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데, 우리가 수다라도 떨며 자꾸 이야기를 해야 조금이나마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요?”
10월 6일 수요일, 청년맞춤제작소in오산에서 ‘집’을 주제로 한 수다회 <나에게도 집이 생겼다!>가 열렸습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청주넷)가 기획한 이번 수다회는, 올해 8월에 진행된 내부 수다회에서 청소년활동가들이 나눴던 주거약자로서의 경험과 ‘청소년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나누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찾아가는 수다회, 그 대망의 첫 회이자 청주넷에서 활동하는 제작소 청년 두 분이 직접 기획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청소년기부터 길고도 지난했던 주거약자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나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마련한 십여 명의 청년분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청년들은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된 소감과 고민을 나누며 공감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수다회의 문을 연 것은 현재 청주넷에서 활동 중인 두 청년활동가입니다. 이들은 내 집을 마련하기 전,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행동에 제약을 받아야 했던 억압된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중 청소년쉼터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한 청년은 ‘쉼터’를 ‘작은 학교’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면서 ‘365일 반 애들이랑 목욕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잔다고 상상해보면 어떨 것 같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도 모두와 친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가족이라도 사이가 안 좋을 수 있는 건데 늘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요구받는 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 없이 억지스러운 화해를 강요받았던 순간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크고 작은 자유들을 포기해야 했던 그는, 현재 동주민센터에서 우연히 알게 된 LH 청년 주택을 신청해 시설이나 고시원 같은 비적정 주거가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집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혼자 집을 구하는 일에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한 청년은 집 구하기 경험이 있는 지인과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면 보일러나 수압 등의 항목들을 좀 더 꼼꼼하게 확인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청년은 갑작스러운 인근 지역의 재개발 때문에 몇 개월 만에 집을 나와야 했던 일과, 가계약이 파기되어 한 달 생활비가 날아갔던 일을 설명하며 당시의 난감했던 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된 두 청년은, ‘내 집’을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으로 소개했습니다. 현재 그들은 자신만의 집에서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들을 하며, 소소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 밤에 공부하고 싶어도 자야 하니까 못 하게 해요. 혼자 사는 지금, 씻고 나서 머리가 촉촉하게 젖었을 때 달빛을 받으며 책 읽는 게 좋아요.”
혼자 생활하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청년은 수저, 세제, 화장지 등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자잘한 물건들도 의식적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합니다. 또 그는 공과금은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내 삶을 잘 돌보겠다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청소년도 쉼터와 같은 시설이 아닌, 지금과 같은 ‘집’에서 살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은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도 있지만 살면서 하나하나 터득해나갈 수 있다’며, ‘자립(독립)이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두 청년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본인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한 청년은 “주거 취약계층으로 LH 전세 임대가 되더라도 살고 싶은 집 구하기가 어려워요. 전세대출금 1억 범위 안에서도 좋은 집들은 LH 매물로 안 나오니까요. 어렵게 찾은 매물은 대부분 반지하이거나 오래되고 낡은 집들이에요."라며, 한정적인 선택지를 주고 그 선택의 책임을 고스란히 본인에게 떠넘기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다른 청년은 본인의 집 구하기 경험을 소개하며, 오늘처럼 청년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기를 소망했습니다.
한 청년이 ‘서울은 원룸이 2억이니 집 구할 때 참고하라.’고 조언하자, 여기저기서 공감하는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른 청년은 도어락에 누군가 강제로 문을 열려고 했던 흔적을 보고 오싹했다며, 혼자 살 때 겪는 무서운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벽에 심하게 퍼진 곰팡이 때문에 도배와 이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그는, 집안에서는 휴대폰도 잘 안 터져서 조만간 이사하려고 계획 중인데 너무 막막한 기분이 든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청년은 벌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를 들은 다른 청년들은 격하게 공감하며 너도나도 나서서 본인만의 해충 퇴치 비법을 전수해주었습니다.
한 청년이 집을 어렵게 마련했지만, 집에서 겪는 몇 가지 어려움 때문에 집에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작게 푸념하자, 그 말을 듣던 다른 청년이 “저는 집에 들어갔을 때의 기분이 중요해서 몇 가지 소품을 활용해요. 조명과 러그로 아늑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죠.”라며 본인의 집 꾸미기 노하우를 알려주었습니다. 이에 누군가 집 꾸미기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궁금해하자, 그는 적금은 적금대로 따로 빼놓고 그때그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산다고 답했습니다. ‘자취’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반려동물’ 이야기도 등장했습니다. 한 청년이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며 다른 청년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반려동물과의 교감은 행복감을 주지만 키우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든다는 점에서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빨리 수급자를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면 나라에서는 바로 수급을 끊어버려요. 그럼 생활 자체가 안 되니까 뭔가 노력하기가 힘들어요.”
“증명하게 하는 게 화가 났어요. 그런 게 권리로서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집주인이나 시설 관리자의 갑질에 대해서도 굉장히 분노하게 되는데, 어떻게 사람을 강제로 내쫓을 수 있지 이런 거에 대해서 우리가 굉장히 분노하고 싸워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날 청년들은 집을 구하고 또 그 집에서 직접 살아보면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공유하며,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우리 사회의 관점과 정책에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급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에 제한선을 두어야 하는 이상한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수급자임을 끊임없이 증명하면서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이라 되뇌어야 하는 낙인에 분노했습니다. 집을 구할 때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전문가의 도움에 쉽게 접근할 수 환경이 갖추어지기를 소망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은 쉼터 근무자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역할이 부여됨으로써 야기되는 수직적인 권력 구조를 문제 삼고, 주택의 기본 시설을 점검하는 ‘관리자’와 다양한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고 고민을 나눌 ‘상담자’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언뜻 가벼워 보이는 이들의 수다 속에는 홀로 집을 구하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두려움과, ‘내 집’에서 누리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즐거움, 그 집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등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렇게 청년들은 자유롭게 수다를 떨며 공감대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팍팍한 현실을 스스로의 탓으로만 떠넘기는 일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청주넷은 오늘처럼 청소년들이 함께 ‘집다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우리 사회가 청년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해지는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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