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많다. 이때 대다수의 사람이 느끼는 착함의 기준은 어떤 결정에도 ‘거절’ 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성공리에 종영한 2016년도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이러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주인공인 ‘박완’이다. 박완은 어릴 때부터 엄마를 우선시로 여긴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싫어하는 일은 거절하고 만다.
이처럼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데다 피플 플레저에 해당하는 주인공 ’박완‘이라는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와 관련된 일이면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하라는 것은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은 채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박완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착한 아이 증후군 그리고 피플 플리저는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착한 아이증후군은 부정적인 정서나 감정들을 숨기고 타인의 말에 무조건 순응하면서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하는 경향을 의미하고, 피플 플리저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잉 친절러‘를 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거절하기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아이는 점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거절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내비치지 않으면 겉으로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얻을 수는 있으나, 모든 일에든 좋다는 말만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왜 거절하기를 두려워할까?
전문가들은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 기저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이기적으로 보일까 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갈등 상황에 놓일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라고 말하는 250가지 방법’의 저자인 미국 사회심리학자 수전 뉴먼 박사는 “항상 남의 비위를 맞추는 피플플리저(people pleaser)들은 외부의 승인으로부터 안정감과 자신감을 추구한다”며 “사람들이 자신을 게으르거나 인정머리 없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미움 받거나 왕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싫다’고 거절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두려움은 사랑 받고 싶다는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사실 남을 도와 사랑 받고 싶은 이 착한 마음에는 죄가 없다. 자기보다 타인의 요구를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들을 호구로 인식하고 알뜰하게 착취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며 피해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언제고 선량하기만 한 존재였던가. 타자의 욕구 틀에 자신을 맞추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예스맨들은 서글프지만 성악설을 수긍하며 탈출의 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거절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를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
이때 어린 아이일 때부터 거절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거절을 잘하려면 양육자의 역할도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양육자는 아이에게 먼저 거절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즉 좌절에 대한 내성을 키워주는 것이다.
가령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로부터 ‘너랑 놀기 싫어’라는 말을 들어 거절당했다면 부모는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하지만, 취학 전 아이는 원만한 소통 기술을 습득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물론 심각한 상황에는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하지만 부모가 매번 아이의 교우관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아이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익힐 수도 없다.
우선 ‘거절당할 수 있어’, ‘상처받을 일은 아니야’,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라고 하며 거절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 거절이 이유 있는 거절이라면 ‘왜 나만 안 끼워 주는 거야’라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닌 ‘인원이 다 찼구나. 그럼 재미있게 놀아’라고 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반면 자신에 대한 거절일 때는 ‘서로 좋아하는 게 다르면 같이 못 놀 수도 있는 거야’, ‘잘 맞는 친구도 있고, 안 맞는 친구도 있어’, ‘친구가 거절했다고 해서 네가 소중한 사람이 아닌 건 아니야’라고 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이와 같이 거절당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충분히 흡수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준 뒤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승화시켜 준다.
반대로 현명하게 거절하는 법도 알려준다. 먼저 거절은 부정적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거절은 나쁜 게 아니야’, ‘네가 싫다고 이야기하면 상대가 너의 마음을 알 수 있거든’이라고 하며 거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상대에게 잘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말해준다. 그런 다음 상대의 마음을 살피면서 거절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보통 거절은 딱딱한 말투와 표정으로 ‘싫어’, ‘안 해’, ‘안돼’라고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렇게 표현하면 거절하는 아이도 부담이고, 거절당하는 아이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거절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해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주기 싫은데, 친구가 자꾸 달라고 하면 ‘안돼’가 아니라 ‘미안해. 이건 줄 수 없어. 아빠가 생일 선물로 준거란 말이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신에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는 가지고 놀 수 있게 해 줄게’라고 하며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거절하는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단호한 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시도할 때, 과자 사준다면서 함께 가자고 할 때 등은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거절 상황을 역할극으로 연습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 또한 거절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거절을 해서 누군가가 실망을 하거나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떤 사람과도 불편해지는 일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부모님이 하라고 한 일에 하기 싫다고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자유로운 가정환경에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거절을 여러 번 연습한 끝에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에는 ‘예스’를, 하기 싫은 일에는 ‘노’를 외친다.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 할까’(위즈덤하우스)를 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사람들이 거절을 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한국의 유교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를 지적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부모에게 ‘노’라고 못하고 자라온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의 ‘어른 말은 따라야 한다’라든지 효도 콤플렉스와도 관련이 있죠. 부모에게 ‘노’라고 못하고 자란 아이는, 결국 학교나 직장에 가서도 선생님이나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기 힘들어지고, 심지어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때마저도 ‘노’라고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에 무조건 순응하는 아이를 ‘우리 아들/딸 착하지’라는 달콤한 말로 독려하면, 아이는 부모의 승인을 얻기 위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예스”를 말하며 점차 이에 중독되는 경향이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는 책 ‘인생 수업’에서 “많은 부모가 자녀로부터 거절당하면 불행해하지만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따라서 양육자는 아이가 자신의 말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게끔 돌보아야 한다.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면서 부당한 요구에 거절하는 방법을 배워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아이는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고 스스로 거절하는 힘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아이는 단순히 상대방에게 거절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거절을 한다는 것은 곧 상대에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리는 소통이다. 아이는 아직 경험의 폭이 넓지 않고 조망능력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거절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당당한 아이들이 언젠가는 이 세상에 가득해지기를 바란다.
▷함께기자단 6기 이윤서
[참고문헌]
「거절이 어려운 아이, 거절도 연습이 필요해요」, 『베이비뉴스』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267
「호구 되기 싫은 당신을 위한 ‘거절의 기술’」,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8100439020100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작은 거절에도 상처받는 사람들」, 『동아사이언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42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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