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자립"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걸까?
더욱이 위기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의 자립이란것은 가능하기나 한걸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기존의 "자립"이 아닌 위기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자립"이란 어떤것인지 고민했던 자몽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물을 나누고자 한다. 본 글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들이 함께걷는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자몽"프로젝트 참여기관과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발표한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청소년의 자립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1. 유동하는 자립 2. 조건없는 자립 3. 지금 현재의 자립 4. 지속가능한 자립 5. 관계적 자립 6. 주체적 자립
각각의 자립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만나보자.
"무단외박을 해서 퇴소 당했는데 (...) 당시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거는 잘 곳이랑 먹을 거였는데도, 쉼터에서는 친구들을 만나는 걸 포기해야 되니까 나갔던 것 같아요. 내가 의지할 곳은 여기가 아니고, 친구들한테 의지를 했으니까. 핸드폰도 뺏고 연락도 안 되고 외출도 못하고. 너무 짜증나고... 밥 못 먹고 그래도 같이 있으면 즐거우니까. 노상 까도, 하루에 한 끼 먹을까 말까 해도 그게 재미있었으니까. (쉼터에는 그럼 왜 다시 들어갔어요?)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배고프고... 이제 자리를 잡고 뭔가를 하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 했으니까. 내 의지가 약하니까 사람들이 필요했었고.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저한테 소개한다면 뭐라고?) 자립할 준비를 할 수 있는 곳. 규정에 얽매여있는 게 아니고, 우리들끼리 만들어가는 곳. (내 집 같아요?) 네. 쉼터에서 마음을 잡고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어차피 난 여기서 나갈 거고, 그런데 내가 여기서 뭘 할 필요가 있나? 그래서 신경도 안 쓰고 안 도와주고. 대충대충 지내고. 근데 여기서(앨리스)는 내가 이걸 안 하면 나한테 피해가 오니까. 내가 뭘 하는 게 이익이 되는 거니까. 여기 있으면 애들을 만날 필요가 없어. 여기 있으면 재미있으니까. 밖에 나가면 힘들지, 돈 쓰지, 싸움나지. 내가 부족한 걸 계속 채워온 거 같아요.
(어떤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자립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기준에서 자립은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환경이 있잖아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거. 도움이 필요하든 뭐든. 자기 꿈도 있고 의미도 있고. 배우려는 것도 있고. 쉼터에 있는 애들은 여기서 나가면 어디서 지내야 하나가 가장 큰 고민. 80%는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답답하니까 자유를 갈구하게 되고. 그런데 여기는 외박 하라고 해도 안 하잖아요. 쉼터에 있는 애들 보면 공격적이고 예민하고 안정적이지 않은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으니까. 자기 힘 과시하는 애들, 경계하는 애들... 어떻게 보면 폭력 같은 게 일어나는 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쉼터의 분위기, 애들 관리... 사람은 한 번에 안 바뀌어요.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똑같아요.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건 많은 노력과 끈기와 믿음이 필요하죠.
*[이상한 나라 앨리스]는 들꽃청소년세상에서 운영하는 자립팸으로 Exit 버스 활동과 연계되어 운영되고 있음.
자립팸 ‘이상한 나라’에서 생활하는 활동가 개미는 <거리현장에서 본 청소년 자립의 사회적 과제>를 발제하며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자립의 상태나, 자립을 위한 개인적인 조건은 사회에 잘 적응하거나 사회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는 개인들의 상태만을 자립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흔히 자립의 영역으로 꼽는 사회성 발달, 일상생활 및 건강관리 기술이 쉼터나 청소년 이용기관에서는 다양하게 규칙화 된다. 예의범절 지키기, 귀가시간 지키기, 욕하지 않기, 금연, 휴대전화 사용 제한 등의 규칙은 이미 일반화 되어 있으나, 이러한 규칙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러한 규칙들이 가장 지원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을 무작정 밀어내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몽실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나랑은 그녀가 활동할 당시 엄격했던 열림터의 생활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며 “규칙을 거듭 어기면 강제 퇴소를 해야 했다. (열림터에) 오래 살면서 치유를 하고 여기서 자원을 얻어가는 사람은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자원이 없고 케어가 더 필요한 사람을 쫓아내는 형국이었다.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쉼터 규칙 및 퇴소 조항의 딜레마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가 인터뷰한 청소년(이하 '청'이)은 잘 곳과 먹을 것과 같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을 포기하는 걸 감내하고서도 억압적인 쉼터 규정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사는 삶을 택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다시 쉼터로 복귀하곤 했다. 그런데 쉼터와 같은 규정이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는 반대로 밤낮을 바꾸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엇이 이런 생각의 변화를 만들었을까? 그저 나이가 들고 ‘철’이 들었기 때문일까? '청'이는 사람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스스로 알고 있다.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건 많은 노력과 끈기, 믿음이 필요하다. '청'이의 이 말은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실무자/활동가들을 향해 있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에게 향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 노력과 끈기의 시간은 쉼터의 분위기, 실무자와의 관계, ‘공격적이고 예민한’ 마음 상태를 스스로 다뤄보려는 시도 등으로 한 데 얽혀있다.
쉼터가 탈가정 청소년의 자립을 위한 공간이라면, 쉼터의 규정을 단지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빼앗는 퇴소 조치를 남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탈가정 청소년들에게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인정하면서 쉼터 규정을 바꾸어나갈 필요도 있다. 그 규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위에서 부과된 ‘규칙’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약속’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또한 시간 규율과 같은 문제가 나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에 필요한, 적응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일이라는 자기 동기가 분명해져야 한다. 나랑 역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든다거나 결함이 있는 존재를 결함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학대나 방치 속에 살아오면서 그것을 방어하는 데만 온 힘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힘을 발휘한다는 차원”일 때 쉼터 내 약속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그 ‘약속’을 일궈가는 과정은 일방적인 명령이나 설득이 아니라 지난하고 무수한 ‘말싸움’과 서로 동의를 구하고 협상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사회생활을 위한 ‘적응력’을 발휘하는 과정이고, 어디서부터는 사회가 요구하는 사이클(하루 일과 혹은 인생 전반)에 맞춰 ‘순응’하는 것인지 그 경계를 가늠하기란 참 어렵다. 더군다나 취업률/자격증 취득률/검정고시 합격률 등이 성공적인 자립을 뜻하는 기관의 지표로 자리 잡거나, 재정과 예산의 힘을 쥐고 있는 정부나 법인이 성과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때 언제든 자립의 주체(당사자)와 객체(관리자)가 전도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김인숙(2007) 역시 기존의 자활 개념과 정책이 당사자보다는 관리자들에게 더 용이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 패러다임은 자활의 당사자를 관리자의 시선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어느 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립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뭐를 준비해야 하는 걸까요?) 밤낮 바꾸는 거랑. 자는 시간이 들쑥날쑥이라... 남들이랑 똑같이 사회생활 열심히 하고, 거기서는 시간이랑 신뢰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걸 쌓기 위해 만드는 거. 혼자 지내게 된다면 정보 같은 걸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주부 같은 개념? 어디 가야 제일 싸다든지. (...) 쓸데없는 소비 줄이는 거. 그런 걸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자립 준비라고 하면 돈이랑 사회생활! 그리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해요. (...) 내가 즐기면서 뭔가를 해야지, 억압을 받으면서 하면 결과는 나오겠지만 즐겁진 않아요. 나는 노는 걸 좋아해서..."
결과 이전에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무엇이 자립인지를 가늠하는 데 있어 당사자의 시선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게 한다. ‘제대로 살고 있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권리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프* 활동가의 이야기도 울림을 낳는다. EXIT*의 활동가가 자립은 학력을 취득하거나 직업을 갖는 것과 같은 완성된 형태의 명사가 아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동사라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조건 없는 자립’의 여건은 이렇게 천천히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
* 제프 : http://walkingwithus.tistory.com/190 글 참고
* Exit : https://www.withu.or.kr:447/USR_main.asp??=Business/grow 참고
참고문헌> 김인숙(2007), 「성매매 여성의 자활 진단척도 개발의 필요성 및 내용」,『성매매방지법 시행 3주년 기념 심포지엄 :성매매 여성의 지속가능한 자활을 위한 대안 모색』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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