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6 자몽 연구보고서의 두 번째 이야기 많이 기다리셨죠?^^
지난 시간에는 연구 배경과 청소년들이 심리정서치유 과정에서 갖게 되는 저항의 이유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의미 있는 치유의 순간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리고 “청소년과 함께하는” 심리치유과정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미 있는 치유 순간은 어떻게 찾아왔나?
우리가 만난 청소년 중에는 다행스럽게도 선물처럼 찾아온 좋은 치유작업자와의 만남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전형적인 상담․치료는 거부하면서도 자기 자신과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싶어 했고 알아차리는 기쁨을 경험하기도 했다.
1. “같이 손 붙잡고 우시더라고요” - 마음을 여는 계기
청소년들이 심리정서치유 프로그램보다도 친구나 자립현장 활동가/실무자들과의 대화에서 더 큰 위안을 얻곤 한다고 입을 모으는 까닭도 그들이 ‘손 붙잡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치유작업의 모든 순간에 손을 붙잡거나 같이 울어주는 경험이 있어야만 청소년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아니다. 치유작업자인 남일량은 “공감하는 척,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섣부른 공감은 오히려 역반응을 불러오기 쉽다. 치유작업자 이두현 역시 정직한 소통을 강조했다.
“(생략)..근데 선생님이 상담하다가 제가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털어놨을 때 같이 손 붙잡고 우시는 거에요. 그 때부터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상담회기) 중간쯤이었던 거 같아요. 그전까지는 계속 경계했죠. 다 얘기를 안했고, 쉼터에 사는 애들만 봐도 선생님한테 다 얘기를 다 안해요. 항상 뭔가 숨겨놔요.” - 전지예(가명)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척은 없습니다. 정직하게 정확하게 소통하는 거예요. 난 선생님이니까 참고 그런거 없어요. 어떤 아이라도 정직하게 소통하면 아이들이 열어요.” - 이두현(치유작업자) |
2. “내가 원할 때, 내 방식대로” - 자율성에 대한 요구
만나는 시간, 진단검사지의 목적과 쓰임에서부터 상담 내용의 기록과 보관, 정보의 공개 범위, 치유의 목표 설정, 종결의 시점까지 모든 과정에서 내담자와 하나하나 의논하면서 약속을 정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치유과정이고 치유작업의 윤리이며 치유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기도 하다. 치유작업자 남일량은 치유작업자가 어떤 목표를 갖고 택하는 행동의 의도를 청소년과 공유할 때 협력적 동맹관계가 깨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3. “나랑 맞는 사람” - 개별성에 대한 존중
나랑 맞는 친구와 관계가 더 깊어지듯, 청소년들은 상담에서도 성향과 맞는 사람이나 당시 내가 필요로 하는 걸 채워줄 수 있는 치유작업자를 만나길 원했다. 내담자인 청소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은 원칙이지만, 청소년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기 힘들어 할 때 그것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치유작업자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 작업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내담자인 청소년들이 가진 성향이나 놓인 상황을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상담을 해주는 스타일이 달라요. 우선 얘기를 둘 다 들어주는데 한 명은 ‘어, 그래?’ 위로를 해주면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힘들었겠다.’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고. 근데 저는 위로를 받고 싶은 성격이 아니라 저는 약간 해답을 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 정유현(가명) |
4. “때가 됐다 안 됐다 보여요” - 각자의 시간에 대한 존중
청소년에게 심리치유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도 청소년들 각자의 호흡을 존중하는 일이 중요하다. 쉼터와 같은 자립지원기관에선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일괄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각자가 내 문제도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문제도 들을 수 있는 상태인지, 집단 안에서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5.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는” - 동등한 존재로 마주하기
상담자가 친구와 똑같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아질 수도 없다. 우리가 만난 청소년들은 ‘상담자 : 내담자’, ‘선생님 : 청소년’의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애쓴 상담자와의 만남을 좋은 기억으로 떠올렸다. 이의진은 누구는 묻고 누구는 대답만 하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상담자와 서로 이야기를 나눈 과정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그 사람이랑은 좀 괜찮았던 거 같아요. 이제 기억나네. 그 사람이 제일 좋았어요. 그 사람이랑 그림으로 시작하기는 했는데 장난감으로 놀고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까 교환일기를 쓰게 됐어요. 내가 갖고 있는 날에는 내가 쓰고 샘이 답변을 쓰고, 샘이 갖고 있는 날에는 샘이 쓴 다음에 나한테 주고. 자기 얘기도 쓰고, 자기도 오늘 있었던 얘기 쓰고. 공부방에서 연결해준 상담 선생님이었어요. 나만 말하지 않고 상대방도 나를 믿고 말해주는, 서로 이야기하는... 그래서 친구가 좋죠.” - 이의진(가명) |
6. “틀에 갇히지 않게” - 상담실 또는 프로그램 밖에서의 변화
청소년들이 테이블을 마주보고 앉는 상담이나 구조화된 프로그램보다 틀에 갇히지 않은 만남을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전형적인 상담구조가 요구하는 정기성과 형식성에 대한 반감에서부터 자기 힘으로 변화를 시도하고픈 자율성에 대한 요구, 그리고 세상이 아직 신뢰할 만하다는 믿음을 회복시켜준 일상적 지지관계는 상담실 바깥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발견까지 여러 이유가 중첩되어 있다. 그렇다고 치료실에서의 상담이나 구조화된 프로그램이 쓸모없다고 볼 수는 없다. 전문적인 치유의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도 있다.
다만 청소년 심리지원사업을 구상할 때 고정된 틀로만 접근하지 않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사)여성인권동감이 상담이나 치료라는 말 대신에 ‘나로 살기’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늘푸른자립학교가 상담 대신에 ‘데이트하러 갈래?’라는 자기만의 언어를 발견하려 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심리정서프로그램보다 더 치유적 효과를 갖는 것은 오히려 일상적 지지 체계일 수 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심리치유, 무엇을 더 질문해야 하는가
1.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
청소년들이 상담․치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와 의미 있는 치유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존엄한 존재로서 존중받고 싶은 그/녀들의 열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치유의 목표가 존엄의 회복이라면 증상이나 환자로만 취급된 경험 속에서 치유가 가능할 리 없다.
비청소년뿐 아니라 청소년도 치료 대상이 아닌 자율성을 가진 주체로 존중받을 때 자기 안의 고유한 힘을 (재)발견하고 삶을 재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리치유기관은 물론이고 심리치유프로그램을 기획․섭외하는 자립현장도 해당 프로그램이 청소년에게 안전하고, 투명하며, 자율성을 존중하고, 청소년과 치유자와 상호협력이 이루어지는 과정인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2. 치유작업자들과 ‘치유적 공동체’는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
치유작업자 최현정이 소개한 ‘다층‧통합적 심리사회 지원’ 모형(아래 그림)을 보면 특수심리치료나 적응 증진을 돕는 심리상담이 차지하는 역할은 일부에 불과하다. 특별한 심리치유가 필요한 청소년도 있지만, 대다수 청소년에게 더 필요한 관계는 치유적 효과를 가진 일상의 지지 체계다. 지지 체계가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청소년을 지원하는 실무자/활동가들의 노동조건을 비롯하여 이들을 위한 돌봄지원체계도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듯 심리정서지원사업은 청소년-치유작업자(치유센터)-지지공동체(자립지원기관)가 통합적인 치유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공동체를 만들고 치유자/실무자를 위한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기관이나 개인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정책적 지원책을 만들어내는 일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3. 치유의 목표로서 ‘자존감’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자존감이라는 말을 어떤 맥락과 의미체계 속에서 사용할 것인가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위기의 ‘결과’가 아니라 위기의 ‘원인’으로 올라서곤 한다. 또한 단지 개인의 자존‘감’(感)이 높다 낮다 차원을 넘어서, 사회가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자존’ 또는 ‘존엄’을 보장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한 여성이 오랫동안 남성에게 순응하고 그의 필요를 돌보고 그의 일을 발전시키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여기고 그 과제들을 수행하는 것이 그녀에게 큰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준다면 주관적-심리적 차원에서 그녀의 자존감은 높을 수 있다. 주관적-심리적 차원에서 자아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의 존엄과 권리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오히려 자존감이 결여된 것이다. - <품위있는 사회>의 저자 아비샤이 마캘릿 |
자존감의 ‘주관적-심리적 차원’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도 함께 고려할 때 자존감은 더 풍성하게 이해될 수 있다. 반전(反戰)운동의 맥락에서 외상(트라우마) 개념이 처음 출현했듯, 청소년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회복을 지원하려는 치유작업 역시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반대하는 운동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으로 글을 맺으며, 이 연구가 청소년 자립지원현장을 뛰어다는 실무자/활동가들에게 부담을 더 짊어지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이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청소년들에게 짐작보다 훨씬 큰 치유적 힘을 안겨주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기를!! 청소년들이 보여준 감각과 통찰이 심리정서지원에서 우선되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이를 바탕으로 더 힘있게 치유작업자들과 정책부서에 변화를 요구할 목소리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청소년 자립지원현장에서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심리정서지지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든 실무자/활동가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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