도 상황은 조금 나은 편이다. 만약 청소년 스스로가 가계를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부양해야할 가족이 아파 병원비를 내야하는 상황이라면, 수능을 보는 것, 대학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대학에 졸업하는 것 같이 ‘일반적인 청년’이 되는 길은 허황된 일이 된다.
정치화된 ‘공정 아젠다’ 벗어나, 진정한 기회의 공정을 위해
언론과 정치인들이 ‘공정’에 대한 이야기 꺼내는 맥락을 잘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청년들의 분노, 청년들의 삶 등을 이야기하면서 정치적 상대방은 청산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논리를 만들고, 지지자들이 이에 동조해주기를 바라며 표를 얻고자 한다. 정치화 된 공정 아젠다는 결국 각 정치세력간의 도덕성 경쟁으로 이어진다. 지지자들은 서로를 비방하면서 싸우고 청년들 사이에서도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정치적 분쟁이 일어난다. 각자를 헐뜯고 비난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레 공정 아젠다의 본질인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점차 논의 대상에서 지워진다.
정치권과 언론이 ‘공정 아젠다’를 다루는 또 다른 방법중 하나는 공정을 위한 해결책으로 ‘능력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고려사항 없이 실력이 좋은 사람, 능력이 좋은 사람을 선별해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좋은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이상적인 해결책이다. 각자가 동등한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을 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정말 ‘능력 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주장이 매우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 측면에서의 취약한 사회보장제도, 소득의 정도에 의해 극적으로 결정되는 교육의 질적 차이, 86%의 대학이 사학대학인 기형적인 교육 체계에서의 학비 부담, 서울에 모든 것이 몰려있는 사회 시스템, 그로 인한 정보격차 등 일련의 논의들이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력주의 풍토는 결국 좋은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있는 것도 실력이고, 능력이다 라는 메시지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소득과 지역등의 차별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사회에서의 능력 주의는 결국 많은 이들에게 “노오력을 해야한다”라는 무의미한 응원만 해줄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기존의 공고한 관행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만 쓰일 것이다.
진정한 기회의 공정이 이뤄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개념은 그저 의식주가 해결된 삶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이 타인에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두려움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이야기한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저소득층에 대한 편견을 시민 모두가 버려야 한다. 차별을 조장하고 동조하며 선동하는 세력이나 사람들을 엄하게 벌해야 하며, 우리나라가 대학 졸업장에 따라 자신이 일할 수 있는 분야가 결정되는 사회인 것을 생각해 공교육의 범위를 대학까지 확장해야 한다. 공교육 현장에서 부모님의 전화번호, 하는 일이 적힌 종이를 아이들에게 돌리면서 확인 사인을 하라는 행태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며, 지식위주의 전문직이 되는 것만이 이상적인 삶이라는 풍토도 없어져야한다.
공정, 공평하고 정당하다는 뜻이다. 어릴적 공정하게 해야 한다,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썼는지 생각해보면, 놀이터에서 흔히 하는 술래잡기 놀이를 해도 룰을 잘 모르는 친구는 한두 번 실수해도 바로 술래가 되지 않는게 공정한 것이었고 다리나 손이 불편한 친구는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공평한 것이었다. 축구를 하는데 룰을 어기면 공평하지 않은 것이었고, 공부를 못 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차별 대우를 하면 공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 현실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경쟁에 부딪히고 그 중에서 뒤쳐진 사람들과 승리한 사람들을 서로 다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들과 섞여서는 안됐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오고, 나와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가진, 비슷한 환경에 놓였던 사람들만을 만나게 된다. 내가 아닌 이웃들이 살아가는 삶, 나와는 다른 환경에 놓였던 사람들의 삶은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된 채 어른이 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나와 가장 강력하게 사회의 ‘공정’을 주장하고 있는 멋진 세대이다.
하지만 최근의 ‘공정 아젠다’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더욱 본질적이고 핵심이 되는 부분이 아닌 사건 하나하나의 잘 잘못 만을 따지며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부정의한 방법으로 공정하지 못한 특권을 얻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밥그릇이 빼앗기는 것만큼 급한 일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 근간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공정 한가라는 질문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만약 생각했을 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왜 그러한 불공정함이 일어나는지, 그러한 불공정을 타파하기 위해 지금의 청년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지금의 부조리를 바꿔나가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청년세대가 강조하는 ‘나의 이익’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세상, 그리고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 1부: https://walkingwithus.tistory.com/790?category=194946
참고문헌
『e-나라지표기준 중위소득 추이』,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62¶m=003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https://www.korea.kr/news/policyBriefingView.do?newsId=156440000
『국가지표체계, 고등교육 이수율』,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8024
『매경닷컴-고3 수험생 줄자…대학진학률 79.4% 최고』,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1/01/46266/
이화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청소년 노동인권 상황 실태조사』, 2020년도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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