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26일 2020 NPO 파트너 페어와 국제 컨퍼런스에서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가 ‘세션 2’의 기조연설을 담당하였다. 전치형 교수는 “우리는 대면하지 않고도 연결될 수 있을까 : 테크놀로지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우리는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무엇을 잃게 되었는지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역할과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에 그의 강연 내용을 들려주고자 한다.

 

  2016년 겨울 광화문의 촛불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대면하면서 광장에 함께했다. 그리고 2020년 여름 광복절에도 또 한 차례의 큰 집회가 있었다. 2016년의 집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했던 행위이자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기여했던 상황으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 2020년 광복절 집회는 감염의 위험을 증가시킴으로써 공공의 건강을 위협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는 목적을 불문하고 광장에서의 대면은 위험한 것이 되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전까지 광장에 모일 수 없을 것이다. 대면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이 ‘광장의 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광장의 위기’ 혹은 ‘대면의 위기’는 공동체가 앞으로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코로나19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라 발언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연대’에 대해 가져온 생각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흩어짐으로써 건강하게 살아남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을까?’, ‘흩어진 채로도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고, 연대하고, 새로운 질서를 도모할 수 있게 될까?’,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우리의 일차적인 반응은 각자 집에서 머물고 SNS를 통해 서로 연결함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든 유지해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위기를 견디고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모든 모임을 온라인으로 전환함으로써 여전히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연결’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행위인지 묻게 된다. 광장의 대면을 자제하고 테크놀로지를 통한 연결을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감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를 통한 강한 또는 느슨한 연결은 광장의 대면을 얼마나 대신할 수 있을지.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뜻하는 바가 무엇일지. ‘만약 2016년 당시 모든 사람들이 집에 머 물면서 스마트폰으로 연결해서 자기 의견을 표출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미 광장이 단순히 ‘연결’의 가치를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SNS나 배달 플랫폼 등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비대면 연결, 감염의 위험이 적은 안전한 연결이 시민사회를 유지시켜줄 수 있을까? 음식과 생필품을 조달하는 행위는 자가격리된 상태에서 스마트폰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배민’이나 ‘쿠팡’ 등 배달을 맡은 사람과만 접촉하지 않으면 우리는 테크놀로지에 거의 100%를 의지한 비대면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음식과 생필품을 조달하는 것 외에도 삶은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문제들을 테크놀로지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해결할 수는 없다. 또 어쩌다 가능하다고 해도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즉, 우리가 각자의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고민은 ‘테크놀로지로 대면 관계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테크놀로지를, 어떤 비율로 사용하여 우리의 사회적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이다. 나와 상대방의 처지에 맞는 테크놀로지, 안전을 보장하되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테크놀로지, 공동체의 지속을 돕는 테크놀로지를 적절한 비율로 사용하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이다.

 

 

코로나19 시대의 학교
서울 시립교향악단

 

  예를 들어 코로나19 시대의 학교는 그런 고민이 치열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다. 코로나19 확산이 매우 심할 때에는 모든 대면 접촉을 막기 위해서 학생들이 전혀 등교하지 않도록 하고 오직 IT 기술에 의존해서 정보와 지식을 전달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때는 학교에 모이기는 하되 그 학생들이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가지 형태의 장치와 배치가 만들어졌다. 이때에는 단지 IT 기술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학교는 적당한 숫자의 학생들을 학교에 나오게 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도록 교육하고 적당한 수준의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가운데 학교교육의 목표를 놓치지 않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학교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만약 우리가 학교에서 지식의 전달만을 원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비대면 학교를 상상할 수 있고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원하는 것이 ‘정보와 지식의 전달’만일까? 또 다른 어떤 것을 우리가 원하고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는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테크놀로지는 학교와 공교육이 붕괴하는 것을 겨우 막아주고 있을 뿐이다.

 

  비슷한 고민이 공연장과 무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공연에서 볼 수 있다. 서울시향은 한동안 멈췄던 라이브 공연을 조심스럽게 재개했다. 오케스트라와 청중의 거리, 청중 간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대 위 연주자의 배치까지 모두 새로 고민해야 했다. 악기의 특성에 따라서 위치와 거리를 다르게 하고, 가림막을 설치하고, 그에 따른 소리의 변화를 계산해야 했다.

 

  우리가 공연에서 음악 소리의 전달만을 원한다면 그것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음악을 비대면 상황에서 즐겨 왔다. 그러나 음악의 재생이 공연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면 우리가 공연에서 기대하는 다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테크놀로지로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연에서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테크놀로지를 통한 연결이 제공하는 것은 정보의 전달, 소리의 재생, 의견의 교환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에서 정보 전달 이상을 기대하고, 공연에서 음악의 재생 이상을 기대하고, 광장에서 의견 교환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것에 대한 합의는 새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분명한 건 우리가 자리를 같이 할 때에 비로소 무엇인가를 새로 도모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음압병실의 모습
2020년 광복절 집회 당시와 그 이후의 광화문 사진

 

  서로 격리된 채로 자리를 같이 하는 것 이것은 분명히 불가능한 조건이고 모순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 모순적인 상황이 이미 여기저기서 지속되고 있다. 서로 떨어져 있지만 어떻게든 연결하고 소통함으로써 자리를 같이 하고 무엇인가를 해내려는 시도 또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음압병실의 모습이 우리의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음압병실은 격리의 공간인 동시에 의료진이 함께 자리하면서 소통하고 일해야 하는 공간이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동료들이 따로 또 같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통상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전화를 걸기도 어렵고 소리도 지르기 어렵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스마트폰은 이들을 연결해 주는 테크놀로지가 될 수 없다.

 

  대신 이렇게 유리창을 터치스크린 삼아서 필담을 나누고 있다. 최신 테크놀로지가 소통을 돕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아주 오래되고 아주 간단한 기술, 즉 벽에 글을 쓰는 것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유리에 글씨를 씀으로써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같은 자리에 서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참여한다. 이들은 비대면인 동시에 대면인 조건을 헤쳐 나가고 있다. 음압병실이 보여주는 것은 코로나19 시대에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새로운 장치, 새로운 핸드폰 새로운 앱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압병실의 간호사들은 유리창 너머 상대방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공통의 목적을 정확하게 공유했기 때문에 이처럼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조건에서 필요한 새로운 연결과 소통, 새로운 자리함의 방식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테크놀로지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를 함께 하면서 무엇을 함께 이루어야 하는지 점검하고 합의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물론 음압병실에서의 소통과 광장에서의 소통은 무척 다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루빨리 음압병식을 벗어나 광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음압병실 같은 현실에서 새롭게 소통하고 자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익힘으로써 언젠가 우리가 광장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지금보다 더 나은 소통과 자리함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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