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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함걷아가 만난 사람들

[인터뷰] 응답하라 2017, 응답하라 122봉사단

by 함께걷는아이들 2017. 12. 15.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세상. 요즘에는 동네 주민들끼리 잘 아는 경우가 드물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을 동네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고 우연히 이웃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적막 속에서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된다. 큰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 열풍을 일으킨 이유는 우리들 마음속에 이웃들과 정답게 지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웃의 얼굴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요즘 세상에 ‘응답하라 2017’을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주민들이 같이 봉사활동을 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122봉사단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날씨가 매우 쌀쌀했던 11월 29일, 왠지 모를 따뜻함이 묻어나는 122봉사단을 만나 보았다.

 

 


  122봉사단은 모 주민들도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서로 서먹한 상태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웃들이 우연히 구청에서 실시하는 마을 공동체 사업의 일환인 아파트 122동 주민들이 모여 만든 봉사단체이다. 2016년 초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따끈따끈한 신생 봉사단체이다. 처음에 이 아파트의 부모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서로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열 명의 아기 엄마들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뭉쳐 122봉사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122봉사단이 어떤 봉사활동을 할지 구상하다가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심한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봉사단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중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끼가 정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는 밥을 제대로 챙겨먹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임을 알게 되었다. 한 봉사단원이 신림의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버스(이하 'EXIT 버스‘)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배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와 그 때부터 EXIT 버스와 봉사단체로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열 명으로만 시작했던 122봉사단은 현재는 45명 가까이 인원이 증가하였고 작년까지는 EXIT 버스에 한 달에 한번만 밥을 제공했었는데 올해부터 두 번으로 늘어나면서 활동량도 두 배로 늘게 되었다.


  사실 마법처럼 열 명이 모여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으기까지 봉사단체를 처음 구상한 두 명의 노력이 있었다. 두 명의 주민이 봉사단체를 같이 하자고 아기 엄마들에게 권유했을 때, ‘내 집 밥 해먹기도 버겁다’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당근 두 개 써는 정도의 힘만 들이면 함께 할 수 있다는 말로 설득해서 차츰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122봉사단을 꾸린 한 봉사단원은 “혼자 많은 양의 달걀말이를 만들려면 힘이 들지만 당근 써는 사람, 파 써는 사람, 햄 써는 사람과 달걀을 풀어 부치는 사람, 그걸 정리해 담고 설거지할 사람을 다 따로 정한다면 각자 조금의 노력으로도 많은 양의 요리를 해낼 수 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열 명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122봉사단의 활동을 보아도 여러 가지 나물이 어우러져 비빔밥이 되듯 여러 명의 작은 정성이 모여 아이들에게 보낼 음식이 완성되고 있었다. 봉사활동은 여유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노력들이 함께 모이기만 한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122봉사단이 보여주고 있었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겠다는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는 봉사활동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열 명만 밥을 지었던 초창기에는 밥을 짓는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다. 한명의 봉사단원 집에서 고등어 100마리를 튀기다가 전기가 나가기도 했고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이례적인 양의 음식을 만들다 보니 봉사단이 반찬을 만드는 날이면 온 동네에 반찬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2년째에 접어들면서 아파트에 쓰이지 않는 공간을 바꿔서 음식 만드는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고 각 봉사단원들에게 볶기, 썰기, 포장 담당 등 전문분야까지 생기게 되었다.


  122봉사단은 EXIT 버스 지원 활동뿐만 아니라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에서 배식을 해주는 일까지 담당하며 활동 영역을 확장하였다. 122봉사단원들은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땐 자신들이 탈북 청소년들에게 베푸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다고 강조했다. 한 봉사단원은 “탈북 청소년들에게 배식을 하러 가면서 그들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사회 문제를 내 일처럼 여기게 된다. 스스로 틀을 깨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동네 밖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지저분하고 오래된 도서관에 있는 책을 직접 다 꺼내서 닦는 등 아파트 공동생활에도 큰 일조를 하고 있다.


  반찬을 지원해주는 122봉사단원들에게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는 점은 아이들이 밥을 잘 먹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EXIT 버스에서 아이들이 밥을 다 먹고 빈 그릇을 찍어 보내주는데 그 사진을 보는 것만큼 보람된 순간이 없다고 말했다.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이에 대한 대답에서 122봉사단의 유쾌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저희가 밥을 짓고 너무 맛있어 보여서 먹고 싶을 때 힘들어요!”

  122봉사단원 모집은 거의 주민들끼리의 권유로 이루어진다. 밥 짓는 봉사활동은 아기 엄마들에게는 장벽이 없는 활동이기 때문에 봉사단원들은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권유한다.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선뜻 참여하지 않을 것 같지만 보통 참여를 권유하면 대부분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응해준다고 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항상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고 말했다. 한 봉사단원은 항상 수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봉사단체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동시에 봉사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며 봉사에 대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들과 같은 봉사단체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혀주었다.

 

122봉사단원이 준비한 음식과 선물/ 맛있게 먹는 청소년들


  122봉사단은 봉사단원들에게 봉사단체 이상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었다. 우선 122봉사단은 하나의 주민 커뮤니티가 되어 동네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특히, 아기 엄마들끼리의 네트워크가 끈끈해져 아이들에 대해 공동육아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어느 집 자식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동네에 사는 모든 아이들의 이름까지 알게 되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옛 속담을 실천하는 동네가 되었다. 또한 봉사활동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은 엄마이지만 남편과 아이들로부터도 간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어 가족 전체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엄마들이 밥을 짓고 있으면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재료 심부름을 하기도 한다. 122봉사단을 계기로 남편의 육아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아이들은 나눔과 배려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남편과 아이들의 간접 참여는 122봉사단에서 바자회를 개최했던 순간에 빛을 발했다. EXIT 버스 청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바자회를 연 적이 있었는데 엄마들이 바자회에서 물건을 파는 동안 남편은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도 필요한 심부름을 해주면서 바자회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좋은 일은 좋은 일 자체로만 끝나지 않는다. 좋은 일에서 나오는 밝은 빛은 계속 퍼져나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122봉사단이 짓는 밥은 봉사단원 본인들, 그들의 가족들, EXIT 버스 아이들,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먹이고 있었다. 122봉사단이 주는 사랑의 밥이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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