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키즈 자료실/위기상황 ㅣ청(소)년

청소년의 자립이란?_1.유동하는 자립

by 함께걷는아이들 2016. 7. 27.

"청소년의 자립"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걸까?

더욱이 위기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의 자립이란것은 가능하기나 한걸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기존의 "자립"이 아닌 위기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자립"이란 어떤것인지 고민했던 자몽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물을 나누고자 한다. 본 글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들이 함께걷는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자몽"프로젝트 참여기관과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발표한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청소년의 자립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1. 유동하는 자립   2. 조건없는 자립  3. 지금 현재의 자립  4. 지속가능한 자립  5. 관계적 자립  6. 주체적 자립

각각의 자립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만나보자. 


"아빠랑 친엄마랑 4살 때 이혼했어. 아빠가 둘째 고모에게 나를 맡겼는데, 한참 신혼 때였고, 그쪽도 애가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완전 눈칫덩이였어. 그래서 좀 많이 시달렸어. 고모부가 그 때는 뭐만 하면 화를 내고, ‘쟤 언제 데려가냐고 소리를 질렀어. 늘 가정 폭력 속에 있어서 고모부의 아이들과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살았어.(...) 그 때부터 감정 표현이 많이 서툴러졌어. (...)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아빠가 나를 데리고 갔는데, 아빠는 이미 (새엄마와) 동거 중이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됐어. (...) 학교에 위클래스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에게 쉼터 입소를 권유했었어. 내가 너무 방치되어 있다고. 그 말을 듣고 우리 아빠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나에게 다짜고짜 친엄마를 소개해줬었어. (...) 고모부랑 살 때도, 집에서 살 때도 맨날 눈치를 보고 많이 불편했어. 학교에서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고 나의 공간이 없고. 너무 힘들었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들어갈 때, (캐나다로) 오라고. 저는 되게 가기 싫었거든요. (친아빠의) 얼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가라고 하니까, 그것도 서울 어디에 있는 데를 가라 그런 것도 아니고 캐나다로 가라고 하니까 더 가기 싫은 거예요. 외할아버지랑 이모들이랑 삼촌이 내 마지막 편인 것 같았는데, 할아버지랑 삼촌들이랑 가라고 하니까 막 배신감 느끼고. 그 와중에 네 아빠인데 왜 안 가냐고. 본인들도 나 키우기 힘들다고.’ 그래서 캐나다를 가게 됐죠. 캐나다 가서 처음 한 달 동안은 아빠 없이 쌩판 처음 보는 동생이랑 거기 새 엄마랑 살았어요. 거의 쥐죽은 듯이 지냈죠. 착하신 분들 같긴 했는데 솔직히 달갑진 않을 거잖아요. 갑자기 그러다가 아빠랑 집을 합치고 살면서 (...)그렇게 한 8개월인가 10개월 지냈어요. (...) (캐나다에 다시 못 간다는 걸) 한국에 와서 알았어요. 할아버지는 처음에 왔을 때 웬일로 왔냐고 그랬어요. 제가 온다는 말도 안 하고 보낸 거였어요. 저는 다 얘기가 된 줄 알았어요."


두 청소년의 경험은 현재의 가족이 결합-해체-재구성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가족이 구성되는 과정에 청소년들은 주도권이나 선택권을 행사하기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다짜고짜”, “갑자기또 다른 구성원과 함께 살게 되고, “딸린 식구이자 눈칫덩이로서 늘 쥐 죽은 듯이주변의 동향을 살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달라진다는 것은 생활 반경이 달라진다는 걸 동시에 뜻한다. 갑작스레 전학 간 학교가 텃새가 심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가족의 불안정성이 관계 전반의 불안정성과 연결됨을 보여준다.


우리가 다양한 경로로 만나고 있는 이른바 위기 청소년위기는 이 유동성에서 비롯된다. 지난 자몽 5월 교육에서 다뤘던 질문들(‘무엇이 가족을 불안정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교육(학교 안팎)에서의 좌절을 만드는가’, ‘무엇이 불성실한/무책임한 일꾼을 만드는가’)이 바로 이 위기의 복합성을 이해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가족도, 학교도, 일터도, 그것을 뒷받침해 왔던 규범들도 모두 해체되는 과정에 놓여있다. 친아버지의 경제력과 친어머니의 돌봄으로 지탱되는 가족은 이제 손에 꼽힐 정도이며, 학교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이 나는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안정적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일터에서의 각종 차별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이러한 양상 속에 불확실한 오늘을 임시적인 대책들로 감당하며 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위기 청소년의 삶이다. 목적의식적으로 학업중단’(학교 중단)대안적 학업으로의 이동’(대안학교, 유학, 홈스쿨링 등)을 결정한 청소년을 제외하면, 대개 빈곤, 가족의 파경이나 가족적 돌봄으로부터의 방임 또는 추방, 학교로부터의 추방(부적응이나 탈락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으로는 불림) 등을 경험하고 있다.



"(19살 때 만난) 파트너가 외로움이 많고, 그 친구도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어서 그 친구도 나를, 나도 그 친구를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함께 살게 되었어. (나이를 속이고) 같이 공장에 다녔고, 고시원에서 살았어. 경제적 압박이 너무 심했지만, 쉼터는 규칙이 많고 답답해서 가기도 싫었어. (...) 우리가 살던 고시촌은 외국인 노동자가 모여 살고 있는 동네였어. 그러다 어떤 조선족 아는 남자가 내 파트너에게 지방에 일을 가게 됐는데 집을 정리하지 않겠다, 그런데 집이 좀 관리가 되길 바란다, 너네 어려운 것 아니까 내가 올 때까지 들어와서 살아라고 제안했고, 같이 사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오케이 하고 그 집에 들어가게 됐어. 그런데 지방에 갔던 그 남자가 망한 거야. (얼마 안 있어서) 다시 올라왔고, 우리는 경제적인 것이 하나도 없고, 살던 고시원은 이미 정리했고. 그러다 어쩌다보니 원룸에 여자 2, 남자 1명이 동거하기 시작했어. 하필 또 안산 지역 공단이 망하기 시작했고,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었어. 일주일에 2~3번 일당 받으면서 일하는 정도였어. 그 남자는 망해서 멘붕이었어. 맨날 술 먹고 들어오고."



위 청소년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 아웃팅으로 인한 학교 폭력, 가정 내 불화가 삼위일체로 몰아친 16살 말에 처음으로 집을 나와 울산으로 갔고, 말 그대로 흘러 흘러수도권인 안산으로 19살에 진입했다. 사흘 정도 머문 쉼터도 있었고, “왔다 갔다” 1년 넘게 머문 쉼터도 있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거나, 애인/친구와 일시적으로 동거하기도 했다. 쉼터가 갑갑해 거리 생활을 한 적도 있는데, 탈가정 후 거리에서의 삶은 안정적 주거 공간의 부재(주거는 이라기보다는 하룻밤 잠을 청하는 곳), 안정적 생활 기반과 소득 획득의 불확실성, 해고와 잦은 이동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열악한 노동 환경, 쉼터 규칙의 엄격함과 통제를 거부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 생활리듬의 불규칙성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녀 주변인들의 삶 역시 임시적이며, 유동적이다. 서로가 불안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함께 함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단단한 결속을 맺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렇기에 불안한 결속은 때때로 배신, ()폭력 등의 형태로 일그러지거나, 깨지기도 한다. 



"(인생에서 크게 바뀌었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나요?) 제일 큰 거는 집을 나왔던 거. 쉼터에 오게 된 거. 쉼터기관에서 나왔을 때. 퇴소하고 갈 데가 없으니까 진짜 막막했던 거 같아요.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나이가 찼다고 나가라고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쉼터에 어렵게 적응을 했는데 다른 데 가는 게 무서워서 맴도는 애들이 많아요. 밖에서 자는 게 너무 힘드니까 쉼터로 다시 들어갔는데 또 새롭게 적응해야 하니까."


위 청소년은 16살에 집을 나와 17살에 쉼터에 처음으로 입소했다. 이후 쉼터에 살거나 애인/친구와 동거를 해오다가 20살이 되는 해 쉼터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자 퇴소했다. 그 후 갈 곳이 없어 거짓으로 성매매여성을 위한 성인쉼터에 들어가기도 했다. 안 그래도 유동적인 탈가정 청소년의 삶에서 쉼터 규정을 어기면 언제든 퇴소조치 될 수 있다는 것, 일정 기간이 지나면 쉼터를 나와야 하고 청소년 자립 지원 프로그램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삶의 유동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퇴소 후에 주로 사는 곳도 고시원과 같은 임시 주거 형태이고 일터도 불안정(조건이 열악하거나 쉽게 해고당하거나 폐업으로 실업하거나)한 상태이며 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도 휴학과 돈벌이를 오가는 삶을 살고 있다. 최일심(2013)의 연구에서도 연구 참여자 10명 중에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한 이는 겨우 1명뿐이었다. 매우 불안정한 경제적 자립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분의 불안정성이 동시에 수반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데 급급하면서 동시에 앞으로는 나아질 거야라는 자기최면으로 지금보다 나아진 미래를 막연히 기대하는 삶. 또는 그러한 기대조차 사치가 되는 삶. 이것이 유동성의 시대에 우리가 강요받는 삶의 양식이 아닐까. 그러나 충실한 오늘 하루 없이 나아진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삶은 과거-현재-미래로 딱딱 끊어지지 않으며, 수많은 오늘이 쌓여 내일이 만들어질 뿐이다. 분절이 아닌 연속으로서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안정성이다. 안정적인 주거, 소득, 관계, 물적인적 자원의 네트워크 등이 위기 청소년 자립 지원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최일심(2013)의 연구 역시 이상의 사례에서 가출청소년들이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자립 지원을 받을 수 없을지라도 사회복지적인 접근과 사회적 자원이 자립의 토대를 마련해준다면 성공적으로 자립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고 이와 같은 자립지원 체계들이 구축되고 확산되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삶의 안정성을 고려해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고민할 때 중요한 건 그/녀들의 삶의 역사와 그로 인한 생활패턴을 탄력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청소년들이 쉼터에 들락날락 하는 행위를 비행의 징표로 간주하거나, ‘순간적인 자유만을 탐닉하는품성의 문제로 해석하곤 한다. 그런데 위의 이야기처럼 사실 청소년들도 거리에서 쉼터로 들어갈 때, 또 쉼터를 나와 새로운 곳으로 가야할 때, 새로운 삶터의 시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새로운 공간과 삶의 형식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 새로운 삶을 스스로 모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유동적 시간을 보장한다는 것의 의미다. 자몽 사업에 참여하는 [커피 동물원]이 새로 일을 시작한 청소년은 오픈(아침 출근)이 아닌 마감으로 업무 시간을 배치하는 것, 중간에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겨 겸업을 하게 될 때 당장의 퇴사보다는 상호 협의 하에 업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시도를 하는 것, [늘푸른 자립 학교]가 들쭉날쭉한 출석률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소수의 인원으로 수업을 꾸리고 각자 개인에 맞춰 진도를 조절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등이 유동성을 고려한 자립 지원의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최일심(2013) [여자 가출 청소년 자립과정 연구 : 청소년 쉼터 생활 유경험자를 중심으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석사논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