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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는아이들 소식/청소년 사업

비상구에서 지은 ‘누구나’의 집: 엑시트 X 자립팸 10년의 기록

by 함께걷는아이들 2021. 12. 21.

북콘서트

 

▷ 엑시트? 자립팸? 앨리스?

 

 지난 11월 26일, Zoom을 통해 엑시트와 자립팸의 10년을 기록한 『비상구에서 지은 누구나의 집』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1부는 자립팸 청소년이 말하는 ‘탈시설과 청소년 주거권’ 토크쇼로 진행되어 청소년들이 직접 자립팸과 '집다운 집', 앞으로의 대안적 주거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2부는 10주년 구술 기록집을 만든 배경, 기록집에 담긴 엑시트와 자립팸 활동원칙 등에 대해 인터뷰 참여자들이 패널로 나와 북 토크를 펼쳤다. 인권교육센터 ‘들’의 개굴이 사회를 맡고, 엑시트와 자립팸의 이야기를 기록한 인권기록센터 ‘사이’의 희정, 자립팸에서 홀로 서기한 출국앨리스 겸 책을 공동 기록한 곰곰, 자립팸의 한낱, 엑시트 인성, 함께걷는아이들 미혜, 관악교육복지센터 선웅 등 10년의 산 증인들이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했다.

 북 콘서트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엑시트와 자립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앨리스’나 ‘입국’, ‘출국’ 등의 용어들이다. 우선 엑시트(EXIT)는 움직이는청소년센터로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과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이 거리의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 만든 기관이다. 38인승 버스 내부를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해 주1-2회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고, 이들의 다양한 위기 상황과 문제들에 함께 대처해 나갔다.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이하 자립팸)는 엄격한 규칙과 프로그램으로 짜인 시설과 달리 탈가정청소년들을 위한 ‘집다운 집’을 만들고자 2013년 개설된 공간이다. 자립팸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하여 입소와 퇴소를 각각 ‘입국’과 ‘출국’으로 칭하며, 거주자인 청소년들은 ‘앨리스’라 부른다. 이들은 보통의 시설과 달리 정해진 규칙이 없는 공간에서 같이 사는 데 필요한 약속을 함께 논의해 정하며, 18~24세의 여성 청소년들이 한 번에 최대 5명, 최장 2년 2개월 동안 함께 살며 자립을 위한 힘을 길러왔다.

 

 

▷ 비상구를 찾아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

 

 “어떤 청소년에게 부모의 집이 편안한 곳이 아니라면 마땅히 사회가 그 이유와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집은 결코 사회구조와 매끈히 분리된 사적이기만 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집이란 모든 사회적 억압이 교차하는 곳이다. 더구나 ‘사적’이라는 이유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드러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p.23)

 

 청소년들이 원가정에서 나오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엑시트는 그들의 이유나 사정을 묻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 집을 나와야 하는 청소년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한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거리 청소년에게는 당장 살아남기 위한 기반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거리 청소년의 적은 배고픔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경제적 능력의 부족으로 성매매에 내몰리기도 하며, 통제가 심한 시설을 견디지 못해 여러 군데를 전전한다. 그리고 어른들과 사회는 “양아치들”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 비상구를 찾아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맥락을 폭력적으로 지워낸다.

 엑시트는 이런 청소년들이 모여 쉬고, 먹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자립팸은 엑시트에서 만난 이들에게 가정복귀 혹은 시설밖에 제안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작되었다. 활동가들과 사무실 혹은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던 엑시트의 청소년들은 당장 오늘만 버텨보자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보다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자립팸이 만들어졌다. 엑시트가 청소년들을 재단하거나 ‘관리해야 하는 존재’로 치부하지 않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공간이었던 것처럼, 자립팸은 엑시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자립팸의 청소년들인 앨리스들 또한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렇게 자립팸은 누군가 자신의 집을, 삶을 새롭게 구성하기를 원한다면 그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보장되지 못했던 청소년 주거권을 조금이나마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인 공간이었다.

 

 

북콘서트

 

▷ 통제와 관리가 아닌 ‘권리로서의 돌봄’

 

 “엑시트 공간은 청소년의 것인데 청소년이 지켜야 할 규칙을 활동가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활동하려면 활동가들은 더 많은 책임성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눠야 했어요. 그 공간의 안정이 보장되고 유지되어야 하니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버스출입구 계단에서 자꾸 뛰어내리는 청소년들이 있는 거예요. ... 규칙이 필요한 상황인가? 활동가들 사이에 혼란이 있었죠. 그래서 그날 새벽 2시부터 아침 9시쯤까지 아주 긴 회의를 해서 결론을 냈어요. ‘우리는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p.86)

 

 엑시트 활동가들은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청소년들을 제지하기보다는 그들이 왜 자꾸 뛰어내리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선택했다. 그들은 이렇게 더 많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성장했고 청소년 인권을 실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엑시트의 정신을 공유하는 자립팸 또한 정해진 규칙이 없다. 앨리스들은 원가정을 나온 이후 대부분 시설 경험을 갖고 있는데, 외부에서 “자립팸이 시설과 뭐가 다르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할 말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강력한 차이는 시설에는 ‘규칙’이 존재하지만, 자립팸에는 ‘약속’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규칙은 지키지 않으면 혼나거나 강제 퇴소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이미 정해져 있어서 거기에 스스로를 맞춰야만 한다. 하지만 약속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조율이 가능하다. 앨리스들은 약속을 못 지킬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립팸에서 나가라고 강요받지는 않으며, 무언가를 제안할 때도 “이거 해”가 아닌 “이거 해볼래?”라고 물어봐서 의사를 존중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립팸이 내가 나일 수 있는 공간일 수 있는 이유가 규칙이 아닌 약속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들은 ‘권리로서의 돌봄’을 위해 청소년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개개인의 선택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자립팸은 또한 앨리스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시도를 했는데, 이에 대해 앨리스들은 만족을 표했다. 한 앨리스는 원래는 수급 신청을 하기 위해 주민센터에 가서 초면인 사회복지과 직원 분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증명해야 했기에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었었는데, 자립팸은 기본소득을 받았다고 해서 통장내역을 뽑아오라고 권유하지도 않고, 어떠한 조건이나 증빙서류도 요구하지 않아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자립팸의 기본소득 제공이 ‘갑과 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았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의 실현이 청소년 인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행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의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주는가’의 과정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청소년 인권, 관념과 실제의 간극

 

 “평등이란 엄연히 존재하는 벽을 마치 없는 척 연기하는 일이 아니다. 그 벽을 섬세히 감각하는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복잡한 구조를 인식하고 우리의 서로 다른 위치를 살펴야만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조직할 수 있다. 평등하게 만나기란, 그저 나의 권위를 내려놓기만 하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쉼 없는 ‘균형 잡기’에 가깝다.” (p.78)

 

 활동가들은 청소년 인권이 그저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처럼 단순치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선 청소년은 나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권력구조 안에서 약자지만 청소년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가 있다. 남성 청소년과 여성 청소년 사이, 청소년들마다의 경제적 배경이나 처한 어려움의 내용,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 장애, 인종이나 문화적 배경 등 여러 요소가 교차해 셀 수 없이 많은 고유한 삶들이 만들어지며 이들 간의 역학관계는 단순화하기 어렵다. 청소년쉼터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을 받아주지 않거나, 그 안에 들어가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문제는 쉼터나 시설에서 청소년들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거주권이 실현되는 것이라는 착각에 가려지기 십상이다.

 청소년 내부의 차이뿐 아니라 활동가와 청소년 간의 권력 관계도 존재한다. 이들 간에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나이의 권력 관계에 더해 지원받는 자와 지원해주는 자 사이의 권력관계와 실질적 권한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활동가들은 지원하는 자와 지원받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관계로 그들의 활동을 정의한다. 또한, 끝없는 대화와 질문, 평등에 대한 ‘집착’으로 이런 권력의 간극을 줄이고 청소년 인권이 어떤 방면에서든 침해받지 않을 수 있는 이상적인 방안을 도출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엑시트와 자립팸의 활동가들은 청소년과 활동가 사이, 그리고 활동가와 활동가 사이 끝없이 인권과 평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던 것을 회상하며 계속되는 질문이 괴로웠지만 그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여 중간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합의가 될 때까지, 활동가들과 엑시트의 청소년들, 앨리스들은 만족할 때까지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는 집요함을 통해 조금 피곤하더라도 차이가 차별이나 인권에의 침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곳이 바로 엑시트와 자립팸이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 시즌1 종료, 시즌2를 기다립니다

 

 “사업 종료한다고 해서 예상치 못하게 올해 5월에 일찍 출국했어요. 출국 후에 좀 더 안정적으로 지내려면 일찍 나가서 지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요. 활동가들이 출국 후 상황을 봐줄 수 있으니까요. 일찍 출국한 만큼 자립팸에서 월세지원을 해주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사업 종료는 갑작스러웠던 것 같아요. 여기 활동가분들도 예산을 구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결국에 안 되니까 저희한테 얘기한 거잖아요. 대한민국 진짜 쪼잔하고 더럽고 그렇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p.38)

 

10년을 끝으로 엑시트와 자립팸이 끝났다. 예산 문제로 사업 지속이 불가능해진 것에 대해 엑시트와 자립팸을 거쳐간 청소년과 활동가들은 아쉬움과 분노를 표했다. 행사 2부에서 청소년과 활동가, 기록자들 너나 할 것 없이 보인 눈물은 이들이 엑시트와 자립팸에 갖고 있던 애정이 얼마나 컸는지 예상케 했다. 이들에게 엑시트와 자립팸은 그저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활동이 아니었다. 이 안에서 청소년들은 사회참여활동을 하며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한 앨리스는 “4.16 실천단 활동을 하며 진짜 사회를 본 느낌이었다”며 이 활동을 시작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사회참여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으며 자신의 세상을 넓혀갈 수 있었다는 소회도 밝혔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주거 불안정이나 일자리 문제가 전반적으로 더 심각해지며 거리의 청소년들은 어느 때보다도 큰 위기에 내몰렸다. 기본적으로 탈학교 탈가정 청소년들에 대한 유의미한 자원도 거의 없으며, 기존에 운영되던 지원기관의 활동들도 코로나 이후로 축소되거나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엑시트와 자립팸의 시즌 1 종료는 아쉬움을 넘어 우려스럽기도 하다. 출국 앨리스이자 책의 공동기록자 ‘곰곰’은 “아직도 거리에는 비상구를 찾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분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 더 다양한 것들을 상상했으면 좋겠어요. 통제와 격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엑시트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비상구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탈가정청소년주거권을 보장하라! 청소년들에게 집다운 집을 보장하라!”라는 외침을 끝으로 엑시트X자립팸의 첫 번째 시즌은 막을 내리지만, 이들은 이제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변화를 직접 요구하는 네트워크로 확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청소년 지원을 넘어 청소년과 어떻게 관계맺어야 하는지, 이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했던 엑시트와 자립팸의 정신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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