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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기자단 기사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 서평- 어린이를 어린이로 바라보기

by 함께걷는아이들 2021. 8. 10.

김소영 에세이<어린이라는 세계>표지 (출처: YES24)

 

어린이는 어른보다 경험이 적고, 그렇기에 더 배우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신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어른이 어린이를 세상 물정 모르고 마냥 미숙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모여 어린이를 한 명의 사회 구성원이자 온전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8살 아이에게 대소변을 먹이고 살해한 사건, 아이가 저항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폭행을 일삼은 사건은, 일부 어른에게 아이들은 자기보다 약하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됨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중요한 구성원으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어린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른이 아이들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안내한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저자가 만난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자는 현재 독서 교실에서 어린이와 책을 읽으며 소통한다. 어린이와 함께 생활하고 이야기하며 벌어진 에피소드가 실린 이 책은 독자가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는 신발 끈 묶기 연습을 하는 현성이가 등장한다. 어른이 되면 쉽게 묶을 수 있을 거라는 저자의 말에 현성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18pg)

 

책에서는 신발 끈 묶기를 제시했지만, 무엇이든 간에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걸릴 뿐 어린이도 할 수 있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어린이가 느리고 미숙하며 답답하게 보인다. 하지만 어린이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어린이는 그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기다리는 인내의 태도가 아직 부족한 듯하다.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말을 듣지 않아서 때렸다는 아동 학대 가해자의 말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저자 김소영은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는 과도기이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거로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어린이의 오늘과 저의 오늘은 같은 날이고 현재예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저자의 태도는 책에서도 돋보인다.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어린이가 피워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있었다. 글을 쓴 분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틀린 비유라고 생각한다. (중략)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163pg)

 

인생의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피어난 꽃이다. 어른보다 경험이 적은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피워 보지도 못했다라는 표현은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를 바라본 결과로 도출된 비유다. 모든 삶의 기준이 어른에 맞춰져 있을 때,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 전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관점 속에서 어린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잃는다.

 

책을 읽으며 어른의 관점에서 사소하다고 판단되어 상처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첫사랑은 13살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같은 반이었던 아이를 진심으로 짝사랑했다. 눈만 마주쳐도 좋았고 조별 활동 시간에 우연히 같은 조가 되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그러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에 혼자 끙끙 앓던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돌아온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너 그 마음, 초등학교 졸업하면 금방 잊을 거야.” 귀엽지만 별것 아니라는 담임 선생님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22살이 된 지금 13살의 첫사랑을 되돌아보면 풋풋하고 아련한 마음이 드는 한편 아쉬움도 남는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내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랑 이야기를 조금 더 진지하게 들어 줄 수는 없었을까?

 

나보다 한참 어른이셨던 선생님께 내 첫사랑은 한 철의 감정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뭣 모르는 어린이를 보면 그 세계는 너무나도 사소하고 유약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진중한 고민이나 행동조차 그저 귀엽다라고 치부하고 넘기기 쉽다. 하지만 그 시절의 사랑은 사랑도 아니다.’라는 태도는 당시 가장 중요했던 나의 감정과 경험을 무시했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나도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다. 공부가 힘들어 빨리 대학에 가고 싶다는 동생에게 대학 가도 힘든 건 똑같아.’라고 이야기하거나, 연출된 방송에 나와 눈물을 흘리는 어린이를 보며 감상하듯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모두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91pg)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다양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사회 구성원을 존중해 줄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그동안 어른들의 세계에 익숙해진 어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이며 동시에 현재 자신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린이는 어른의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사회 구성원이고 온전한 인격체이다. 이는 어른 마음대로 어린이를 휘두르고 주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어린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소외당하지 않는 시작점이다.

 

하지만 어린이는 사회 바깥에서 다 자란 다음 사회에 배치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어린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 속에서 자란다.” (254pg)

 

 

참고자료

▶서울 신문, “노 키즈 존·헬린이...어린이를 감상의 대상으로 보는 것”, 2020.12.08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14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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